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초보 수준의 Delf A2 프랑스어 시험을 높은 점수로 합격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A2이상을 배울 수 없었기에 도시에 있는 직업훈련센터로 3시간 통학을 하며 클라우디아 샘에게서 중급초보 수준인 B1까지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더 높은 수준의 프랑스어를 체계적으로 배우려면 더 큰 대도시로 가야 했다. 한국처럼 프랑스도 마찬가지로 시골에서는 높은 수준의 수업을 해 줄 선생님도 없고 그것을 배울만한 학생도 없으며 그런 수업을 제공해 줄 만한 교육기관도 없다. “사람은 태어나면 한양으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큰 도시는 몽펠리에이다. 가까이라고 했지만 사실 몽펠리에 국립대 어학당은 내가 사는 곳에서 80km 떨어져 있다. 학교에 가기 위해서 대중교통으로 하루 왕복 6시간이 걸렸다. 서울역에서 천안까지의 거리는 약 84km 정도라고 하니까 이 거리를 매일 통학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나는 새벽 4시에 기상을 해서 남편이 하루종일 먹을 밥을 해놓고 나도 아침을 먹고 도시락을 싸서 새벽 5시 이전에 집을 나서야 했다. 우리 동네의 버스 정류장에 걸어서 30분이 걸리기 때문이다. 어두컴컴한 새벽에 마주치는 사람은 나와 같은 버스를 타거나 아니면 쓰레기차 인부들이다. 그렇게 서너 명을 마주치고 나면 몽펠리에 행의 버스가 도착한다. 그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몽펠리에의 외곽 마을인 모쏭에 도착한다. 그러면 버스에서 내려서 다시 파란색 배경에 흰색 제비모양이 그려져 있는 1호선 트람을 타고 10 정거장을 가서 Saint Eloi 정류장에서 내린다. 그리고 다시 20분 정도 걸어가면 드디어 목적지인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침 5시에 집에서 출발해서 길에서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면 대략 8시에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렇게 먼 거리를 감안하면 차라리 온라인 강의를 듣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지만 2019년만 하더라도 프랑스에서 온라인 강의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2020년 코로나 이후로 상황이 많이 달라져서 온라인으로 많은 좋은 강의를 들을 수 있지만서도 말이다. 반면 IT강국인 한국에서는 한국인이 가르치는 프랑스어의 온라인 강의는 다수 있었다. 초보 수준까지 문법을 배우는 것이라면 한국식 강의가 좋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한국의 온라인 강의들은 프랑스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한국식 억양이 섞인 부정확한 프랑스어의 발음이었기에 배워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프랑스어 발음을 잘하는 한국 사람에게도 배워봤지만 본인이 발음을 잘하는 것이지 남에게 잘 가르치는 것은 아니었다. 뭔가 있어 보임직하게 겉모습만 그럴 듯이 포장했던 얄팍한 상술이었을 뿐 프랑스어 교수법에 대해 지식을 제대로 갖춘 것도 아니었다. 마치 명품 백화점의 포장지로 둘러싸여 있지만 안이 텅 비어 있는 상자와 같은 것이었다. 특히 한국인에게 온라인 강의로 들어봤던 작문수업 그중에서도 특히 synthèse 수업에는 굉장히 실망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실력 부족인 것이다. 그런 것은 한국에서 보는 프랑스 시험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프랑스에서 치르는 시험에는 장담컨대 그다지 효과가 없다. 7년째 여전히 프랑스에서 매년 인터뷰를 비롯해 필기, 구술 등 각종 시험을 보고 있는 나의 경험에서 나오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프랑스에서의 나의 인생은 마치 내가 시험을 보기 위해 프랑스에 온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프랑스에서 실력 있는 선생님에게 수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프랑스의 훈련 과정은 힘든 만큼 그 과정을 제대로 마친 잘 쓰는 선생님들의 글을 읽어보면 단어와 문장, 연결사의 선택 하나하나가 모두 계산하에 선택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한국에서 한국의 교육을 받고 국문학을 전공을 하고 한글로 글을 평생 써온 사람에게 글쓰기를 배워본 학생은 프랑스에서 프랑스의 교육을 받고 한국에 와서 국문학을 공부를 한 사람에게 한글로 글쓰는 방법을 배우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온라인 강의와 시골의 교육기관을 통해서 내가 배울 수 있는 프랑스어 수준은 초급, 초중급정도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중급 이상의 프랑스어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유방암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꾸준히 남편을 설득시켜 왔다. 