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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리에 Feb 02. 2024

문학 수업에 문법을 묻는 건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 몽펠리에 국립대 어학당 B1 (2019.9-2019.12)


2019년 8월 26일 반배치고사 결과 나는 B1반으로 배정되었고 개강은 열흘 정도 후인 9월 5일 목요일이었다. 국립대 어학당은 직업훈련센터의 분위기와는 여러면에서 확연하게 달랐다. 직업훈련센터에서는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부터 중급수준까지 모든 레벨이 중구난방으로 마구 뒤섞여 있었고 연령대도 10대부터 50대를 넘나들었다. 많은 난민들을 비롯해서 다양한 국적의 출신들이 모여있었지만 아시아인들은 드물었다. 그리고 수업을 들으러 오면서 가방없이 볼펜만 들고 오거나 허리에 차는 가방만 메고 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국립대 어학당에 오니 일단 실력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이 같은 반에 있었다. 그리고 아시아 출신 사람들이 많았고 그 중에서도 중국인들이 1/3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주 연령대는 20대였다. 무엇보다 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프랑스어를 배우러 오는 목적이었다. 직업훈련센터는 체류증을 받기 위한 절차의 의무로 프랑스어를 들으러 오거나 취업을 위해 기본적으로 장착해야 하는 프랑스어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반면에 국립대 어학당은 프랑스어를 배우는 목적이 대학 진학에 있어서 젊은 유학생들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학에 진학해서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전공에 따라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요구조건은 B2, C1 수준이다. B2를 50점 턱걸이로 합격하는 것은 그 수준이 B1 정도이지 충분한 B2라고 볼 수 어렵다. 다소 높은 수준의 B2, C1을 가지고 있는 것이 대학 수업을 전부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제대로 된 기관에서 능력있는 프랑스인 선생님에게 배우고 싶었던 나의 강한 바램이 통했을까? 나는 “폴 발레리”에 어학당 IEFE에서 M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알고 봤더니 M 선생님은 본인의 여가시간에 위키페디아에 나온 틀린 정보를 수정하는 일을 취미로 하고 계신 분이었다. 학생들이 모르는 단어를 핸드폰으로 사용해서 찾으려 하자 수업시간에 핸드폰을 사용하지 말고 본인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질문을 하면 M 선생님은 항상 프랑스어 단어를 사전처럼 정의를 내려 주었다. 두툼한 두께의 안경은 그냥 끼는 것이 아니었다. 포스가 작렬했다. 굉장히 능력있는 백과사전의 엄청난 지식으로 무장한 M 선생님은 입가에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인자한 표정과는 다르게 M 선생님은 엄격했고 규율을 지키지 않은 학생들에게 적절한 통제를 했다. 그러므로 지각을 자주 했던 학생들은 M 선생님을 싫어했고 규율을 준수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M 선생님을 좋아했다. 어려운 내용도 굉장히 쉽고 정확하게 효율적으로 잘 가르치는 그녀의 교수법에 매일 감탄을 하는 날들이었다. 모든 질문에 척척 대답하는 그녀의 높은 학식은 경이로웠고 그런 그녀를 나는 존경했다.


몽펠리에 국립대 어학당 IEFE의 커리큘럼 중에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점은 프랑스어를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것 뿐만 아니라 교양과목 수업을 선택으로 2과목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프랑스 문화와 문화유산’ 그리고 ‘프랑스 문학’ 수업을 선택했다.


‘프랑스 문화와 문화유산’ 에서는 프랑스 문화는 무엇인지, 문화유산은 무엇인지, Paris(파리)의 역사, 프랑스 역사, 프랑스어의 기원과 특성, 프랑스 문화유산을 배웠다. 이 과목 또한 ‘백과사전 M선생님’이 담당했기에 어떤 질문을 받아도 척척 대답해 주었다.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었다. 수업을 한 번 듣고 나면 머리가 터질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웠다. 프랑스의 역사에 대해서 프랑스어로 클로비스왕부터 카롤링거 왕조, 샤를 마뉴 대제, 영국의 윌리엄 1세, 십자군 전쟁, 백년전쟁과 잔다르크, 로마 시대의 명망, 구텐베르그의 인쇄술 발견,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 르네상스, 종교전쟁, 루이 14세, 빛과 철학의 시대 그리고 프랑스혁명, 1차 세계대전에 대해 배웠다. 이 수업을 배우고 나면 집에 귀가하면 남편에게 그 날 수업 시간에 배웠던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한 덕분에 반강제적으로 남편도 나와 함께 프랑스 역사를 다시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프랑스 문학 수업시간에는 다양한 작품들의 일부분을 발췌해서 읽었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이방인(L'Étranger), 파트릭 모디아노(Patrick Modiano)의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Dans le café de la jeunesse perdue),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의 연인(L'amant), 르 클레지오(Le Clézio)의 어린 여행자 몽도(Mondo), 폴 엘뤼아르(Paul Eluard)의 시 자유(Liberté)를 배웠다. 내 남편은 프랑스 문학 또한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공부하게 되었다. 자꾸 내가 질문하니 본인이 읽을 수 밖에... 그러다가 남편은 시 하나를 암기를 했다. 몇 번 읽으면 암기를 할 수 있는 그가 부럽다.  


