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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짓는하루 Nov 13. 2021

배달을 시키려다, 집밥을 차렸다

자취생 집에 온기를 채워주는 집밥

<집안의 온기를 채워준 오늘의 집밥>


얼마나 기다려온 주말인가. 정말 푹! 쉬기로 마음먹은 날. 보일러를 잔뜩 올려놓고 따듯한 이불속에 몸을 집어넣은 채 한숨 잔 덕에 제법 컨디션이 살아났다. 낮잠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눈을 뜨니 벌써 저녁시간. 오늘은 뭘 좀 시켜먹어 볼까. 배달 어플을 켜서 뭘 먹을지 한참을 뒤적거렸다. 뭔가 뜨끈하면서도 맵고 진한 국물이나 볶음요리가 생각났다. 자극적인 음식이 당겼다.


음식을 시키기에 앞서 집 정리 좀 하려고 몸을 일으켰다. 빨래를 돌리고 난 후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밀린 설거지. 설거지 거리도 얼마 없는데 어찌나 하기 귀찮은지 외면할까 하다 결국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을 꼈다. 분명 설거지를 하기 전에는 세상에서 제일 하기 싫은 일처럼 느껴졌는데 막상 물을 틀고 냄비와 그릇을 깨끗하게 닦아내니 기분이 좋아졌다. 물기를 꽉 짜낸 행주로 사방에 물이 튄 주방을 닦아내고 나니 마음까지 개운해졌다.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 밥을 해 먹자. 깨끗하게 정돈된 주방을 보니 요리가 하고 싶어졌다. 지난주에 장을 봐서 어중간하게 남아 있는 식재료들도 처리해야겠다 싶었다. 조금 시들긴 했지만 아직은 멀쩡한 시금치를 비롯한 재료들을 모두 꺼냈다. 큰 냄비에 다시마를 넣어 된장을 풀고, 양파를 넣어 국물을 우렸다. 냉동고에 잠든 반건조 새우가 떠올라 새우도 꺼내 넣었다. 한동안은 바빠서 빨리 밥을 해 먹느라 취사 시간을 단축시켜주는 백미밥만 먹었는데, 정성스럽게 국물을 우리는 만큼, 오랜만에 취사 시간이 오래 걸리는 현미밥을 했다. 지난주에 이어 남은 버섯과 파프리카로 버섯볶음을 하고, 국물을 우리기 위해 넣고 남은 반토막의 양파는 쉰 김치와 함께 볶아내 김치볶음으로 만들었다.


분명 자극적인 음식이 당겼는데, 막상 설거지를 하다 보니 냉장고를 열게 되고, 요리를 하다 보니 자극적이지 않은 집밥을 만들고 있었다. 덩달아 마음도 차분해졌다. 시금치가 생각보다 너무 많아 한 냄비 가득 끓고 있는 구수한 된장국과 밥 짓는 냄새에 집안에 따듯한 온기가 스몄다. 버섯을 달달 볶고 김치를 볶아내는 소리가 조용한 집안을 활기차게 만드는 기분이었다. 아, 정말 좋다. 내가 집밥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집밥이 더 맛있고 건강해서만은 아니다. 밥을 만드는 순간 정갈해지는 기분, 요리할 때의 따듯한 기운이 집안을 포근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달콤한 낮잠을 위해 잔뜩 올려둔 보일러만큼이나 집안을 뜨끈하게 만들어준다.


냉장고에 있던 반찬과 새로 만든 반찬들을 접시에 조금씩 담아내고, 밥과 국은 마지막에 퍼냈다. 밥이나 국을 먼저 담아내면 그사이에 식을 수도 있다고, 식탁에 올라오는 요리 중 밥과 국은 늘 마지막에 올리는 엄마를 닮은 습관이다. 특히 된장국을 끓일 때 온기를 느끼는 건 엄마가 생각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던 어떤 날, 국을 조금만 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된장국을 한 대접 가득 퍼주는 바람에 너무 많으니 덜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엄마는 국물을 조금만 뜨면 금방 식으니까, 남기더라도 먹는 동안 만큼은 식지 말고 따듯하게 먹으라며 많이 담았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그렇게 늘 따듯한 밥상으로 내 마음을 따듯하게 만들어줬다. 그래서 나는 밥을 할 때마다 그 따듯함을 상기한다. 그런 기억 덕분인지 자취생인 나는 집밥을 하는 순간은 잠시 자취의 외로움을 잊는다.


아무튼 된장국에 밥을 챙겨 먹으니 속도 따듯해지고, 일주일의 피로도 어느덧 녹아내린다.


아, 정말 집밥은 사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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