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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리에 Mar 12. 2024

프랑스 시댁과 중년 인턴십 구하기

▶ 인턴 구하기 (2022.5 - 2022.6) 


또 다시 인턴 자리를 구해야 했다. 인턴을 구하지 않으면 인턴 실습 이후의 포마씨옹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인턴에서 내가 했던 것을 바탕으로 인턴보고서를 써야 했고 게다가 경영분석을 통한 60페이지 가량의 프로젝트를 써야 되었으며 이것을 심사위원단 앞에서 발표를 해야 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의 선결조건은 인턴 자리를 구하는 것이며 이후의 포마씨옹을 위해서라도 꼭 해야 되는 필수불가결한 사항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인턴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포마씨옹을 따라가기 위해서 일상생활의 프랑스어가 아닌 한층 더 어려워진 ‘직장에서 일을 하기 위한 프랑스어’를 배워야 했다. 그리고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프랑스어는 매일 나에게 이해하고 외워야 하는 단어들을 쓰나미처럼 쏟아냈다. 나는 수없이 미친듯이 쏟아져오는 그 프랑스어 단어들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들이 흐르면서 나에게 인턴을 빨리 구해야 하는 시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나와 같이 포마씨옹을 듣는 동료 중 50%는 포마씨옹이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인턴을 구하고 이 포마씨옹을 시작했다. 이번에 어떻게 인턴을 구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프랑스 남부 시골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 경직된 멘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똑같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종종 마주치는 동네였다. 대기업이나 회사들도 없으며 가족기업 규모정도인 아주 작은 소규모 상공업만 있는 마을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산으로 둘러싸인 이 시골마을의 자연은 너무 아름답지만 배울 수 있는 기관도 없고 일자리도 없었다. 게다가 배움과 동떨어져 세상 모든 글자가 알파벳으로 쓴다고 생각하는 동네 사람들도 많았고, 다른 세상을 알지도 못하면서 프랑스가 최고라며 타국은 무시하고 배척을 먼저 하고 보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어디에 나의 인턴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야 할지 막막했다.


어쨌든 인맥도 없는 나로서의 방법이 없었다. 사람들이 어떤 멘탈을 가지고 있건 간에 나에게 남은 최선의 방법은 직접 방문해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돌리는 candidature spontanée(자발적인 입후보)를 하는 것 뿐이었다. 나는 작년에 이어서 두번째로 다시 인턴을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들고 내가 사는 동네 호텔부터 돌기 시작했다.


일주일 35시간동안 포마씨옹에 붙들려 있어서 아침 6시에 집을 출발해서 포마씨옹을 수행하고 집에 귀가하면 19시가 되었다. 그러므로 주중 동안 이력서를 돌리기는 불가능했다. 그러므로 유일하게 이력서를 돌릴 수 있는 시간이 되는 요일은 오전으로 포마씨옹이 끝나는 금요일 오후와 주말이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동료들은 모두 인턴을 구했기 때문에 나만 구하면 되었다.


드디어 금요일 오전 동안의 비대면 포마씨옹이 끝나고 점심을 후루룩 마신채 이력서를 들고 나가려는 순간에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은 본인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내가 이력서를 돌리러 나간다고 말했다. 어릴적부터 엄마의 전화에 본인의 일상을 낱낱이 말을 하는 남편이다. 이번에도 여과없이 내가 인턴을 구하려고 이력서를 돌리려고 나간다는 말을 본인 엄마에게 말을 했다. 그 말에 시어머니는 히스테리성의 고성의 목소리로 “프랑스에서는 전화하지 않고 이력서를 돌리지 않아. 며느리가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네” 라고 했다.


나의 엄마가 얼마나 나를 정말 곧고 올바르게 지독하게 성실하게 키웠는데 그따위 말을 하는지 시어머니의 정신 상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어릴때부터 부모님의 부재로 인해 기숙사에서 자랐던 시어머니야말로 문자 그대로의 가정교육을 받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정작 본인이 가정교육을 받지 못했으면서 남에게 본인의 결여를 투사시키는 시어머니였다. 그런 그녀가 아이러니하게 나를 프랑스의 예의를 알지 못하고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 취급을 했다. 내가 그렇게 인턴십을 하겠다며 노력을 하는 와중에 시아버지는 그렇게 노력해봐야 프랑스에서 취업이나 하겠냐고 했다. 내가 암투병을 하면서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해 몽펠리에에 위치한 국립대 어학원을 하루 6시간 통학하며 배우러 다닐 때도 프랑스어를 내가 배워봐야 직업을 구하겠냐며 프랑스어 어학원은 "실업자 양성하는 공장"이라고 말을 했다.  


