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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리에 Mar 08. 2024

프랑스어의 사적인 이미지와 양가감정

▶ 포마씨옹 1 (2022.4 - 2022.6) 

시작부터 삐걱거리는 미운오리새끼의 포마씨옹이 시작되었다. 포마씨옹은 10개월 과정이었고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포마씨옹 9주 : 2022년 4/27일 ~ 2022년 6/27일
인턴실습 10주 : 2022년 6/27일 ~ 2022년 9/02일
포마씨옹 23주 : 2022년 9/03일 ~ 2023년 2/10일


즉 10주동안의 인턴십 전후로 수업을 받는 시스템이었다. 인턴십 하기 이전 두 달 과정은 많은 자료들을 읽고 또 읽고 듣고 또 듣고 정리해서 발표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경영, 마케팅, 조직 인사에 관한 개념들에 대해 윤곽선을 크게 그려 주면 나머지는 우리들이 자발적으로 정보들을 찾아서 읽고 의논하는 식이었다. 프랑스의 노동법, 회계, 직원채용, 마케팅, 조직인사, 경영, 기업이 준수해야 하는 안전규칙 기타등등에 관한 자료들도 읽었다. 정말이지 읽을 것들이 넘쳐났다.  


수업방식은 formateur(직업인 육성자)가 ‘프랑스 노동법 역사’라는 테마를 주면 나를 비롯해서 포마씨옹 듣는 동료들은 노동법의 역사에 대해 연도별로 나누어서 자료를 조사하고 각자 발표를 해서 정보를 공유하는 형태로 진행이 되었다. 노동법의 개정은 프랑스인들의 유급휴가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어야 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프랑스 노동법에 한걸음 더 나아가서 Convention collective(단체협약)이 무엇인지 알아야 되었다. 단체협약이란 ‘근로자와 사용자의 노동조합 간에 체결되는 협약(un accord conclu entre les syndicats de salariés et d'employeurs)’으로서 노동 및 고용 조건에 관련된 모든 사항이 적혀 있는 문서이다. 프랑스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Convention collective(단체협약) 를 성경처럼 침대 옆에 놓고 읽어보라는 말도 있다.


이렇게 노동법과 단체협약에 대한 자료들을 읽고 났더니 직원을 채용하라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방법은 발표평가와 또 비슷했다. 채용절차에 관한 모든 것을 자료 검색해서 읽고 어떤 순서로 모집한지 내가 알아냈던 채용과정을 문서로 작성해야 되었다. 한명의 직원을 고용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이 굉장히 많고 복잡했다. 누군가를 고용하는 인사채용담당자로 일을 해보니 평가표와 입사전 준비해야 할 것, 직원의 채용 자리에 맞는 구체적 능력 평가표, 구인광고, 등.. 너무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특히 노동 고용법에 대해 알아야 했고 고용계약에 따른 조건들도 따져가며 고용문서들을 작성해야 되었다. 프랑스에서 아직 회사에서 근무해 본적도 없고 겨우 국립대 어학원의 DALF C1과정을 마치고 합류해서 따라가기도 버거운 포마씨옹이었다. 내 프랑스어 능력으로 채용되기도 힘든 판국에 내가 누군가를 채용하는 역할을 하며 그 준비를 하라니… 정말 어디부터 시작해야 될지 난감했다.


동료들은 본인들에게 맡겨진 일들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남들에게 말하는 시간 조차도 본인에게 이득이 될지 아닐지를 따져가며 초시계를 재며 말을 하는 그들에게 나는 질문하기도 어려웠다. 프랑스어를 그들처럼 빠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본인들의 장애물인양 취급하며 얼음장처럼 냉랭한 M의 태도는 나를 경멸하는 분위기까지 내뿜었다. 본인들에게 이득이 되지 않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다는 그들의 실용적이고 계산적인 태도는 더욱 그들과 나 사이에 심리적인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장벽이 놓여 있다고 느껴졌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나는 그들의 무리에 함께 섞일 수 없는 미운오리새끼였다.


