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담 리에 Mar 19. 2024

우연이 아닌 만남과 성장의 아픔

▶ 포마씨옹 2부, 프로젝트 발표(2022.9 - 2023.2) 


2022년 4월 말에 시작한 포마씨옹의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애를 썼다. 내용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 내용을 프랑스어로 이해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프랑스에서 살면서 일상생활에 관련된 모든 것이 프랑스어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직접 체감하기 전에는 그 어려움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주변에 암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경험을 들어서 아는 사람은 실제로 암치료를 받으면서 어떤 스트레스와 감정의 변화, 트라우마를 가지는 지 알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가 실제로 프랑스에서 포마씨옹을 듣기 시작하면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든 나머지 자신감 상실, 정서적 불안에 휩싸여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였다. 이것은 주로 프랑스어에 대한 스트레스였다.


그러던 참에 나는 E의 도움으로 승마 농장에서 인턴 생활을 하게 되었고 자연속에서 말(cheval)과 교감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포마씨옹을 받으면서 겪은 번아웃 증세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걸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인턴 생활을 하는 동안 말과 교감하는 과정에서 말 심리치료(l’équithérapie)를 나도 모르게 받은 것이었다.


정서적으로 치유를 해 준 것은 차치하고 궁극적으로 인턴 실습을 통해 내가 해야 되었던 것은 고객관리하는 방법, 마케팅, 회계, 경영등을 포함해 승마농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조직 운영 방식을 배웠어야 되었다. 그러나 R쉐프의 정리정돈의 능력 부재, 시간관리 안함, 경영 무능력, 숫자를 보면 집중 장애를 일으키고, 사람들과 열악한 의사소통 문제는 나에게 또 다른 멘탈 파괴를 일으켰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서 어느새 10주 동안의 인턴실습이 끝났고 9월이 되어 나는 다시 포마씨옹으로 복귀했다. 그 이후로는 더 많은 해야 할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인턴 생활 동안 했던 것을 경영, 조직인사, 회계, 마케팅 분야에 대해 분석을 해서 Dossier Professionnel을 작성해야 되었다. 그리고 나서 4과목 시험을 치루어야 했다. 일주일에 포마씨옹 수업들에 대해 한 과목씩 보는 주관식 시험은 한 달 동안의 스트레스의 고문이었다. 인턴 보고서 쓰고 시험 보고 났더니 어느덧 11월의 마지막 주가 되어 있었다. 이제 포마씨옹의 가장 마지막 관문인 최소 50페이지의 Projet(프로젝트)를 써야 하는 미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쓰는 것도 막막한데 Projet(프로젝트)를 쓰고 나서 심사위원앞에서 최종발표를 하고 질의응답에 대답해야 포마씨옹의 과정을 종료할 수 있었다. 발표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Projet(프로젝트)에 관한 것을 파워포인트로 준비한 자료로 해야 되었으며 발표시간은 약 30분 정도였다. 발표가 끝나면 심사위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있으며 약 1시간 30분 정도였다. 이렇게 2시간 정도 소요되는 발표와 질의응답을 해야 하는 결전의 순간의 Projet 발표는 2023년 2월 7일이었다.


프랑스인과 결혼해서 프랑스에 살기 시작한 때의 나의 나이가 마흔이 넘었을 때였다. 그 당시에 프랑스어를 전혀 알지 못했던 내가 프랑스인과 프랑스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나였다. 유방암 치료를 받으며 생존 프랑스어를 시작했던 내가 이제 프랑스어로 프로젝트를 50페이지 이상 써서 심사위원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더니 내가 정말 그 상황이다.


무슨 프로젝트를 써야 할 지 주제 선택도 모르겠고 그리고 어떻게 써야 할 지 글의 구성과 내용에 대한 전혀 아는 바도 없고, 최소 50페이지를 쓸 수 있을지 확신은 0%였다. 게다가 쓴 것을 심사위원들 앞에서 프랑스어로 발표하라니… 동네 사람들과 말하는 것도 내가 말할 때 그 사람들이 내 말을 이해 못해서 되물어 볼 때마다 당황하는 내가 심사위원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한다는 상황이 좀처럼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워낙 점수주는 것에 짠돌이 프랑스 시스템이어서 열심히 해도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보다는 열심히 해봤자 실패할 확률이 크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실패를 하더라도 준비를 하는 과정과 발표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내가 크게 배우는 것이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결과가 실패로 끝난다고 하면 어떤 점이 내가 부족해서 실패 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끝까지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라고 다짐했다.