내가 먼 도시로까지 매일 다니며 프랑스어를 배우겠다는 나의 결심에 남편이 흔쾌히 동의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못마땅한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이 나라의 언어를 못하고 죽기는 싫다는 열망에 프랑스어를 배우기로 결심했고, 내가 한국에서 일하며 벌어서 모아두었던 나의 돈으로 국립대 몽펠리에 3 대학 “폴 발레리”에 있는 IEFE 어학당에 가서 1년 수업등록을 했다. 항암치료로 인해 머리카락이 다 빠지면서도 프랑스어를 배우러 다니는 나였다. 게다가 내 돈으로 배운다고 하니 남편이 더 이상 나를 말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프랑스에 정착한 지 3년이라는 오랜 투쟁을 통해 가까스로 쟁취해 낸 어학원의 수업이었다.
나는 A2 합격증이 있었기에 어학당에서 레벨 테스트를 보지 않아도 되었지만 나는 레벨 테스트에 어떤 문제가 나오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보지 않아도 된다는 레벨 테스트를 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그리하여 2019년 8월 26일 월요일 9시 30분 반배치고사를 보는 날이 되었다.
레벨 테스트는 대강당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연단이 놓여 있는 강연대 앞에 가방을 놓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서 시험을 보기 시작했다. 시험 문제는 문법 문제와 작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모든 시험문제는 한국인에게 매우 익숙한 객관식 문제가 아닌 프랑스가 좋아하는 100% "주관식"이었다. 문법에는 레벨을 다양하게 측정할 수 있게 초급부터 고급에 아우르는 모든 문법의 질문이 나왔다. 8개 정도의 지문을 읽고 빈칸을 채우면 되는 문제였다. 각 지문에 빈칸은 15-20개 정도였으며 문제 푸는 시간은 45분이었다. 문법은 정해진 규칙이고 답이 있기에 이것은 별로 고민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간단했다.
반면에 작문 문제가 상당히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다. 문제 자체는 매우 간단했다. 문제에는 장 자끄 상뻬 (Jean Jacques Sempé) 의 그림 하나를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이야기를 쓰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작문 문제이기에 앞서 상상력의 문제였다. 이런 문제는 한국어로도 답안을 작성해 본적이 없었다. 직접적으로 경험해 보니 40분이라는 시간이 참으로 짧은 시간이었다. 정해진 40분이라는 시간 안에 그림 하나를 토대로 추론해 내서 내 나름대로의 플롯을 짜고 시나리오를 써야 했다. 이것은 단시간에 어떻게 실력을 올릴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레벨 테스트 때 처음 접했던 이 문제는 쉽지 않았다고 느껴졌지만 이후에 어학당에 다니면서 이 문제는 자주 접하게 되었다. 사진이나 그림을 하나 주고 150자 이내로 쓰라는 문제는 익숙해진 나머지 내가 좋아하는 시험 유형이 되었다. 자꾸 연습하니 당연히 잘하게 되고, 잘하게 되니 좋아하게 되었다. 자꾸 하니 좋아진다. 선순환이다. "La pratique mène à la perfection(연습은 완벽으로 이끈다)”는 말이 있다. 어떤 기술이나 활동을 완벽하게 마스터하려면 꾸준한 실습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인 진리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나의 프랑스어 수준으로 나는 B1반으로 배정이 되었다. 드디어 프랑스 남부 시골 마을에 정착한 지 3년째 되던 해에 나는 중구난방으로 가르치는 방식이 아닌 체계적으로 교수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기관에서 능력 있는 선생님들에게 프랑스어를 배우기 위한 ‘사회적인 생존 프랑스어’의 막을 올린 것이다.