이기적이지만 다들 성실함을 기본 장착으로 하고 있는 동료들이기에 나의 성실함은 별다른 특별한 것이 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주어진 동등한 시간 내에 누가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해내는 지가 관건이었다. 아침 8시에 시작해서 12시까지 포마씨옹이 진행이 되고 12시부터 13시까지 점심 시간이다. 그리고 오후 13시부터 17시까지 또 4시간이 수업이 진행이 된다. 그렇게 하면 지칠만도 한데 5분도 일찍 끝내달라는 말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 오전은 정확하게 12시에 끝나고 오후는 정확하게 17시에 끝이 났다.


프랑스어로 이해를 하는 속도가 그들에 비해  나는 거북이보다 더 느린 달팽이였다. 그런데 동료들은 낮잠을 자지 않은 토끼도 아니고 성실하게 맹렬하게 앞을 향해 돌진하는 치타들이었다. 토끼가 잠 안자고 달리면 당연히 빨리 달리는 건 토끼다. 하루종일 잠도 들지 않고 낮에도 밤에도 걷는다 하더라도 거북이는 토끼에 상대가  안된다. 나와 함께 포마씨옹을 듣는 동료들은 오히려 지칠만한 오후가 되면 커피, 콜라를 마시거나 단과자들을 먹고 다시 부스트업을 하고 맹렬히 달렸다. A는 비록 몸은 쉰살이었지만 아침에는 커피를 들이붓고, 오후에 체리콜라를 한 캔 마시고 17시까지 쉬지 않고 읽고 듣고 말하고 모두와 이야기하고 질문하고 모두에게 반격하고 끊임없이 배우는 지치지 않는 체력을 과시했다. 말할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비축하는 동료들이었다.


이런 그들이었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한 과목을 배울 때 만큼은 모두 평등하게 지쳤다. 그건 바로 회계 과목이었다. 프랑스어로 듣는 회계는 프랑스어가 아니라 그건 또 다른 외국어였다. 한국인이어도 회계의 재무제표를 모두가 이해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인에게도 전공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회계였다. 일단 회계 용어가 가지고 있는 정의를 이해하고 어떻게 적용해야 되는지 알아야 되는 논리적 과목이었다. 게다가 회계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엑셀을 다룰 줄 알아야 되었다. 나는 대학원 때 논문을 쓴다며 그나마 엑셀로 함수 사용을 해봤기에 살짝 숨통이 트였다. 회계와 엑셀 둘다 어려워 했던 S가 나에게 물었다.


S : 난 회계를 이해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그런데 너는 어떻게 이걸 따라가고 있는거야?

나 : 나에게는 이미 프랑스어도 힘들어. 그런데 프랑스어로 된 회계는 너무 어려워서 고난 그 자체야. 그래서 이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주말에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밤 10시까지 붙들고 복습을 했어. 그렇지 않으면 나는 배웠던 내용들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거든.


우리의 말을 듣고 있던 경멸의 표정을 띄며 얼음장처럼 냉랭했던 M의 태도가 살짝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상냥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경멸의 표정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어쨌거나 나는 회계 과목을 들으면서 프랑스에 살면서 난생 처음 ‘평등’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즉 프랑스인들과 함께 듣는 포마씨옹은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해도 1년안에 그들을 따라잡기는 커녕 포마씨옹을 이해하기도 힘든 나였다. 그러나 프랑스어로 배우는 회계 수업에서 우리가 느끼는 어려움은 그들이나 나나 똑같았다. 프랑스 행정 시스템을 알고 있는 그들이 이해하기 더 쉬운 것은 당연했지만 그들도 회계를 어려워했고 힘들어 했다. 그래서 나에게처럼 그들에게도 똑같이 어렵고 힘든 회계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과 내가 평등하게 느껴짐을 의미했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고자 할 때 우리가 가지는 기억력은 감정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프랑스 사람들은 항상 빈정대기 좋아하고 끊임없이 남을 비판하기 좋아했다. 특히 시댁을 필두로 해서 남편 친구들, 포마씨옹을 같이 듣는 사람들도 긍정적인 말보다는 부정적인 말들을 쉬지 않고 내뱉었다. 그들을 보면 불평하는 것이 국민 스포츠인양 느껴졌다.