포마씨옹 시험이 끝나고 12월이 되어 크리스마스 바캉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반 동료가 코로나에 걸렸다고 해서 그 다음날 검사하러 당장 약국으로 달려 갔지만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코로나에 걸렸으면 시댁에 가지 않고 졸업 프로젝트를 쓸 수 있었을 텐데 코로나에 걸리지 않아서 크리스마스 전야는 시댁에 갔다. 식탁 차리는 준비를 하고 시댁 식구들과 장시간의 만찬의 의무적인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다. 다행스럽게 벨기에에서 남편의 친구가 우리집에 와서 남편과 시간을 같이 보내고 있는 것이 오히려 내가 프로젝트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크리스마스 바캉스 일주일 동안 최대한 프로젝트를 완성해야 되었다. 쓰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읽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설정했던 Projet(프로젝트)에 관한 외부시장 환경에 관한 자료들을 미친듯이 찾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면서 내 머리 속에 막연했던 생각들이 점점 하나의 형체를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읽고 쓰고 지우고 수정하고 또 다시 써도 내 맘처럼 진도가 팍팍 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 내 방구석에 쳐박혀서 내 생각을 프랑스어로 쓰고 지우고 쓰고 고치고 하는 날이 계속되었다. 이 기간동안 나는 이 프로젝트에 매달려서 새벽 2시에도 벌떡 일어나서 머리에 든 생각을 잊기 전에 쓰기도 하고 새벽 3시에도 일어나서 쓰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미화시켜 표현하자면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한 진정한 몰입(immersion)의 단계에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실제로 정말 내가 미쳐가고 있는 듯 했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집안일을 할 때도 포마씨옹에서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도 나는 프로젝트에 관한 생각만 했다. 뭘 먹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남편과 무슨 말을 했는지 모든 것은 생각할 여유도 없이 내 머리에 들어 있는 프로젝트에 관한 추상적인 덩어리 같은 생각들을 말로 끄집어 내서 글로 구현화 시키는 것만 매일 생각했다.


이 프로젝트 발표만 끝나면 나는 드디어 이 곳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게임할 때도 최종 던전의 보스를 깨는 것이 원래 힘든거라며 나를 다독거리며 위로했다.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던 프로젝트도 미친듯이 매일 매달려서 하다보니 드디어 발표 전 주에 마침내 나의 생각을 65페이지를 쓴 프로젝트를 완성했고 파워포인트 발표 자료도 만들어서 발표에 대한 준비까지 마쳤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내 생각을 프랑스어로 쓴 Projet(프로젝트)였는데 책으로 만들어진 완성품을 보니 10개월 동안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탄생시킨 한 아기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10개월 동안 배웠던 것들, 받았던 스트레스, 갈아부었던 노동력, 지치고 힘들었던 날들이었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고 버티며 완수한 프로젝트 안에 그 동안의 모든 나의 것들이 담겨있는 듯 했다.


드디어 2월 7일 결전의 날이 다가왔고 드디어 나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그동안 최선을 다해 준비했던 프로젝트를 발표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제대로 발표할 수 있을까에 대해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 동안의 피로 누적으로 눈떨림은 계속되었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피부는 손을 닿으면 데일 듯이 뜨거웠다. 발표하기 바로 직전 계단을 올라가다 마주쳤던 회계를 가르쳤던 M formateur (전문가 육성자)가 나에게 심사위원들이 나를 잡아먹지 않을테니 너무 떨지 말고 준비한 대로 발표하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했다.


“Une rencontre n'est jamais un hasard... C'est souvent au moment où on s'y attend le moins et cela chamboule notre vie !”


그렇다. 누군가를 만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이 종종 우리의 삶을 뒤바꾸게 된다 ! 나에게는 이 포마씨옹(RET)를 통해 만났던 모든 사람들, 같이 수업을 들었던 동료들, formateur들, 포마씨옹 센터 직원들, 인턴을 구하게 도움을 준 E, 인턴실습 동안 만났던 그 모든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은 어쩌면 나와 인생의 길에서 마주칠 운명이었을 수 있다. 확실한 것 하나는 10개월 동안의 포마씨옹을 통해 나는 프랑스라는 사회 시스템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동안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꼈으며, 때로는 기쁠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너무 많이 힘들었고, 상처도 많이 받았던 이 모든 것들이 나로 하여금 한 단계 커다란 성장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아픈만큼 성장한다고 했던가 ? 결과적으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회복탄력성’으로 인생의 역경을 성장으로 전환시킨 것에 대한 효과는 포마씨옹이 끝나고 나서 멀지 않아 체감하게 되었다.


나는 포마씨옹이 끝나자마자 나는 운전면허 필기(Code de la route)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역시 프랑스에서의 모든 시험은 프랑스어 단어로 시작된다. 운전 필기 시험 공부에도 똑같이 단어들이 미칠듯이 쏟아져 나왔지만 한번 포마씨옹때 단어의 홍수속에서 익사할 뻔 했던 경험 덕분에 그 쓰나미 많은 단어들에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그냥 매일 반복해서 보고 읽고 녹음하고 또 읽고 쓰고 책을 읽고 문제들을 풀었다. 게다가 심사위원 앞에서 발표도 할 필요가 없는 운전 필기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는 상대적으로 적었고 포마씨옹이 끝난지 3개월 후 2023년 5월 25일, 나는 프랑스 운전면허 필기 시험인 Code de la route를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었다. 40문제 중에서 37점, 백점으로 환산했을 때 나는 92.5점으로 오히려 넉넉하게 합격했다.













이전 18화 프랑스에서 중년의 별난 인턴생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