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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리에 Feb 06. 2024

정지버튼을 눌러야 할 때…

▶ 몽펠리에 국립대 어학당 B2 (2020.1-2020.4)


내가 프랑스어를 배운 곳은 “몽펠리에 3대학교”이고 대학 이름은 “폴 발레리”이다. « Le vent se lève ! Il faut tenter de vivre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는 구절을 아마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폴 발레리의 가장 유명한 시 중 하나인 “Le Cimetière marin(해변의 묘지)”의 한 구절이다. 대학 이름은 세트(Sète)에서 태어나서 몽펠리에에서 공부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여 폴 발레리(Paul Valéry)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이다.  



B1 단계를 통과하고 나서 중급인 B2 수업에 들어가니 가장 큰 차이는 방대한 학습량이었다. 1월 20일에 개강해서 2주간 공부의 할당량이 B1의 지난 한 학기 3개월의 양에 버금갈 정도로 많았다. B2의 담당 선생님들이 읽을 것, 들을 것, 쓸 것, 등을 무한 공급을 해주셨다. 선생님들은 주중의 수업시간에 물론 숙제를 내주고, 밤에도 인터넷으로 친절하게 올려주시고 주말에도 숙제를 올려 주셨다. 과연 그 많은 자료들을 모두 읽고 내 것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 수업을 무사히 끝까지 따라갈 수는 있을지 걱정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학습량이 많아지는 것은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B2부터는 생활 프랑스어가 아니라 본인의 생각을 프랑스어로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지 argumentation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지겹도록 듣게 될 바로 그 단어 argumenter ! 아는 것이 없으면 말할 것도 없고 쓸 것도 없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므로 선생님들은 읽을 것, 들어야 할 자료, 쓸 주제들을 폭탄투하를 해주셨다. 갖은 고생을 하면서 산 넘고 강 건너서 초급 단계를 끝냈더니 이제는 넓디 넓은 대서양과 고도 3천 4백 미터의 피레네 산을 올라가야 하는 듯 싶었다.


그러나 이 폭탄투하는 2020년 3월 13일 금요일 갑자기 중단되었다. 전날인 3월 12일 목요일에 프랑스 대통령 Emmanuel Macron (에마뉘엘 마크롱)이 코로나바이러스 전염의 확산을 막기 위해 학교 휴교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기치 못한 마지막 수업으로 우리는 이별을 고했다. 이후 온라인으로 수업이 전격 바뀌게 되었지만 온라인 강의를 처음으로 시행한지라 학교에서 정해진 규율이 없었다. 그러므로 담당하는 선생들에 따라서 수업이 제각각이 되었다. 우리반을 담당했던 선생님 두분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숙제만 잔뜩 올려 주었다. 숙제를 하면서 모르는 것은 물어보라고 했다. 학교 다닐 때는 일주일에 15시간씩 강의로 설명을 들었던 분량이었다. 그것을 전혀 설명도 듣지 못한채로 나 혼자 인터넷을 뒤져가면서 숙제를 하는 것은 국가정보요원이 암호를 해독하는 임무를 해내는 것 같을 정도로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어먹을 성실함으로 인해 밥먹고 집안일을 제외한 모든 시간은 숙제에 바쳤다. 집에 같이 있는 남편과는 말도 할 시간이 없었다. 하루 종일 숙제만 했다. 잠잘때도 해결되지 않는 숙제를 생각하느라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일주일동안 해야 되는 모든 숙제를 결국 해냈다. 일요일 저녁 늦도록까지해서 겨우 숙제를 마치고 나서 숙제를 제출하고 바로 잠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월요일 아침, 2주째에는 뭐라도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겠지라는 기대는 바로 꺾였다. 구글 클래스룸을 확인해보니 선생님들은 2주째에도 엄청난 숙제의 분량을 온라인으로 잔뜩 올려 주었다. 1주째에도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고 숙제만 했는데, 2주째에도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숙제만 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모르는 것은 물어보려고 시도했으나 선생은 본인이 담당하는 학생들이 140명인 관계로 모르는 것에 대답을 모두 해줄수가 없다는 대답을 했다. 나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은 당연히 모르는 채로 계속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계속 숙제만 하는 것은 나에겐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숙제의 난이도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달리며 어려워져 가고 있는 반면에,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지 않는 나의 지식의 상태는 계속 평행선을 긋고 있는 느낌이었다. 갈수록 커져가는 그 격차로 인해 나의 스트레스는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다가 드디어 폭발하게 되었다. 개인적인 생활과 일의 생활의 경계가 없어져서 하루종일 숙제에 바치고 있는데도 좀처럼 끝마치지 못하고 있었다. 3주째 들어서 화상회의를 통해 다음과 같은 4월 한달의 일정을 통보받았다.  

