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아니면 나를 닮은 문장밖에 짓지 못하는 버릇.
결국엔 돌아올 사람이라는 믿음을 어루만지다가 멈칫한다.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의 크기가 짐작이 되는 만큼, 딱 그만큼 의욕이 소심해져서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깨단했지. 무소식을 희소식이라고 이해하고 발음하는 요즘이다. 어쩌면 내 믿음 따윈 아주 오래전부터 길을 잘못 들었던 걸지도 모른다.
혹시나 먼지라도 내려앉을까, 혹시나 어딘가에 금이 가진 않았을까. 불안에 강박을 뒤섞어 하루에도 몇 번씩 어루만져왔던 믿음인데_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의 크기가 짐작이 되는 만큼, 딱 그만큼씩 소심해진 의욕이 그때보다 거칠어진 두 손을 붙잡는다.
결국엔 돌아올 사람이라는 믿음이 나약해진 건 아녔다. 내 믿음은 몇 달 전의 모양과 다르지 않았고, 크기도 여전하기만 한데 마음이 그게 아닌 듯했다. ‘소심하다’는 말의 뜻을 체감할 수 있는 지금이었다.
소심의 반대로 ‘대심大心’이란 말이 잘 쓰이지 않는 이유도 좀 알 것 같았다. 딱히 쓸 일이 없으니까. 한자를 제멋대로 조합한 단어로는 존재할 수 있어도, 국어사전에는 등록될 수조차 없었던 거겠지.
보편의 가치는 언제나 엄격했고 그로 말미암아 알 수 있는 건, 마음이란 잠시나마 커질 순 있어도 결국엔 작아질 수밖에 없단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의 크기가 짐작이 되는 만큼, 딱 그만큼 의욕이 소심해져서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깨단한 거겠지.
무소식을 희소식이라고 이해하고 발음하는 요즘이다. 어쩌면 내 믿음 따윈 아주 오래전부터 길을 잘못 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결국에는 돌아올 사람이라는 믿음을 어루만지다가 멈칫했다.
혹시나 먼지라도 내려앉을까,
혹시나 어딘가에 금이 가진 않았을까.
불안에 강박과 그리움을 개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어루만져왔던 믿음인데_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의 크기가 짐작이 되는 만큼, 딱 그만큼씩 소심해진 의욕이 그때보다 거칠어진 두 손을 붙잡는다. 결국엔 돌아올 사람이라는 믿음 앞에 내 마음이 초라하게만 보였다.
아무래도 서글펐던 건, 그럼에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와 현실이었지.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건 아니겠지만 이미 이만큼의 시간을 기다려왔으니까. 이런 즈음에서 그토록 쉽게 내려놓을 수는 없는 미련이 깊었다. 오롯이 타인일 수밖에 없는 누군가의 조언이나, 참견 따위가 내 귓가에서 윙윙 맴돌아도 하나 들리지 않는 척. 거듭 지나가더니 다시 돌아와 머물러주다가 이윽고, 개명되는 계절의 자초지종을 남김없이 목격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척. 그럼에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와 현실이 서글펐다.
그렇게 쉽게 슬퍼해서 내일의 반복을 어떻게 견딜 거냐는 뾰족한 물음이, 이토록 무른 이 마음을 곧잘 찔러대곤 했는데_ 이미 물러진 마음이라 그럴까. 바늘 같은 물음이 남기고 가는 상처가 그리 아프진 않았다. 아프다는 감각도 내가 온전할 때나 느낄 수 있는 감각이란 사실을, 그럼에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와 현실로 깨단했다.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다 썩어버려 물러진 마음으로는 평범하게 아플 수도 없었다.
그러니까 쉬웠다.
오롯이 타인일 수밖에 없는 누군가의 조언이나, 참견 따위가 내 귓가에서 윙윙 맴돌아도 하나 들리지 않는 척하는 게 쉬웠다. 거듭 지나가더니 다시 돌아와 머물러주다가 이윽고, 개명되는 계절의 자초지종을 남김없이 목격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척하기도 쉬웠다. 덧붙여서 어차피 기다릴 수밖에 없는 팔자라는 사실 따위에 슬퍼하는 일마저도 쉬웠지. 외려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가만가만 바라보면 온통 슬프게
가는 것들과 슬프게
기다리는 것들밖에 없는 세상인데_
어째서 다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건지. 그러면서 또 어찌 그리 쉽게 아파하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던 적이 많았다. 이제는 어느 정도의 어제들이 축적이 된 삶이 된 만큼, 얼마쯤의 이해를 흉내라도 낼 순 있게 됐지만 의문은 여전하다.