문학 수업 첫날에 수업은 진행이 되지 않았고 문학 선생님은 앞으로의 수업방향에 대해 학생들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본인이 예상했던 것보다 문학 수업을 신청하는 학생수가 많아서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를 물어본 듯 싶다. 그러나 학생들이 문학이라는 과목을 원해서 선택하다기 보다는 선호하는 시간대를 고려해서 문학 과목을 수강한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왜냐하면 수요일 오전에 하는 선택 수업은 문학 수업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수업은 저녁 18시에 있었으므로 학교 근처에 살지 않는 이상 학교를 하루에 두 번 등하교를 하는 것은 당연히 번거롭다. 그러므로 시간대의 이점으로 인해 심지어는 프랑스 문학을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학생들도 수강을 했다.


첫 수업 시간에 프랑스 문학 수업을 어떻게 진행을 했으면 좋을지 물어보자 한 학생이 수업 시간에 문법도 배울 수 있냐고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샘은 “문학 수업에 문법을 묻는 것은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라고 대답을 했다. 0.1초의 망설임도 없는 칼 같은 대답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선생님의 이 답변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래서 왜 문학 수업에 문법을 묻는 건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라고 생각을 해보았다. 문법 규칙, 구문 및 언어 구조를 더 자세히 다루는 문법 강의에 비해 문학 강의의 목표는 종종 비판적 사고, 개인적인 해석, 긴밀한 독해 능력 개발을 장려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학당의 수업의 퀄리티에는 만족을 했지만 날씨와 교통편의 문제로 한 학기 3개월 약간 넘게 다니는 동안 집에 귀가를 3번 하지 못했다. 첫 번째로 귀가 하지 못했던 날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집으로 가는 트람과 버스가 끊겼기 때문이다. 비가 너무 많이 온 나머지 무릎 너머까지 올라왔다. 다행스럽게도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본인 집에서 자라고 권유를 해주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학교에서 신문지를 깔고 1박 할 뻔 했다. 두 번째 집에 귀가 하지 못했던 이유는 두 대의 트람이 충돌한 사고 때문이었다. 매일 내가 타던 트람이었는데 그 날은 우연히도 친구 덕분에 그 트람을 놓쳤다. 그리고 다음 트람을 타야지 했던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 트람은 사고가 났고, 그 뒤로 몇 시간동안 트람은 다니지 않아서 결국 그 친구 집에서 잤다. 세 번째 집에 귀가 하지 못했던 이유는 ‘프랑스 문화와 문화유산’ 시험 시간 때문이었다. 시험은 저녁 17시 40분부터 19시 15분까지였고,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버스는 종점에서 18시 30분에 출발했다. 그러므로 시험을 보고 나면 집으로 돌아갈 버스가 없었다. 게다가 그 날은 하루종일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아침 9시에 ‘프랑스 문학 기말고사’를 보고 이후 GRETA로 가서 DELF B1 구술 시험을 보고 이후 저녁에는 ‘프랑스 문화와 문화유산’ 시험을 보았다. 이 날은 시댁에 가서 1박을 했고 그 다음날에는 GRETA에 가서 구술을 제외한 DELF B1 읽기, 쓰기, 듣기 영역의 시험을 보고 귀가했다. 아침 5시에 집에서 출발해서 다음날 저녁 8시가 되어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므로 대학교 어학당의 커리큘럼과 능력있는 선생님들에게 들었던 수업의 퀄리티 측면에는 대단히 만족하지만 교통편의 문제로 인해 집에 귀가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싫은 요소이다. 집 놔두고 밖에서 자야하는지를 생각하다보면 내 인생이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게다가 프랑스어를 배워서 남편과 유창하게 대화를 하고 싶어서 학교에 다니는 데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남편의 자는 모습을 보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집에 귀가하면 저녁이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집안일을 하고 나면 잠이 들때마저도 침대로 유격돌진해서 잠들기 바쁘다. 프랑스어를 배워서 남편과 대화하고 싶었는데 정말이지 대화할 시간이 없는 아이러니다.  


이렇게 배움의 열정으로 불태우고 있었지만 마흔이 넘어서 배우기 시작한 프랑스어는 어려웠다. 이십대에는 개념을 이해하지 않아도 암기가 가능했었고, 삼십대에는 빠른 속도의 암기력은 아니더라도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힘들지 않았는데, 마흔살이 넘어서 새롭게 배우기 시작한 프랑스어는 단어암기도 힘들고, 발음도 힘들며 그나마 힘들게 외웠던 표현들마저 빠르게 정확하게 상황에 맞게 말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외우는 속도는 평균시속 14km로 기어가는 달팽이의 속도인 반면에, 잊어버리는 속도는 시속 120km로 달리는 치타의 속도이다. 책을 덮고 의자에서 일어서는 순간 책에서 본 내용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기억력이 이 정도로 저하된 것이 노화의 현상인지 아니면 항암치료의 부작용인지 모르겠다. 항암 화학치료를 받는 유방암 환자는 기억력과 집중력, 판단 능력이 저하되는 ‘케모 브레인(chemo brain)’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여하튼 나의 뇌는 끊임없이 잊어버리는 기억력과의 분투중인 상태 이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 결과 이번학기에 DELF B1도 합격을 했다. 이제 한 단계 올라선 진정한 중급인 B2 단계로 입성의 문이 열린 것이다.


수업 시작하기 전, 공강 시간은 항상 도서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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