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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짓는하루 Oct 30. 2021

절 다니는 절므니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공간이 있다는 것

<10월의 어느 날 다녀온 강릉 보현사, 일출이 아름답다>

"쉴 때 뭐해요?", "주말에 뭐 했어요?" 흔한 인사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직장동료와 점심을 먹으면 요즘에는 뭘 하고 사는지, 주말에는 뭐 했는지 서로 묻는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밥 해 먹고, 좀 쉬고, 운동도 하고, 가끔 절 가요" 나의 생활 패턴을 이미 아는 지인들은 단조로운 생활 패턴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내 생활이 너무 따분해 보이긴 한다. 가끔 따분한 건 사실이다 근데 어쩌랴, 복작거리는 것보다는 차분한 공간을 좋아하는 게 타고난 성격인데. 처음 보는 사람들은 신기해한다. 밥 해 먹는 거 좋아하는 걸 좀 신기해하는 게 1차 반응, 절 가는 걸 신기해하는 게 2차 반응이다. 그래도 뭐 취미가 요리인 사람들은 있으니, 밥 해 먹는 거야 그렇다 쳐도 절을 간다 하니 신기했나 보다.


집안 종교가 불교이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가족들과 전국 방방 곳곳을 놀러 다니면 그 지역에 있는 유명한 절을 가보는 게 익숙했다. 그래서 절은 내게 친숙한 공간이다. 절에 다녀오면 마음이 평온해져서 좋다. 삼십 대 초반 아가씨가 절 가는 게 취미라고 하니 내가 생각해도 좀 웃기긴 하다. 그런데 나는 절에 가는 게 좋다. 일상생활에서 뾰족해진 마음, 근심 걱정이 있는 마음, 정돈되지 않는 마음이 생길 때 절에 가서 기도를 하고 오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꼭 기도를 하지 않더라도 그냥 산책하기 좋은 예쁜 절에 찾아가 시간을 보내고 오기도 한다. 사람마다 자신의 마음을 힐링하는 방법이 있는데 나는 그저 내 마음을 힐링하는 법 중 하나가 절에 가는 것일 뿐이다.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는 공간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절은 내게 그런 공간이다. 평일에는 붐비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출근해서 일하다가 퇴근해서 또다시 붐비는 지하철에 다닥다닥 몸을 싣고 퇴근한다. 열심히 일하다 퇴근하고 오면 씻고 밥만 먹었을 뿐인데 금세 밤이다. 그럼 또 하루의 피로가 몰려와 졸리다. 가끔 잠들 시간에 하루가 이렇게 끝나는 게 아쉬워 괜히 직장인인 스스로에게 반항하듯 휴대폰을 보다 새벽에 잠들었다가는 다음 날 눈 뜨기도 힘들고, 일 할 때도 피곤해서 집중력이 떨어진다. 결국 나만 더 피곤해지는 일이니, 평일은 그저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하루로 끝내야 한다는 현실에 수긍한 채 그냥 그렇게 하루를 끝내고 일찍 잠들 수밖에. 애석하지만 현실이다.


주말에는 가끔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분명 평일에는 주말만 기다리며 이번 주말은 어딜 가보고, 뭘 해볼까 생각하다가 막상 주말이 되면 집에 있게 되거나 볼일을 보러 나간다. 이불과 한 몸이 되어 뒹굴거리다가 얼른 몸을 일으켜야 한다. 평일에 못했던 것들을 처리하기도 하고, 자취생이니 밀린 집안일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주말도 금방 끝난다.


이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일요일 에 허무한 마음이 밀려온다.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서 정신없이 한 주가 흘러간 것 같아 아쉽다. 내 마음을 돌아보고 챙겨볼 시간 없이 끝나는 것 같다. 온통 내가 해야 할 것, 해야 할 일 투성이인 일상에서 정작 내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절에 가서 차분하고 고요한 공간에 앉아 내 마음을 들여다 본다.


집이라는 공간은 며칠만 청소기를 돌리지 않으면 바닥에 긴 머리카락이 돌아다니고, 밥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해두지 않으면 금방 지저분한 그릇이 쌓인다. 잠들기 전 스트레칭을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느라 굳은 몸이 풀리지 않아 점점 결린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바쁜 일상을 보내며 마음에도 온갖 생각이 먼지처럼 쌓이는데, 닦아내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쌓여 나도 모르게 경직된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절이라는 공간으로 향해 내 마음의 공간을 들여다보고, 깨끗하게 닦아내고 다시 한 주를 시작하면, 그래도 반복되는 일상에서 다시 힘을 내고 지치지 말자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아갈 힘을 얻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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