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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리에 Feb 27. 2024

노동시장에서의 프랑스어

▶ 중년의 인턴 생활 (2021.11)


프랑스에서 정착하고 나서 부터 새로운 것 투성이었다. 평생 도시에서만 살다가 프랑스 시골에서 살려고 하니 시골의 삶에도 익숙해져야 했고, 나의 생각을 표현 하기 위해 프랑스어도 배워야 했고, 암치료도 처음으로 받아봤다. 그리고 이제 한국에서도 해본 적이 없는 인턴 생활을 프랑스에서 해야 되는 상황이 되었다. 마흔이 넘은 중년의 나이에 게다가 프랑스어도 유창하지 않은 내가 한 달 동안 실제 기업에서 인턴(stage) 실습을 해야 하다니 맙소사 또 새로운 첫 경험이다. 인턴 실습을 하는 것도 막막한데 더욱 막막한 것은 인턴 실습을 하는 기업을 손수 물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업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이력서와 지원동기서를 제출하고 나를 프랑스어로 소개를 하며 연수생으로 받아달라고 부탁을 해야 했다. 모든 과정들은 당연히 프랑스어로 진행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난생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뽑을 의사도 없는 기업들을 방문해서 이력서를 제출하고 나를 연수생으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남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내가 일하는 사람 붙들고 나 좀 인턴으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게다가 그것도 프랑스어로 말이다. 좋은 자리들은 전 세계 어느 곳이나 그렇듯 낙하산으로 이미 배정되어 있었고 인맥도 없는 내가 도대체 어디에 지원을 할 수 있을지 그저 막막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력서를 어느 기업에 지원을 했는지, 어떤 피드백을 받았는지조차 모두 기록을 해야 되었기 때문에 떨어지더라도 지원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에서 난생 처음으로 모르는 회사들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내 소개를 하고 인턴을 구한다며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친구 N과 마주쳤다. 2년만의 재회였다. 시골 동네에서 흔하지 않은 아시아 출신의 친구였다. 2년동안 서로 바쁜 일상에 쫓겨서 서로 연락이 자연스럽게 끊겼던 상태였다. 나는 그동안 몽펠리에 국립대 어학원을 다니면서 프랑스어를 배우기에 바빴고, 친구 N은 취업을 해서 일을 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 N은 호텔에서 청소부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친구 N에게 혹시 그녀의 직장에서 리셉셔니스트로 일할 인턴생을 필요로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고맙게도 친구 N은 사장에게 부탁을 해보겠다고 했다. 단어만 몇 개 나열하는 수준으로 프랑스어를 전혀 구사하지 못한 친구 N이었지만 사장은 남들보다 더 성실하고 열심히 청소를 잘하는 친구 N의 능력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성실하게 일하는 친구 N 덕분에 사장은 나에게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을 주었다. 이렇게 나는 우연과 필연의 결합으로 인턴 면접을 합격하게 되었고 나는 인턴 수습을 하게 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것도 어렵게 기적적으로 구했던 인턴자리였기에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동기부여가 충만했다. 그 호텔은 17세기에 지어진 수도원을 리모델링 해서 호텔로 변신한 곳이었다. 나는 그 호텔의 시스템을 최대한 빨리 파악을 하려 노력하며 틈나는 대로 메모를 했다. 호텔의 전반적인 운영방식을 비롯해서, 파트너사와의 협약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또 예약 시스템 소프트 웨어 사용방법도 배웠다. 호텔에서 일해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호텔의 마케팅 현황, 예약 시스템 지불 방식 차이, 호텔 매출현황등을 포함해 모든 것이 새로웠고 흥미로웠다. 


내가 인턴을 시작한 날은 11월 2일이었다. 이 시기는 프랑스에서 2주 동안의 투썽(toussaint) 바캉스 기간이었다. 가을 방학이라고도 불리는 투썽(toussaint) 바캉스는 ‘모든 성인의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간동안 프랑스에서는 가족이 휴식을 취하거나 여행을 하거나 여가 활동을 한다. 그러므로 내가 인턴 수습을 하는 호텔에는 고객들 많았으며 모든 객실은 만석이었다. 규모가 크지 않은 호텔이었고 99%의 고객이 프랑스인이었다. 프랑스인 고객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리셉셔니스트로서 당연히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야 했다. 호텔 업무 자체도 모르고 호텔 서비스업을 할만큼의 프랑스어 수준도 되지 않은 내가 나설 자리는 없었다.


