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의 에피소드에서 등장한 B는 본인의 동료 N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었다. 점심 시간에 싸온 도시락을 밖에서 먹으려고 하는 나를 보며 B는 본인은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일해야 하는 반면 날더러 넌 인턴이니 한가하게 점심을 먹을 시간도 있다며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이건 명백하게 계약서에 나와 있는 사항이었다.
B는 본인이 점심 시간 없이 7시간 일하겠다는 계약을 사장과 양자 체결한 것이고 나는 점심 시간 1시간을 포함해서 호텔에서 8시간 일해야 되는 계약 조건이었다. 나의 인턴 계약은 사장과 나의 양자 체결이 아닌 포마씨옹 센터와 나와 사장의 삼자 계약 체결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본인이 자처해서 동의하야 체결한 계약 조건을 말하지 않은 채 나에게만 한가하게 점심 먹을 시간이 있다며 비꼬는 것은 부당했다. B가 점심 시간이 없다고 했지만 잠시 주전부리를 할 시간은 매일 가지고 있었으며 사장이 없으면 수십번의 쉬는 시간을 가지며 담배 피우며 수다를 떠는 시간을 가졌다.
인턴 수습기간은 원래 한달 동안 수행 되어야 했다. 그러나 B의 직장에서의 괴롭힘으로 인해 나는 인턴 실습 1/2기간을 마치고 포마씨옹 교육기관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다. 나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포마씨옹 교육기관 담당자는 호텔에 전화해서 Rupture de la convention de stage(인턴십 협약 해지)를 요청했다. 호텔의 사장은 수락했고 나는 인턴 실습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이로써 나의 인턴 수습은 마무리가 되었다.
인턴의 첫 경험이 직장에서의 괴롭힘으로 중간에 종료가 되었음에 기분 좋을리는 없다. 그러나 이 경험으로 실제로 일하면서 직면해야 하는 적어도 프랑스어로 내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면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 살아도 본인을 제대로 변호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처절하게도 몸소 직접 깨달았다. 현장에서 배운 쓰라린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후 나는 Tourisme(관광) 분야의 포마씨옹을 위한 입학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포마씨옹 기관과 접촉해서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냈고, 담당자는 12월 1일에 입학 시험이 있으니 연필, 계산기, CV(이력서)를 지참해서 나에게 참석하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드디어 시험 당일이 되었다. 입학 시험으로는 6과목이었다. 프랑스어, 영어, 수학, 지리, 사무자동화 기술(워드, 인터넷, 이메일 기타등등), 실무시험(경영관리)에 관한 시험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A4용지 6페이지에 해당되는 종이가 주어졌고, 거기에는 이 포마씨옹을 왜 지원하는지에 관한 지원동기와 포마씨옹을 수료하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을 쓸 것이며 더도덜도 말고 반드시 2문장으로 쓰라고 했다. 고등학교때는 대학만 들어가면 시험에서 해방될 것 같았고, 대학 시절에는 취업을 하고 대학원을 진학하면 시험이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프랑스에 정착한 이후로 해년마다 각종 시험을 치르고 있다. 내 인생 마흔 중반에 이렇게 많은 시험을 보고 있을거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시험 과목 수도 많은 데다가 프랑스인들 사이에 끼어서 시험을 보는 것은 스트레스와 긴장을 유발하고 두통까지 일으켰다. 게다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실내에 장시간 머물러야 했기 때문에 약간의 구토증마저 느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렇게 수없이 많이 풀어봤던 수학 문제들을 풀면서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으려니 마음의 평온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문제를 많이 풀어보는 대한 익숙함이 가져다 준 평온함이었다. 마침내 그 평온함으로 인해 두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시험 문제를 푸는 데 살짝 흥분한 느낌마저 들면서 시험을 마칠 무렵에는 시험을 꽤 잘 봤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다음날 필기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과 함께 구술 면접 날짜가 적힌 한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구술면접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대면으로 이루어지는 대신에 전화로 구술면접이 진행이 될 거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구술면접 당일 14시, 담당자가 전화를 했다.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먼저 나의 신상 정보에 대해서 프랑스어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다음으로는 경력과 학력 지원동기, 포마씨옹 수료후에 뭘 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질문했다. 인터뷰는 예상되었던 45분을 넘어서 1시간 10분 정도 진행 되었고, 그녀는 나와 전화 인터뷰를 하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는 말을 했다. 영어 시험을 비롯한 6개의 과목에서 놀라운 점수를 기록했다는 말을 덧붙여서 말이다. 전화 인터뷰는 이렇게 좋은 느낌으로 끝났고 몇 달 후에 합격 통지를 받았다.
인생사이다.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인턴 수습 생활은 괴롭고 힘들어서 중간에 인턴십 협약 해지를 했지만 그 이후에 좋은 포마씨옹에 합격을 하다니 정말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사 새옹지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