당신들은 기다려본 적이 없던 걸까, 그렇다면 정말로 부러운 삶이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 하여튼 간에 그렇게나 서글펐던 건, 그럼에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와 현실이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건 아니겠지만 이미 이만큼의 시간을 기다려왔으니까.
이런 즈음에서 그토록 쉽게
내려놓을 수는 없는 미련이 깊었다.
이름과 필명:
당신이 기억하는 내 이름이 조금 더, 짙은 의미를 갖길 바라는 마음으로 숨겨두기로 했다. 서리가 내려앉은 달, 둥근 그늘 아래 나를 숨겨둔 채로 내일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화창할 수 없는 내일이겠는데 그럼에도 괜찮았다. 언제 어떤 날에 돌아오겠다는 말은 없었지만, 당신 아니면 나를 닮은 문장밖에 짓지 못하는 버릇은: 어차피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나를 닮아있을 테니까. 이거면 이거대로 괜찮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다 썩어버려, 이렇게나 물러지고 만 마음으로도 웃어볼 순 있었다.
물론 바짝 말라비틀어진 헛헛한 웃음이겠지만 어쨌든 간에 웃었으니 된 거라고. 이 정도면 됐다는 긍정을 박박 닦아내고서 숨겨둔 내 이름의 뜻을 헤아려봤다. 하루의 마무리를 알려주는 노을이 떠오르긴 했다.
현실은 밤하늘에 고민을 덜어내는 담뱃불만 같겠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와 현실에 원망을 녹여내긴 싫었다. 그저 당신이 기억하는 내 이름이 조금 더, 짙은 의미를 갖길 바라는 마음으로 꽁꽁 숨겨두기로 했다.
서리가 내려앉은 달,
둥근 그늘 아래 나를 숨겨둔 채로
내일을 바라봤다. 결국엔 돌아올 사람이라는 믿음을 어루만지다가 멈칫하는 밤. 어쩌면 내 믿음 따윈 아주 오래전부터 길을 잘못 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는데, 그럼에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와 현실은 아마 내일에도 똑같을 수밖에 없겠지.
내 믿음은 몇 달 전의 모양과
다르지 않았고,
크기 또한 여전하기만 하니까.
오롯이 타인일 수밖에 없는 누군가의 조언이나, 참견 따위가 내 귓가에서 윙윙 맴돌아도 하나 들리지 않는 척하는 게 쉬웠다. 거듭 지나가더니 다시 돌아와 머물러주다가 이윽고, 개명되는 계절의 자초지종을 남김없이 목격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척하기도 쉬웠다. 이미 지나간 시간의 크기는 거칠어진 손을 보면 짐작이 됐고, 딱 그만큼씩 의욕이 소심해져서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시시때때로 의심하곤 했는데_ 어차피 기다릴 수밖에 없는 팔자에 뒤엉킨 오늘과 내일이었다.
언제 어떤 날에 돌아오겠다는 말은 없었지만, 당신 아니면 나를 닮은 문장밖에 짓지 못하는 버릇은: 어차피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나를 닮아있을 수밖에 없겠지. 이게 아닌 다른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며 이것만이 오롯이 나의 것이었고, 나는 어떤 때라도 당신이 기억하는 나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물기를 잔뜩 머금고 있다 썩어버려, 이렇게나 물러지고 만 마음으로도 웃어볼 수 있었다. 아프지 않았다.
아니 아플 수 없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물러진 마음인 만큼, 그만큼씩 무뎌져서 슬픔에 들러붙는 아픔을 떼어낼 수 있었지. 이쯤에서 진짜를 말하자면, 내 오래된 그리움에 원망 따위를 녹여내는 게 그렇게나 싫었다. 그래서 그랬다. 당신이 기억하고 있을 내 이름이 조금 더, 각별한 의미를 갖길 바라는 마음으로 꽁꽁 숨겨둘 수밖에 없었다. 서리가 내려앉은 달, 둥근 그늘 아래 나를 숨겨둔 채로 내일을 바라보는 오늘.
결국엔 돌아올 사람이라는 믿음을 어루만지다가 멈칫하는 한밤. 어쩌면 내 믿음 따윈 아주 오래전부터 길을 잘못 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는데, 그럼에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와 현실은 아마 내일에도 똑같을 거다.
내 믿음은 몇 달 전의 모양과
다르지 않았고,
크기 또한 여전하기만 하니까.
_2026.01.05作
*이름과 필연:
철학자 솔 크립키가 1970년에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한 세 차례의 강연을 책으로 옮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