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둘째 날이 되고, 클라이밍장에 들어설 때의 마음은 사뭇 달라져 있었다.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홀드를 보며 호기심에 얼른 위로 올라가고 싶던 첫째 날과는 달리 강사 선생님의 눈을 애써 피하며 구석 자리에 몸을 숨기듯이 앉았다.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어깨 주변이 근육통으로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수업의 시작은 리드 클라이밍이었다.
클라이밍은 크게 세 종목으로 나뉜다. '스피드'는 가장 바른 시간 안에 완등하는 방식, '리드'는 가장 높이 올라가는 방식이며, '볼더링'은 홀드를 정해진 순서대로 짚으며 처음(스타트)부터 마지막(탑)까지 완등하는 방식으로 흔히 문제를 푼다고 한다. 내가 수업을 듣는 클라이밍장은 왼편의 리드 클라이밍 공간과 오른편의 볼더링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리드 클라이밍을 할 때 선수들은 스스로 리드 줄을 암벽에 걸며 올라가지만 우리는 천정에서 리드 줄이 당겨져서 리드의 힘으로 완등할 수 있었다. 가볍게(?) 몸을 풀 듯 리드 존을 세 번 등반하니 몸에서 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 잡기 편한 홀드가 무엇인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거 손에 바르고 하세요. 돌 잡기 한결 편할 거예요."
나보다 먼저 수업을 듣던 선배 회원이 액상 초크를 건네주었다. 홀드를 계속 잡다 보면 아무래도 손에 땀이 나면서 미끄러지게 되는데 액상 초크를 손바닥에 덜어 두 손으로 비비고 말려주면 분필처럼 하얗게 말랐다. 홀드를 잡아보니 바르기 전과는 그립감이 딴판이었다. 이런 좋은 게 있다니! 역시 스포츠는 장비빨이라는 말을 체감했다. 그다음부터 우리 회원들의 손에서 초크가 마르는 날이 없었다.
두 번째 수업은 이전 수업의 복습이었다. 삼지점을 만드는 자세, 이동을 할 때 손이 움직이면 발도 그만큼 같이 이동해야 한다는 것, 발을 디딜 때는 항상 발가락 부분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것 등을 몸으로 다시 숙지하며 벽을 탔다. 처음에는 무조건 돌과 익숙해지는 게 중요하다, 여러 번 잡고 여러 번 이동해보는 게 중요하다, 머리로는 알지만 다시 또 근육통에 시달릴까 봐 몸을 사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집에 돌아갈 때쯤 손이 욱신거려 살펴보니 새끼손가락 부분에 물집이 잡혀 있었다. 근육통은 또 삼일 동안 지속되었다.
팔뚝에 근육이 생겼다!
클라이밍 하면 연상되는 것이 등반인 것처럼, 클라이밍을 시작할 때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높이 올라가는 것보다 볼더링이라는 문제를 푸는 것이었다. 세 번째 수업부터 본격적으로 볼더링을 시작했는데 스타트에서 두 손을 모으는 합손 동작을 하고 1번부터 순서대로 돌을 잡으며 마지막 탑에서 다시 합손을 하고 내려오는 과정이 마치 게임의 퀘스트를 깨는 듯했다. 중간에 다음 돌로 이동하지 못하고 떨어지거나 포기하고 내려오고 나서도 어떻게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을지 한참 동안 벽을 바라보았다. 난이도에 따라 홀드의 색이 다르기에 오늘 회색을 완등했다면 다음 날은 파란색을 완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자신감도 생겼다. 선배 회원들이 만든 문제를 풀어보는 것도 경쟁 의식을 불태우게 했다. 지금까지 목표를 성취해가며 운동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이런 도전 과제가 나를 자극시켰다. 홀린 듯이 시간이 흐르고, 각자 벽에 매달려 한 발로 턱걸이 40개씩 하는 것으로 수업은 마무리되었다. 학생 때 체력장에서 단 한 번도 턱걸이를 해보지 못했던 내가 턱걸이를, 그것도 40개씩 하다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며 팔을 만져보는데 단단한 게 느껴졌다. 집에 와서 거울에 비춰보니 팔을 움직일 때마다 근육이 단단하게 올라왔다. 평생 팔은 말랑말랑한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신기한 마음에 계속 팔뚝을 쓰다듬고 만져보았다. 조금만 더 배우다보면 근육이 자글자글하게 갈라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