4월 첫째주 - 숙제

4월 둘째주 - 모의시험

4월 셋째주 - 방학 

4월 넷째주 - 시험(controle continue)

4월 다섯째주 - 시험 본 것 복습(revision)

5월 1~2주 - 기말고사 이후 학교 종료


숙제, 시험, 방학, 시험 이후 시험 그리고 종강… 이라는 이 일정을 통보받은 순간 그동안 꼭꼭 누르고 눌러 참아왔던 화약고가 폭발했다. 이런 식으로 숙제만 하고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이 실력은 제자리 걸음으로 이번학기가 끝날 거라는 사실에 뚜껑이 열렸다. 학생들 중에는 나처럼 느끼는 사람이 거의 대다수였기 때문에 당연히 학교측에 환불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학교측에 환불 요청을 보냈던 사람들은 학교측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답장을 받았다. 



Aucun remboursement même partiel n'interviendra dans la mesure où les cours et examens seront assurés. 



한푼도 환불해 줄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배움없이 과제물과 시험으로 이번 학기를 마감하지만 이런 수업에 학교측에서는 환불을 해 줄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어려운 시국이니 학생들이 알아서 참으라는 식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엠마뉘엘 마크롱의 집에 머물면서 규칙을 따르라는 «Restez chez vous, respectez les règles»라는 발표로 인해 정부의 명령에 충실히 따라서 집에서 감금생활을 했다. 문제는 남편과 눈을 뜨면서부터 잠잘 때까지 24시간을 함께 보내는 데 있었다. 일정과 시간표를 미리 계획하고 조직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는 정반대로 남편은 본인의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남편이 잠에서 깨면 나는 하던 숙제를 그만 두어야 했다. 남편이 일어나면 나도 의자에서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차려주고 집안일을 하기 시작한다. “전하, 기침(起寢)하셨습니까?” 같은 분위기라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하루 중 나에게 평화로운 시간은 남편이 잠을 자고 있을 때 뿐이었다. 


나는 나대로 숙제와 시험의 계속인 어학당의 온라인 수업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었고, 외출금지(confinement)로 인해 집에만 머물러 있어야 했던 남편 또한 스트레스를 피해가지 못했. 우리 둘의 시한폭탄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부부 간의 관계 회복을 위해, 나는 무의미한 숙제와 암호 해독에 시간을 소비하는 대신, 우리 간의 갈등을 완화시키는 데 집중해야 했다. 온라인 강의에서 계속 나오는 숙제에 투자하는 대신, 우리의 관계를 쌓아가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어학원 수업은 다음학기에 다시 신청할 수 있겠지만 이 상태도 계속 진행하다가는 나와 남편의 관계에 회복하지 못할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었다. 그렇게 듣고 싶어서 힘들게 왕복하면서까지 다녔던 어학원 수업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엉망이 되어 버린 온라인 수업은 내게 상처를 남겼다. 제대로 수업을 끝까지 완수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었다는 것에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자책감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깊어지는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순위였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것에 정지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이후 나는 학교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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