그러므로 프랑스어는 나에게 흔히 파리 에펠탑을 배경으로 달달한 연인들의 로맨틱한 속삭임도 아니었고, 낭만적인 미드나잇 파리의 풍경을 떠올릴만한 것도 아니었으며, 아멜리에에서 나오는 것처럼 숨바꼭질하는 듯한 것도 아니었고, 당신의 사랑은 무슨 색이냐고 대대적으로 영화 포스터에 나올 만큼의 느낌도 아니었고,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버킨이 부르는 Je t’aime 노래와 같은 느낌은 더더군다나 아니었다. 나에게 프랑스어의 이미지는 흔히 프랑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인 혁명, 예술, 낭만으로 가득찬 언어가 아니었다.



나에게 사적인 프랑스어의 이미지는 법정 공방에서, 그리고 청문회에서 속사포처럼 수많은 반대의견의 총알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가운데, 그것을 방어하면서 감정을 내세우지 않고, 이성적으로 본인의 의견을 차근차근 설명하여 남들을 설득시켜야 하는 무기였다. 즉 나에게 프랑스어라는 것은 그냥 말을 잘하면 되는 언어가 아니라, 칼이나 총이나 방패와 같은 무기같은 존재였다. 이 무기가 없으면 커다란 원형경기장에서 무방비 상태로 맨몸으로 여러군데에서 발사하는 기관 따발총에 난사당해서 온몸에 구멍 투성이가 되고, 이내 몸뚱어리가 산산조각으로 흩어져 파편이 되어 날아가 버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테레사 수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La vie est un défi à relever, un bonheur à mériter, une aventure à tenter.
인생은 도전해야 할 도전이고, 마땅히 받아야 할 행복이며, 시도해야 할 모험입니다.


정말 좋은 말이다. 그녀의 말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동의한다. 인생 살만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많은 어려움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기적 같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마흔의 중년의 나이에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 사는 것에 적응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나는 충분히 이미 인생의 모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우리’라는 개념보다는 뼛속 깊은 곳까지 ‘나’로 점철되어 사고하는 개인주의 프랑스인 남편과 ‘정’을 중요시하고 ‘나’보다는 ‘우리’를 우선시하며 사고하는 한국인으로 태어나 자라왔던 나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좋은 관계일때는 두드러지지 않는 이 문화의 사고 차이는 의견충돌이 있을 때 이방인으로서 타국에 살고 있는 나를 고립시키며 힘들게 한다. 그러므로 언제 남이 될지도 모르는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나의 삶 자체가 하루하루 기적을 행하고 있는 인생의 모험을 충분히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가 했던 말에 반감도 든다. 내가 프랑스에 살면서 겪은 수많은 어려움을 돌이켜 생각하면 한 고비 고비들을 넘어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프랑스어를 못해서 체류증 갱신을 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서 한국에 계신 아버지 임종을 보지 못한 것, 언어상실과 고립된 고통속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며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면서도 나의 고통을 프랑스어로 말도 하지 못했던 것, 시댁 식구들이 나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로 인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세까지 가지게 된 것, 프랑스인과 포마씨옹을 같이 받으면서 그들에게 받은 경멸의 눈총등을 받으며 정신적인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 순간에는 정말이지 타국에서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되는지 싶다. 그 나라의 언어를 제대로 그들만큼 구사하지 못한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업신여김을 받고 조롱을 받아야 한다니 정말 행복같은 것은 나와 가장 멀리 있는 것 같다. 정말 인생이 이렇게 힘든 경험 뿐이라면 시도하고 싶지 않은 모험이기도 하는 양가 감정(ambivalence)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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