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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리에 Feb 23. 2024

프랑스에서 첫 포마씨옹

▶ 포마씨옹 (2021.9-2022.2)


3월에 한 학기가 시작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프랑스에서의 학기는 7-8월의 여름 바캉스가 끝나고 9월에 시작한다. 그래서 9월이 되면 기나긴 여름 바캉스 기간 동안 멈춰 있던 것들이 다시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에게는 2년간 몽펠리에 국립대 어학원에서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배웠던 프랑스어를 바야흐로 실전에서 사용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나는 프랑스에 살면서 처음으로 나는 프랑스에 사는 외국인들과 함께가 아닌, 프랑스인들과 함께 포마씨옹을 듣게 되었다. 외국인은 나 한명 뿐이었고 모두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 뿐이었다. 포마씨옹의 목적은 취업인력을 육성하는 것이었기에 빠른 스피드의 프랑스어로 하루에 7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그러므로 포마씨옹을 들으면서 나는 적어도 하루 7시간, 일주일에 35시간은 논스톱으로 프랑스어를 강제로 들어야 되는 환경속에 놓이게 되었다. 국립대 어학원에서 DALF C1까지 수료를 하고 포마씨옹을 시작했지만 실전은 역시 만만하지 않았다. 매일 쏟아져나오는 방대한 어휘들은 물론이고 포마씨옹의 진행 방식 또한 힘듬을 가중시켰다.


어학원에서 수업을 들을 때는 선생님이 굉장한 박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수업을 굉장히 논리정연하게 체계적으로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질문을 하는 경우에 그에 관한 정의를 먼저 내려주고 그에 관련해서 서론, 본론, 결론까지 그것도 외국인들이 알아듣기 쉬운 단어를 사용해서 굉장히 논리적으로 설명해주는 어학원 선생님들의 수업은 그야말로 명쾌하게 알아듣기 좋았다. 그보다 더 명료한 설명은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칠판에 필기도 해주시면서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이해를 돕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과 함께 포마씨옹은 칠판이 있어도 사용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말로 설명했다. 말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칠판을 사용할 시간이 없는가 싶을 정도였다. 포마씨옹에서는 formateur(전문가 육성가)가 설명을 한마디라도 할라치면 포마씨옹을 듣는 사람들 모두가 한꺼번에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예를 들면 진행자가 어떤 것을 설명을 시작하자마자 포마씨옹 듣는 사람 중 A가 질문을 한다. 그러면 진행자는 A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동안, B가 끼어들면서 본인 의견을 말한다. 그러면 진행자는 B의 의견에 대답을 하고 있는 동안 포마씨옹 듣는 사람 C는 또 다른 질문을 한다. 즉, 포마씨옹의 진행자 혼자서 이끄는 수업이 아니라, 서로의 공을 주고 받는 형식으로 포마씨옹은 진행이 되었다. 그러므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행자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야 했다. 나는 말하는 사람에게 눈동자를 고정시키고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4명 정도 이상 건너가면 그들이 무슨말을 하는지 길을 잃고 헤매곤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싶은 나의 강렬한 마음과는 반대로 나의 뇌는 하루종일 듣는 프랑스어로 포화 상태가 되어서 그들의 말을 강하게 튕겨내고 있었다.


게다가 포마씨옹을 받는 사람들은 어학원에서처럼 외국인들이 아니라 프랑스인들이기 때문에 말하기 속도가 기본적으로 엄청나게 빨랐다. 게다가 이 지역의 방언들을 사용하며 구어들도 넘쳐났다. 나와 함께 포마씨옹을 듣는 사람들은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말했다. 쉬는 시간에도 점심 시간에도 끊임없이 말했다. 점심시간에 말할 사람 없으면 전화까지 하면서 잠시도 입을 멈추지 않는 그들이었다. 오전시간동안 쉬지 않고 말하면서 입을 풀었는지 오후에 말하는 속도는 한층 더 빨라졌다. 그들은 어찌나 말도 많고 빨리 하는지 입에 모터를 단 듯 숨도 쉬지 않고 말을 했다. 나에게 프랑스어는 프랑스어 자체로도 피곤하지만 프랑스어 사람들 때문에 피곤한 언어이기도 했다. 얘네들이 말만 적게 해도 조금은 덜 지치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루종일 읽고 듣는 프랑스어도 힘들었지만 거기에 더해 이 포마씨옹은 시작부터 끝까지 시험의 연속이었다. 이 포마씨옹의 목적은 본인이 가진 적성과 능력을 검토해서 각자에게 맞는 직업이 무엇인지 찾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각종 적성검사, 프랑스어, 수학, IT에 관한 지식을 테스트했다. 물론 모든 문제는 프랑스어로 출제가 되었다. 나에게는 테스트 내용보다 문제가 모두 프랑스어였기 때문에 문제를 이해하는 것에 시간이 더 걸렸다. 수학문제를 푸는 것보다 프랑스어로 쓰여진 그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분수, 소수, 몫, 나눔수, 승수, 나머지, 소숫점 첫째 자리수, 둘째 자리수 등의 단어들을 포함하여 산수에 관한 기본적인 프랑스어 단어들을 알고 있어야 문제를 이해할 수 있었다. 프랑스인들에게 수학시험은 나에게는 수학시험인 동시에 프랑스어 시험이었다.  