게다가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내가 인턴을 시작하는 날에 청소하는 직원 3명 중에 한명이 휴가를 갔다. 그리고 나의 인턴 생활은 réceptionniste(리셉셔니스트)의 일이 아닌 점점 더 청소를 하는 직원의 빈자리를 메꾸는 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나의 일은 커피 머신 청소하기, 수십번 돌아가는 식기 세척기 안에 있는 그릇 매번 정리하기, 요거트 만들기, 벽난로에 장작 피우기, 아침 식사 준비하기, 잼이나 꿀 등을 포함한 음식물들 구비해 놓기, 바에 음료수와 알콜을 포함한 재고정리하기, 야외 정원 및 베란다 청소하기, 테이블 닦기, 그리고 다른 2명의 청소를 하는 직원들과 같이 방 청소하는 것이 주업무가 되었다. 


인턴 수습을 하기 한달 전에 사장과 나는 인턴수습계약을 체결했었다. 그러므로 사장은 그 한달 전부터 근무 스케줄을 변경할 수있다는 뜻도 된다. 사장은 청소하는 직원을 휴가를 주는 대신 그 자리를 인턴으로 대체했고, 그 인턴은 바로 나였다. “최소의 비용(인턴 사원 무급여)으로 최대의 효과를 실현”하는 사장의 결정이었고 우연이 아닌 수익성에 맞추어 계산한 사장의 철저한 계획적인 스케쥴이었다. 


그러나 인턴 자리 구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웠던 것이었기에 나는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게다가 2년만에 만난 친구 N과 함께 서로 대화도 나누면서 청소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 N은 이 호텔에서 일하기 전에 다른 호텔에서도 청소하는 일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프랑스어를 말할 줄 몰라서 해고되었다고 했다. 정확히 말해서 프랑스어가 문제라기 보다는 다른 동료들과의 의사소통이 안되는 것이 해고사유였다. 이후 그녀는 이 호텔에서 일을 시작했다. 호텔 사장은 효율성과 실용성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기에 의사소통 능력보다는 친구 N의 성실함을 더 높은 가치로 삼았다. 그리고 친구 N도 이에 만족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청소하는 동료 B가 친구 N을 대하는 태도였다. B는 N의 선임자였고 N에게 청소하는 일을 가르쳐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B는 N이 본인이 말하는 프랑스어를 N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자주 윽박을 질렀다. 사장에게 경고를 받았다고 했으나 사장이 없을 때 B는 계속해서 N을 괴롭혔다. 


N에게 대하는 B의 태도는 내가 인턴으로 일하는 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도착한 B가 어제 본인이 N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했는데 N이 알겠다고 대답했는데 지금 보니 전혀 안되어 있다며 N이 아무것도 이해도 하지 못하면서 이해했다고 대답했다며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 말을 하고 다녔다. 그녀의 말버릇은 « N ne comprend rien. »였다. N은 아무것도 이해를 못한다는 말을 하루에 스무번도 넘게 반복했다. 아무리 그녀가 나쁜 의도로 하는 말이 아니더라도 마주치는 모든 직원들에게 N는 이해를 못한다는 말을 매일 수십번씩 반복하는 것은 명백히 직장에서의 'harcèlement moral (도덕적 괴롭힘)'이었다. 


그녀가 N가 프랑스어를 못한다며 아무것도 이해못한다고 반복하는 말에 내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는 그녀가 하는 프랑스어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녀가 N을 겨냥해서 하는 말이 꼭 N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찌되었건 간에 나도 프랑스어를 들으면 모두 100%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나는 B가 N은 아무것도 이해를 못한다는 반복되는 말을 함으로써 친구 N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나도 포함해서 공격하고 있다라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프랑스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무시당하고 홀대당하며 직장에서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니 너무 끔찍했다. 더욱 나를 정신적으로 힘들게 했던 것은 직장에서의 학대를 받으면서도 그에 대해 본인에 대한 방어조차 하지 못하는 무력한 N의 모습이었다. 어쩌면 나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프랑스어로 말할 수 없다면 나도 N처럼 직장에서의 도덕적 학대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내가 열심히 프랑스어를 공부했지만 노동시장에서 바로 서비스업으로 프랑스어를 말하면서 일을 하기에 직업적인 나의 프랑스어의 수준은 충분하지 않았다. 바로 리셉셔니스트로 투입되서 고객의 예약을 받고 안내를 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었다. 직장에서의 학대를 받고 있는 N의 모습은 어쩌면 나의 미래의 모습일지도 몰랐다. 이것이 내가 중년의 나이에 인턴 수습으로 처음으로 일하면서 프랑스 노동시장에서 마주한 씁쓸한 현실이었다. 


인턴 수습을 했던 호텔에서 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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