가장 화가 났던 것은 남편의 태도였다. 본인 부모의 말을 듣고 귀가 팔랑거려서 이력서를 돌리려고 하는 나를 붙잡고 본인 엄마 말이 맞다며 내가 프랑스의 예의범절을 모른다고 같이 큰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같이 사는 인생의 동반자로서 내가 힘들 때 나를 도와주어야 할 사람인데 오히려 본인 부모의 의견에 동의를 하며 나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가 인턴을 구하려 할 때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히려 열심히 구하려고 하는 나를 남편을 필두로 시댁 식구들은 경멸하고 비아냥거리기만 했다. 한국의 선구적인 모더니즘 작가인 이상의 ‘날개’의 한 구절이 머릿속을 뱅뱅 돌았다. 이상이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라는 표현을 썼을 때 내가 시댁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이었을까 ?


남편의 비아냥 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며 대문을 열고 집을 빠져 나왔다. 포마씨옹을 같이 들었던 A에게 전화를 걸었다. 프랑스에서도 이력서를 직접 들고 가서 즉석 채용 지원 candidature spontanée를 해도 괜찮지 않느냐는 말에 A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안그러면 어떻게 인턴을 구하겠냐고 오히려 빨리 이력서를 돌리라는 말을 했다. A의 말에 힘을 얻어 나는 8군데 정도 호텔을 돌면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내고 나를 소개하고 인턴을 구한다고 말을 하고 다녔다. 인턴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우연히 E를 만나게 되었다.


집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집의 정원에서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니 바로 E가 나를 부른 것이었다. 그녀는 퇴근 이후에 집에 돌아와서 정원의 한 구석에 있는 텃밭에 ‘감자’를 심다가 나를 본 것이었다.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예상치 못하게 그녀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바로 내가 살고 있는 동네로 몇 달 전에 이사를 온 것이었다. 그녀는 남자 친구가 외국인이어서 carte vitale 에 문제가 있다며 그런 행정 절차를 내가 외국인으로서 어떻게 처리를 했는지 궁금해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날 이후에도 포마씨옹을 마치고 나서 집에 귀가하어 내가 동네 한바퀴를 걷는 시간에 그녀는 퇴근해서 감자를 돌보고 있었기에 우리는 종종 그 시간에 더 자주 마주치게 되었고 나는 인턴을 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마침 본인이 아는 사람이 있다며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게다가 포마씨옹에서 요구하는 인턴 자리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었다.


Aide-toi, le ciel t'aidera.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정말 하늘이 나를 버리지는 않았나보다 싶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이 프랑스에서의 나의 삶에도 적용이 될 줄이야…


정말 신기한 것은 그녀와 이야기를 자주 나누게 되었던 그 타이밍은 그녀의 남자친구가 본인 나라로 2주간 갔던 때였다. 남자친구의 가장 친한 친구가 결혼식을 해서 꼭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래서 E는 혼자 저녁을 보내야 했기에 나와 좀 더 오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심지어는 나의 인턴을 구하기 위해 본인의 지인에게 직접 연락을 하고 나를 그 장소에 차로 데려다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녀의 소개 덕분으로 인턴 면접을 봤고 일사천리로 인턴 계약을 체결하게 되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다.


시댁 식구들은 아무런 도움은 커녕 오히려 인턴을 구하고 노력하는 나를 경멸하며 비아냥대었지만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고 얼굴 안면만 알고 있었던 E가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 밝은 햇살과 아름다운 자연이 드디어 찾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E는 나의 친한 친구도 아니었기에 선뜻 나를 본인의 지인에게 소개를 해 준 그녀에게 정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인연의 힘에 정말 놀라운 건 E가 현재 내 남편의 옛날 여자친구였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그저 우연이 아닌 내가 가고 있는 인생의 길에 필연적으로 같은 길을 가로지르고 있는 사람과 만나게 되어 있는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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