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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리에 Mar 05. 2024

한국어가 쓸모없어?

▶ 포마씨옹 1 (2022.4 - 2022.6) 


수많은 시험과 관문을 거치고 포마씨옹에 합격을 한 기쁨도 잠시였다. 막상 포마씨옹을 시작하니 훨씬 높은 수준의 더 많은 시험과 써야 할 보고서들 그리고 수많은 발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 주에는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진단평가 했다. 프랑스어, IT, 영어, 실무에 관한 지식들이었다. 프랑스어로 시험보는 건 어렵더라도 개별적으로 보는 것이었으며 시험 자체는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에 결과에 개의치 않고 심적으로는 괜찮았다.


반면 혼자 하는 것이 아닌 그룹 발표 평가는 그 반대였다. 그룹 발표는 주제를 하나 주고 관련 자료들을 검색해서 함께 의논해서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어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준비 제한 시간은 오전 3시간, 그리고 오후는 발표 시간이었다. 포마씨옹에 투입되자마자 배운 것도 없는데 발표부터 하는 걸로 시작되었다. 나로서는 이게 너무 이상했고 불합리하다고 여겨졌지만 모든 것이 이런 순서로 시작했다. 일단 배우지 않고 알아서 풀어보고 나중에 배우는 시스템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룹 발표 평가야말로 단편적인 지식의 평가가 아닌 종합평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룹 발표 평가’라는 단 하나로서 여러가지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주제에 적절하게 관련된 자료를 검색하는 능력, 찾은 자료들을 듣거나 읽고 이해하는 능력, 그리고 그것들을 요약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그룹원끼리 본인의 의견을 말하고 의견차이를 조율하며 상대방과 의사소통 가능한지 묻는 커뮤니케이션능력, 그룹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 자료를 파워포인트로 만들 수 있는 컴퓨터 사용 능력, 남들 앞에서 발표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심지어는 발표를 하는 것에 있어 시간관리, 스트레스 관리 등을 이렇게 셀수 없이 많은 것들을 모두 평가할 수 있는 종합평가 였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제한 시간내에 프랑스인들과 같은 속도로 이것들을 해야 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당시 포마씨옹을 받기 시작할 때는 내가 프랑스에 발을 딛은지 6년이 되던 해였다. 그때 처음으로 프랑스어를 알파벳부터 시작해서 배운 내가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고 프랑스에서 일했던 그들과 같은 속도로 일처리를 하기에 나의 프랑스어 능력은 역부족이었다. 억울하지만 이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나는 프랑스에 산지 6년 밖에 안되었던 내가 40년 이상 평생을 프랑스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능력에 버금가게 프랑스어를 그들과 같은 속도로 듣고 읽고 이해할 수는 것은 불가능했다. 6년 산 사람과 40년 산 사람들과 산술적으로 대략 계산을 해서 비교를 해보자. 6년 프랑스에 살았던 내가 40년 프랑스에서 사는 사람들의 프랑스어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6x7=42로 내가 하루를 대략 7배를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루 24시간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나만 7배로 늘려서 살수 있다는 말인가 ? 불가능이다.


이 포마씨옹이 힘들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역시 시작부터 그룹발표라니 그야말로 난관이었다. 배운 것도 없는 데 발표부터 하라니 가진 돈이 없는 데 자꾸 돈 내놓으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내 입장에서는 부당하다고 여겨졌지만 그러나 그들 입장에서 보면 이 포마씨옹은 충분히 발표부터 시작할 수 있을만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포마씨옹은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는 학교가 아닌 이미 현장에서 충분한 경력을 가진 사람 대상이었기에 이론과 실무가 어느정도 갖추어져 있는 사람들을 선별해서 교육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미 당연히 발표부터 시작해서 이 사람이 어떤 강점, 약점이 있는지 한번에 파악할 수 있는 종합평가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었다.


어쨌든 준비 시간 3시간의 오전이 지나고 발표 시간이 되었다. 포마씨옹 진행자가 오전에 준비한 자료를 앞에 나와서 발표하라고 했다. 나로써는 발표하는 내용을 이해를 하긴 했지만 그것을 나는 프랑스어로 발표할만한 실력이 안되었다. 열심히 했지만 내가 이 당시 가진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분하지만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모두 발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은 발표할 능력이 안되니까 포마씨옹을 들으면서 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니 이번에는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포마씨옹 진행자 C는 “왜 프랑스어가 프랑스인만큼 안되는 사람이 포마씨옹에 합류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이야기를 했다.


