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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리에 Feb 17. 2024

사전 속을 산책하세요 !

▶ 몽펠리에 국립대 어학당 C1 (2021.1-2021.5)


이번 학기에는 학교에 갈 수 없게 되었다. 남편이 직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허리가 삐끗해서 움직이기 힘든 상태이기 때문에 내가 남편의 손과 발이 되어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학교에 개강 전에 이메일로 문의를 했더니, 온라인으로도 수업이 개설 된다고 하였다. 학교에 1년으로 등록했던 학생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프랑스에서 현장 수업이 불가능한 학생들을 위해 ‘전용 온라인 수업’이 개설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처음부터 온라인 수업으로 신청했다. 개인적으로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온라인 수업은 현장 수업에 비해 수업 시간이 절반 밖에 되지 않았으며 모든 공부가 모두 혼자서 알아서 공부를 해내야 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었다. 똑같은 수업료를 내고 절반의 수업을 듣는 다는 것이 적어도 정당하지 않다고 여겨졌다. 

    

온라인 수업은 선생님이 수업자료를 일주일 전에 미리 올려주고 그것을 읽고 또는 듣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숙제였다. 숙제 준비를 하지 않을수는 없었다. 선생님이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기 때문이었다. 미리 준비를 하지 않으면 수업 시간에 아무것도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온라인 수업은 현장 수업에 비해서 수업 시간이 절반에 불과하는 만큼, 수업 시간에 소화해내야 하는 것들을 미리 혼자서 자율적으로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러나 지난 학기에 합격을 했던 델프(DELF) B2와 달프(DALF) C1은 그 수준차이가 너무나도 컸다. 님... 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 이 된다더니... E와 D의 한 글자 차이 사이에는 엄청나게 커다란 간극이 존재하고 있었다. 


델프(DELF)는 Diplôme d'études en langue française의 앞 글자를 딴 약자이고 달프(DALF)는 Diplôme approfondi de langue française의 약자이다. 즉 이 둘의 차이는 이름에서 보는 것처럼 델프(DELF)의 E는 ‘études’의 약자이며 ‘학업, 학교 교육’을 의미한다. 그리고 달프(DALF)의 D는 approfondi를 나타내며, 이는 ‘심층적인, 깊어진, 철저한, 심오한’을 나타내는 형용사이다. 달프(DALF) C1을 소화해내기위해 공부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은 엄청났다. E와 D의 한 글자 차이가 있을 뿐이지만 그 둘의 공부의 양과 시간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DELF B2에 비해 DALF C1 텍스트들이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졌을 뿐더러, 사용하는 어휘가 기하 급수적으로 방대했다. 추가적으로 정말 어려웠던 것은 바로 글쓰기였다. 글쓰기에서 내 생각을 쓰는 Essai argumente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가 된 것은 synthèse였다. synthèse라는 것은 쉽게 설명하자면, 텍스트 2-3개 정도를 읽고 내용을 나의 머리 속에서 혼합을 시켜서 적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절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읽어야 할 텍스트는 한 지문당 600-750 단어이다. 텍스트는 보통 2개 정도 주어진다. 그러므로 약 1300-1400단어의 지문을 먼저 읽고 이해를 해야 한다. 이해를 했으면 이제 형식에 맞춰서 글을 쓸 차례이다. 여기에는 까다로운 규칙이 있다. 첫째, 반드시 synthèse는 220-240글자로 적어야 한다. 글자수가 적어도 점수가 깎이고, 글자수가 240자를 초과해도 점수가 깎인다. 둘째, 본인 생각이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지문의 내용을 적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주의사항이 있다. 바로 세번째 마지막으로 중요한 규칙이다. 그것은 바로 본문에 나온 단어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본인의 고유한 단어와 표현으로 바꾸어서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규칙을 모두 만족시켜서 글을 적어야 하는 것이다. 


한달에 한번 정도 우리집이 가정방문을 오시는 시부모님이 주말 어느날 우리집을 방문했다. synthèse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 나는 시아버지에게 synthèse 를 잘 쓰는 요령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나누어준 지문을 시아버지에게 보여주었다. 시아버지는 친절하게도 지문 2개 모두 읽어가면서 모든 문장을 나에게 본인의 표현을 사용해서 설명해 주셨다. 중간 중간에 나에게 질문도 잊지 않고 하며 내가 이해 했는지 확인도 했다. 그러나 synthèse는 하지 않았다. 본인도 모르는 것이다. synthèse를 쓰는 것을 연습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원어민이라고 하더라도 쓸 줄 모른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신문을 읽고 이해하고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에게 설명은 해줄 수 있겠지만 신문 기사 2개를 읽고 그것을 하나로 통합해서 220~240글자 이내로 글을 써본적이 없는 사람은 당연히 쓰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synthèse를 잘 쓰는 요령은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설명해 주었던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소화를 시켜서 내가 실제로 많이 써보는 연습을 하는 것 뿐이었다. 


같이 수업을 받는 사람 중에 프랑스어를 이미 C1의 수준으로 말을 하는 캐나다 출신의 남학생이 있었다.  그는 캐나다에서 태어났고, 그의 할머니는 프랑스인이었으며, 그의 부인은 프랑스어권 캐나다 출신이어서 프랑스어를 잘하고 그는 이미 프랑스에서 15년째 살고 있는 한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는 이미 추상적인 어려운 내용도 토론이 자유롭게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루는 “움베르토 에코”가 썼던 지문을 수업 시간에 배웠다. 지문의 내용이 추상적이었기에 나를 포함한 다른 학생들은 그 지문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캐나다 출신의 남학생은 “움베르토 에코”가 썼던 지문의 일부분에 대해서 본인은 그 생각에 반대한다면서 본인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커다란 맥락에서부터 시작해서 디테일에 이르기 까지 논리적으로 구성해서 그것을 유창하게 프랑스어로 풀어내는 그의 주장을 듣고 있자니 나는 그의 토론 실력에 마음속으로는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어려운 추상적인 내용에 철학적인 측면에서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그 내공 높은 유려한 프랑스어 구사하는 그 사람의 실력이 정말로 부러웠다. 나도 15년 살면 저 내공에 도달할 수 있는건가? 정말로 고급스러운 토론이었다.


그 고급토론을 하였던 캐나다 출신의 그 사람이 수업이 끝날 무렵에 선생님에게 “어휘를 늘리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Promenez-vous dans le dictionnaire."
사전 속을 산책하세요.


이 말이 끝나서 선생님은 본인이 사전 속에서 산책을 하는 방법을 직접 보여주었다. 어휘를 늘리기 위해서는 이렇게 사전 속을 산책을 해야되는거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데 남편이 옆에서 심심하다며 프랑스어 사전 속을 산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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