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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리에 Mar 15. 2024

프랑스에서 중년의 별난 인턴생활

▶ 인턴십 (2022.6.27 - 2022.9.2) 


내가 E를 만나고 인턴자리를 구한 건 천우신조(天佑神助)였다. 덕분에 나는 우리 집에서 11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승마 농장’에서 10주 동안의 인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승마장과 내가 이수하고 있는 포마씨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사람들에게 숙박시설을 제공하는 ‘승마 농장’이었기에 이곳에서 인턴을 하는 것이야 말로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게다가 승마 농장은 자연의 심장부인 Parc naturel régional (지역 자연 공원)에 있어서 파란 하늘에 빛나는 영롱한 초록 빛깔의 산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름답고 고요한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안구 정화가 되고 그 풍경 속에 한가로이 거니는 말(cheval)들을 보면 나의 마음도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말이라는 동물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와 공통점이 있는 듯한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500kg의 무게에 달하는 덩치 큰 말들은 보기에 용맹해 보이지만 사실은 겁이 굉장히 많은 동물이었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봉지가 날아가도 그 소리에 깜짝 놀라는 동물이었다. 한국을 떠날 때만 하더라도 프랑스에서 어떤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채 호기롭게 떠났지만 프랑스에서 맞닥뜨린 상상하지 못한 많은 풍파를 겪으며 어느새 겁쟁이가 되어 있는 나를 말과 동일시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목장 안으로 들어가면 말은 나에게 다가와서 커다란 몸을 부벼댔다. 이것은 배가 고프다는 신호였다. 그러면 나는 말에게 건초를 주기도 하고 물통에 물을 채워주기도 했다. 승마 농장에서 인턴을 한다는 사실은 말똥 치우는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내가 인턴을 했던 여름 7-8월은 자연 속에서 말을 타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나도 예외없이 마굿간(box)에 말들이 싸놓은 수십톤의 말똥들을 치웠다.


그러나 마부가 하는 말을 돌보아주거나 말똥을 치우는 일이 내가  인턴십에서 주로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포마씨옹에서 요구하는 인턴십의 목표는 어떻게 승마농장을 운영하는지를 분석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전략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승마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R 쉐프(Chef)는 승마에 관한 건 전문가였지만 안타깝게도 경영에 관해서는 무지했기에 경영에 대해 나에게 가르쳐 줄만한 능력이 없었다.


게다가 승마농장에 살고 있는 그녀의 집에는 사무실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집 부엌에 놓여진 밥을 먹는 커다란 식탁에서 행정업무도 처리해야 되었다. 테이블 위에는 항상 모든 물건들이 뒤섞여 있다. 해동시켜 점심으로 먹을 고기나 닭, 먹다 남은 빵조각, 그 빵조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고, 그 옆에 식칼이 놓여 있었다. 그리 바로 그 옆에는 목장을 수리하는 데 필요한 연장 도구들이 놓여 있고, 말벌을 죽이는 스프레이, 말아서 피우는 담배 필터, 담배 가루들도 함께 놓여 있었다. 재떨이가 있지만 항상 담배 꽁초, 담배재들은 테이블 위에 떨어져서 본인 딸이 병원에서 받은 검사 용지와, 행정서류들도 빵조각들과 함께 뒤섞여 있었다. 거기에다가 간밤에 잡았는데 머리는 어디로 도망가고 몸뚱이만 남아 있는 풍뎅이 시체도 뒹굴면서 테이블 위는 더욱 인상적인 광경으로 되어 갔고, 담배를 오래 실내에서 피우면 천장에 니코틴이 누렇게 달라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테이블위는 종이를 놔두면 눌러 붙어서 떨어질 것 같지 않을 것처럼 항상 진뜩거렸다.


그러므로 아침에 도착하면 내가 첫번째로 하는 일은 부엌 싱크대 옆에 놓여진 커다란 식탁 위를 정리하는 것이었다. 정리 정돈이 전혀 하지 않은 그녀가 서류를 정리를 잘해 왔을 리는 만무했다. 모든 영수증들이 뒤섞여 있었다. 매출 장부는 매일 기록하지도 않아서 엉터리 투성이었다. 나의 인턴 생활은 그녀가 결코 하지 않은 정리를 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가진 서류들을 모두 정리하기 시작했다. 2011년 승마 농장을 오픈 했을 때부터 11년간의 모든 서류가 서로 뒤섞여 있었다. 세금 및 회계 서류가 말 서류와 섞여 있는가 하면, 난데없이 말 서류에 그녀의 병원 진단서가 있기도 했으며 딸의 건강 수첩이 말 서류 사이에 끼워져 있기도 했다.


내가 인턴을 시작했던 2022년 6월 27일 시점에 그녀는 의무적으로 신고를 해야 하는 TVA(부가가치세)를 신고를 1년 내내 하고 있지 않았던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인턴을 하게 된지 2주차에 들어서 그녀가 신고를 하지 않았던 2월, 5월의 TVA(부가가치세)를 신고를 하게 되었다. R쉐프는 TVA(부가가치세)를 신고하기 위해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켜자마자 투우장의 소의 코가 벌렁거리는 것처럼 화를 씩씩 내면서 담배를 미친듯이 피워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 “진정하세요.”라고 몇 번을 반복해서 말하고 결국은 내가 도맡아서 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녀는 밖에 나가서 담배를 마저 피웠고 나는 회계 프로그램의 기능들을 숙지하면서 TVA(부가가치세)를 신고를 마쳤다. 나는 그 이후로 그 승마 농장의 각종 서류에 관한 일은 모두 도맡아서 하기 시작했다. 우선적으로 그동안 밀려서 신고를 안하고 있었던 부가가치세(TVA)를 신고했고, 마찬가지로 또 신고 기간이 이미 지나버렸지만 신고를 해야 했던 taxe de séjour, msa 기타등을 필두로 각종 세금에 관련된 신고를 했다. 그리고 심지어는 R쉐프가 소유하고 있던 말이 노화로 사망해서 declaration de la fin de vie도 Horsia를 통해서 사망신고를 하게 되었다.


