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프랑스에서 봄에 한 번의 격리와, 가을에 두 번째의 격리 이렇게 해서 크게 2번의 격리가 있었다. 그래서 2020년 1월에 시작했던 수업은 3월의 격리 이후에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수업은 강의는 없고 숙제와 시험으로 점철되었다. 그래서 그만 두었다. 이후 신성한 여름 바캉스가 끝나고 가을인 9월에 수업을 듣기로 결정했을 때는 나는 전략을 바꾸었다. 분명히 사람들과의 사회적 거리를 준수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프랑스였기 때문에, 분명히 가을에도 또 한번의 격리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을 했고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파티를 너무 좋아하는 프랑스인들인지라 개강한지 두달이 안된 10월 말부터 2차 격리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9월부터 10월 22일까지는 학교에 직접 가서 수업을 들었고, 11월부터 12월9일까지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가장 큰 변화는 재택근무(teletravail)의 일상화이다. 코로나 이후 학생들은 강제로 온라인 강의를 들어야 했고 반대로 선생님들은 강제로 온라인 강의를 해야 되었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들도 디지털에 적응해야 되는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코로나로 인해 프랑스 정보통신 기술의 진화 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의 수업은 각 선생의 역량에 따라서 수업의 질이 현저하게 달랐다. 이번 9월에 시작한 학기를 결산해 보면 한 명의 선생님의 말하기 수업을 제외하고 나머지 수업에는 모두 실망했다. 말하기 수업에서 선생님은 서론, 본론, 결론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에 대해 첫 시간부터 마지막 시간까지 다양한 주제로 같이 발표 연습을 시켰다. 덕분에 말하기에 대한 방법은 제대로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2020년 12월 DELF B2 시험을 보았다. 어학당에서 내가 존경했던 선생님이 B2의 레벨을 세 단어로 요약해 주었다. 바로 autonome, spontané, argumenté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Autonome (자율적인) 특성으로 특정 주제나 상황에서 의사 표현이나 의사소통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 Spontané (즉흥적인) 특성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Argumenté (논리적으로 근거를 갖춘) 특성은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논리적으로 주장을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B2 레벨은 다양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DELF B2 시험은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이렇게 4가지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읽기 지문의 주제로는 bio 식품, 직업을 구할 때 프랑스어 중요성, 재택근무(Télétravail)였다. 주제만 봐도 이 당시에 어떤 것이 중요한 이슈인지 알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거의 의무화되었기 때문에 teletravail 문제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듣기 주제는 도시에서 대중교통 수단의 변화, 아이들에게 철학 수업, 밤의 불빛이 새에게 미치는 영향이었다. 말하기 시험 주제로는 남자 선생님에 비해 여자 선생님이 많은 것에 대한 의견을 말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남녀평등에 관한 문제이며 델프 시험의 단골주제이다. 마지막으로 쓰기 시험은 늘 그렇듯이 시장에게 편지 쓰기 문제였고 주제는 “도 체육관을 프로 선수들만 사용할 수 있게 허가하며 다른 사람들은 접근 제한 하는 제도를 실시”에 대해 시장에게 항의 편지를 쓰라는 것이었다.
쓰기 문제는 대부분 시장에게 항의 편지를 쓰라는 문제였다. 그래서 편지쓰기를 처음 연습하기 시작할 때 항의를 어떻게 해야 할지가 먼저 고민이 되었다. 한국에 살 때 시장에게 편지 한번 쓴 적 없었고 동네 주민센터 동장님을 만나본적도 없던 나였다. 그런데 프랑스에 와서 난데없이 시장에게 항의 편지를 쓰라는 것이 시험 문제였기에 어떻게 항의해야 되는지 처음에는 난감했다. 편지 쓰기 연습을 하면서도 실제로 동네 사람들이 시장에게 이렇게 항의 편지 쓸까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여기 주민들이 실제로 항의편지를 쓰는 경우를 종종 실제로 보게 되었다.
2023년 화창한 어느 봄날이었다. 이웃 마을에 아스팔트 포장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로베르 아저씨가 지켜보고 있었다. 로베르 아저씨를 보고 인사를 건넸더니 아저씨가 말을 시작했다. 본인이 시장에게 편지를 써서 집 앞의 흙길을 아스팔트로 깔아달라고 요청했다고 말이다. 3년동안의 요청한 결과를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거라면서 그의 집 앞에 육중한 덤프트럭, 피니셔 장비들이 아스팔트 포장을 깔고 있었다. 요청이 받아들여지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리지만 그렇다고 주민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는 듯 싶다. 그러고 보면 이곳에 사는 시장님은 결혼 주례도 하고 동네의 각종 행사에 항상 참석하며 시장님이 지역 주민들과의 교류가 빈번해서 긴밀한 상호작용을 하는 듯 싶다. 결혼 인터뷰도 시장님이 직접 했고 내 결혼식 주례도 시장님이 해주었으며 마을을 지나다 보면 시장님을 종종 마주친다.
여하튼 코로나가 바꾼 세상으로 인해 2020년 후반부 수업은 온라인으로 들었다. 그리고 기말 시험 결과 학교 B2 수업은 정말 좋은 점수인 mention très bien 을 받았다. 그리고 이후 봤던 공인 DELF B2 시험도 합격으로 2020년도 12월의 합격이라는 두 가지 좋은 소식으로 마무리를 했다. 학교에서 합격해서 받게 된 Diplôme(디플롬)을 수령하기 위해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기 위해 늘 그랬듯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그러나 새벽에 나서는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마주치는 사람이라도 있었는데 정말 아무도 없는 고요한 새벽이었다. 버스 정류장에도 새벽 5시 45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나 혼자 였다. 드디어 몽펠리에의 모쏭(Mosson)에 도착했다. 이제는 트람으로 갈아 탈 차례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에 종점인 모쏭에는 트람과 버스가 만나는 곳이기에 환승하는 사람들로 인해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학생들도 온라인 강의를 듣고 직장인들도 이제는 대부분이 재택근무를 하는 모양인지 길에도 사람들이 없고 트람을 탔더니 나혼자 트람을 독차지한 듯이 텅텅 비었다. 코로나가 바꾼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이후에도 변함없는 것은 집에서 5시에 출발해서 학교에 도착하니 8시가 되어 어김없이 3시간이 꼬박 걸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교에 가는 시간의 리듬을 몸이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2019년 9월부터 다니기 시작한 학교였으니 학교에 오고 가는 왕복 시간이 6시간 걸린다는 것도 몸이 기억을 하고 있었다. 대중교통에 걸리는 세 시간 동안은 화장실에 갈 수 없으니 학교에 가기 전에는 물도 많이 마시지 말아야 한다는 사소한 것까지 이제 몸에 습관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