포마씨옹을 듣기 시작한 초기에 나는 모든 평가들과 숙제들을 수행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나는 포마씨옹이 끝난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의 여분의 시간을 할애해서 그 날 했던 것을 다시 읽고 주말에도 시간을 투자해서 내가 해야 되는 모든 것을 수행했다. 그들의 엄청난 수다와 새로운 프랑스어 단어의 홍수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나는 성실하게 매일 복습을 하고 문제를 풀고 그렇게 한달이 지나면서부터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 포마씨옹을 들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구어체 표현을 엄청나게 많이 듣게 되었다. 늘상 Oh, la vache!(아 젠장!)를 입에 달고 다니는 앙뚜와네뜨와 Putain! 을 하루에도 스무번은 더 외치는 아망딘은 비속어를 포함해서 구어체를 작렬하게 많이 사용했다. 아망딘과 앙뚜와네뜨의 대화를 듣다보면 내가 학교에서 배웠던 프랑스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 싶었다. 아망딘과 앙뚜와네뜨의 만담 덕분에 포마씨옹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기억이 나는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다.


에피소드 1

쉬는 시간에 내가 노트에 부지런히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앙뚜와네뜨가 나에게 와서 물어봤다.


앙뚜와네뜨 : “Tu fais quoi ? (너 뭐해?)

나 : “Je fais des exercices de mathématique." (수학 연습문제 풀어)

앙뚜와네뜨 : “T’es barjot.” (너 미쳤구나.)


해야 되는 숙제도 가끔 안하는 앙뚜와네뜨에게 쉬는 시간에 연습 문제 푸는 나는 Barjot였나보다.


에피소드 2

아망딘과 앙뚜와네뜨는 엉덩이(Cul)가 들어가는 말을 사용하는 걸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그 둘이 대화를 할 때는 엉덩이(Cul)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어느날, 아망딘의 집에 누수 문제로 인해 집주인과 몇 일간 전화를 하면서 싸움을 했다. 아망딘은 쉬는 시간에도 점심 시간에도 교실에서 전화를 했기 때문에 모두가 그녀의 싸움 내용을 들었다. 몇 일 동안의 싸움을 하면서 급기야는 변호사까지 선임을 할 정도로 일이 커지고 있었다.


앙뚜와네뜨 : 누수 수리 비용이 얼마야?

아망딘 : Ça coûte la peau de cul.


나는 그 말을 노트에 적고 앙뚜와네뜨에게 물어봤다. 직역을 하면 엉덩이 피부 값이 나간다는 뜻인데 나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랬더니 앙뚜와네뜨는 웃음을 터뜨리며 나에게 그 표현을 노트에 쓰지 마라며 “터무니없이 비싸다.”라는 뜻이라 했다.  


에피소드 3

포마씨옹은 8시 30분에 시작한다. 내가 도착하고 나서 5분 뒤에 앙뚜와네트가 도착했다.


나 : 앙뚜와네뜨, 어제 잘 잤어?

앙뚜와네뜨 : Hier, je me suis couchée comme les poules.(어제, 나 암탉처럼 잤어.)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이 표현은 암탉이 해와 함께 잠자리에 든다는 표현으로, 해가 지면 암탉이 자기 때문에 ‘매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는 말을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특히 겨울철에 내가 사는 동네는 17시 18분에 해가 진다.


지치지 않고 열혈적으로 이야기하는 아망딘과 앙뚜와네뜨 덕분에 하루종일 듣는 프랑스어에도 나는 차츰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편안함도 잠시였으며 진정한 시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포마씨옹을 수료하기 위해서는 한달 간의 인턴십을 해야 했으며 stage(인턴)를 할만한 곳을 스스로 찾아야 했다.


Oh, la vache!(아 젠장!) 마흔 중반에 프랑스에서 인턴 생활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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