수업이 진행되는 방법도 학교에서처럼 포마씨옹 진행자가 먼저 설명을 해주고 그에 따라서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수업은 쌍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주제 하나만 던져 주면 배우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이 따로 없이 대화를 나누며 토론하고 아는 사람이 서로 설명해 주는 수업의 형태였다. 집이라는 zone de confort 를 떠나서 하루종일 프랑스어를 듣고 있는 날이 다시 또 시작되었다. 그것과 동시에 시작된 두통은 하루종일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너무나 머리가 아파오는 데 이 두통의 원인이 하루종일 프랑스어를 강제로 듣고 이해를 하는 상황에 놓여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도시공해 오염이 심각해서 그런지, 아니면 와인밭들로 가득찬 곳 가까이에 위치한 포마씨옹 센터에서도 맡을 수 있는 살충제(pesticide) 냄새때문인 건지 아니면 바로 옆에 있는 5G 때문인건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의 복합적으로 작용한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매일 머리가 아팠다.  


아침에 일어나서 대충 빵 몇조각을 먹다가 화장실로 달려가서 토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토하고 나서 입맛이 없지만 하루종일 수업을 들으며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아침을 먹고 포마씨옹 센터에 갔다. 점심 시간에도 두통이 계속 되면 돌리프란을 복용하고 오후 수업을 계속했다.


포마씨옹을 시작해서 총 5주동안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실제로 눈물을 쏟지 않았던 날들도 살짝만 건드려도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나날들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나에게 많이 어려웠다는 것은 이제 반복해서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쉬웠던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영어’였다. ‘영어’ 시간 만큼은 마음 놓고 편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달콤하고 시원하게 달래주는 유일한 시간마저 같이 포마씨옹을 듣는 프랑스 얘네들이 어렵게 바꾸어 버렸다. 바로 영어를 한 문장씩 읽고 프랑스어로 번역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포마씨옹 진행자 C : 다음 영어 문장을 읽고 프랑스어로 번역해봐. 

나 : … 하고 싶지 않은데. 나의 뇌는 프랑스어를 말할 때와 영어를 말할 때 같은 뇌의 영역을 활성화 시키고 있지 않거든. 그래서 나는 영어를 모국어인 한국어로는 번역할 수 있지만 영어를 프랑스어로 번역은 안해봤어.

포마씨옹 진행자 C : 한국어는 쓸모없어.

나 : 그럼 어쩔 수 없지.


난 도대체 왜 영어를 프랑스어로 번역을 해야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포마씨옹 진행자 C가 영어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라고 했던 이유는 같이 포마씨옹을 듣던 S가 영어 기초가 너무 없어서 이해를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에 S를 위해서 모두가 프랑스어로 번역을 하는 방향으로 수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내가 프랑스어를 이해하지 못할 때는 비아냥거리고 비판하면서 왜 영어 기초가 전혀 없는 S를 배려해서 우리 모두가 그녀를 위해 영어를 프랑스어로 번역을 하는 특별 대우를 하고 있는지 불합리했다.


한국어가 쓸모가 없다는 말은 정말 화가 났다. 도대체 말을 해도 점점 더 재수없게 한 마디씩 하는 포마씨옹 진행자 C는 날더러 프랑스어도 못하는 애가 들어왔다며 귀찮게 되었다며 말했던 그 여자다. 그 여자는 평소 대화법이 그렇다. 다른 사람을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방식으로 말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 여자가 했던 한국어가 쓸모가 없다는 말은 내가 죽을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 다는 속담이 있지만 이 경우에는 정반대였다. 말 한마디로 평생의 원한을 그 여자는 살만한 짓을 했다. 한마디를 하더라도 꼭 남을 비꼬면서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정말 싫다. 그러나 더 싫은 건 그 여자에게 제대로 반격해서 갚아주지 못한 나의 모습이었다.


포마씨옹 시작할 때 만발한 coquelicot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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