행정처리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R쉐프는 서류를 보면 안절부절하며 미친듯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미루고 미루어서 결국 신고해야 하는 날짜가 지나면 벌금 내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의무적으로 해야 되는 세금신고도 하지 않았던 그녀가 나에게 체계적인 업무 시간표를 줄리는 만무했다. 아침에 도착하면 그날 본인의 기분에 따라서 나의 할일은 정해졌다. 미리 계획을 세우는 것과 분석을 하는 것은 그녀의 삶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던 중에 포마씨옹 책임자 P는 내가 인턴십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체크하러 승마농장을 방문하러 온다고 했다. 직접 현장 방문을 해서 나의 인턴십의 평가를 하기 위함이었다.


그 기간에 승마농장에는 R쉐프와 동네에서 같이 자랐던 친구 두명이 놀러와서 바캉스를 보내고 있었다. 이십대까지 알자스의 같은 동네에서 살아서 초중고를 모두 같은 곳을 다녔으며 가족들끼리도 친한 사이였다. 친구들은 프랑스의 북쪽에 있는 알자스에서 머나먼 남쪽의 끝에 위치한 승마농장에 R쉐프를 만나러 와서 자연 속에서 농장 일도 도우며 평화로운 바캉스를 보내고 있었다. 친구 두 명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C와 한 눈에 봐도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스타일을 하고 있었던 H였다. H는 온몸 전신에 문신을 새기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레게머리 braids를 하고 있었고 피어싱은 코, 입술을 비롯해서 여기저기에 약 30개 정도를 하고 있었다.


나의 포마씨옹 책임자 P가 승마농장에 나의 인턴십을 평가하러 온다고 하자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 C는 점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부엌은 음식의 맛과 풍미를 끌어올리는 수준을 넘어서 위에 구멍까지 내버릴 듯이 너무 강한 아낌없이 듬뿍듬뿍 들어간 향신료 냄새가 진동했다. 이윽고 점심 시간이 되어 포마씨옹 책임자 P가 도착했다. R쉐프, R쉐프의 남자친구, R쉐프의 친구 레게머리H와 요리사C, 나, 그리고 포마씨옹 책임자 P, 이렇게 우리 6명은 함께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포마씨옹 책임자 P의 자리는 레게머리 H의 옆이었다. 레게머리 H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이 땅에 닿기 때문에 식사를 하기 위해 의자에 앉으면 머리가 땅에 끌렸다. 그래서 본인의 긴 머리카락를 허벅지 위에 철썩 올리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레게머리 H는 본인이 17살을 맞이한 기념으로 온몸에 문신을 새겼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날의 점심 메뉴는 요리사 C가 선보인 닭볶음 같은 것과 샐러드였다. 점심 식탁 위에 말벌 두 마리가 윙윙 거리며 우리가 먹고 있는 식사가 담긴 접시를 노리며 계속 날아다녔다. 말벌을 쫓아내면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R쉐프가 샐러드를 먹으려고 포크를 손대는 순간 그 안에서 녹색 애벌레 한 마리가  꿈틀거리며 기어 나왔다.  


효율성 추구를 전형적인 도시인 포마씨옹 책임자 P에게 요리사 C는 예전에 사람들은 보면 서로 도와 주면서 살았다며, 요즘은 사람들이 항상 뭔가를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우려고 하는데 그러면 안되는 거라고, 너무 계획성 있게 플래닝을 짜서 사는 건 참다운 삶이 아니라며, 요즘의 자본주의는 정말 우리들의 삶에 부정적이라고 했다. 거기에 레게머리 H는 하늘의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며, 비행기가 날아가면서 왜 꼬리 끝으로 연기를 남기는지 아냐고 물었다. 포마씨옹 책임자 P는 모른다고 대답을 하자 저 비행기는 chemtrails이라고 했다. 즉, 다양한 동기를 가진 은밀한 작전을 수행하는 항공기가 화학 및 생물학적 화학물질 등을 공중에서 살포하여 생기는 켐트레일이라고 덧붙였다. 포마씨옹 책임자 P가 커피를 다 마시기도 전에 R쉐프는 낮잠 자러 갈 시간이라며 식사 끝나면 가도 좋다는 말을 하고 그녀는 식탁에서 일어났다.


나는 포마씨옹 책임자 P에게 천천히 커피를 마시라고 말을 하며 아침에 출근길에 내가 타고 온 자전거 타이어가 고장 났으니 우리집까지 나와 나의 자전거를 태워 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어차피 우리집은 포마씨옹 책임자 P가 돌아가는 길에 있으니 태워 주겠다고 했다. 나는 가방을 들고 와서 이 상황에 상당히 충격을 받은 얼굴 표정인 포마씨옹 책임자 P에게 R쉐프는 낮잠자러 갔으니 커피 다 마셨으면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말을 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포마씨옹 책임자 P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까 레게머리 H가 말한 비행기 이야기가 뭐냐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포마씨옹 책임자 P는 프랑스에 이런 곳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지만 실제로 와본건 처음이라며 본인이 인턴들이 하는 셀수 없이 많은 캠핑과 호텔들을 방문해 봤지만 여긴 정말 별난(insolite)곳이라며 본인의 기억에 평생 남을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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