국제커플이 되어 한국을 떠나 해외에 정착해서 사는 데 있어서 내가 크게 간과했던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언어 숙달의 중요성’에 관한 것이었다. 프랑스어를 말하지 못하면서 프랑스 시골에서 나의 남은 인생을 보내기로 결정을 한 건지… 지금 생각해 보면 언어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지를 하지 못한 부분에 나의 무지함에 경각심마저 든다. 내가 언어의 중요성을 간과했던 것에 대한 커다란 3가지의 착각이 있었다.
첫째, 프랑스니까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도 꽤 많겠지라고 추정했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 산골 동네에는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영국에서 온 사람들 빼고 없다. 나머지 본인들이 영어를 구사할 줄 안다고 말은 하면서 프랑스식 발음과 사고로 영어를 말하는 ‘프헝글리쉬’(프랑스어 + 영어 합성어, 내가 만들어낸 말임)다. "Franglais"라고 쓰고 ‘프헝글레’라고 발음하는 단어가 있긴 있지만 ‘프헝글레’는 프랑스어와 영어의 혼합어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즉 Street art, brainstorming, Big data, Start Up … 이런 단어들은 영어를 그대로 가져와 프랑스어에도 사용하는 것을 ‘프헝글레’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만들어 낸 단어인 ‘프헝글리쉬’의 의미는 프랑스인들이 영어를 말할 줄 안다고 말하면서 영어 문장이 아닌 프랑스어의 문장을 영어식 억양으로 발음만 한다든지 아니면 사용하는 문장이 영어식이 아닌 프랑스식의 사고방식으로 말하는 영어를 말하는 것이다. ‘알룡하세요’가 한국어이지, 영어는 아니지 않는가?
나의 두 번째 착각은 연애할 당시에 남편과 영어로 대화를 했으니 영어만 해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완전한 실수였다. 결혼하고 나서 나는 남편하고만 평생 이야기 할 것인가?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는 이야기하지 않을 것인가? 프랑스어만 말하는 시댁을 포함해서 프랑스어만 구사할 줄 아는 동네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내가 프랑스어를 못한다고 해서 동네 슈퍼 가서 장을 보며 남편 뒷바라지만 하면서 집에 갇혀 뱅글뱅글 쳇바퀴 도는 인생을 살고 싶어서 한국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여기 프랑스까지 온 것이 아니다. 라푼젤이 밖에 나가는 것이 싫다며 평생 탑에만 갇혀서 본인의 인생을 마감했다면 나에게는 별로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안에서만 갇혀서 산다면 본인의 일상생활의 반복으로 인해 편안함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사고방식도 우물만큼의 크기로 제한되었을 것이다. 여하튼 탑을 탈출하지 않은 라푼젤, 우물 안에만 갇혀서 생활하고 싶어 하는 우물 안 개구리는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과 같지 않았다. 프랑스 행정처리에 커다란 고통과 아픔이 있었던 만큼 적어도 행정처리에 관해서 만큼은 나의 앞가림을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프랑스어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게다가 내가 살고 있는 동네 사람들은 98%가 프랑스어를 말하고 한국어를 말하는 사람은 나 한명뿐인데 당연히 과반수가 사용하는 언어를 내가 배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나는 남편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프랑스어를 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착각했던 세 번째 요소는 영어를 잘했으니까 프랑스어를 배우는 데 그렇게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겠지라고 추정했던 것이다.
똘레랑스라는 사회적 가치를 가진 나라 프랑스일지라도 프랑스어에 똘레랑스는 영어에 비해 현저하게 적었다. 물론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각종 나라의 억양을 가진 미국영어, 영국영어, 인도영어, 호주영어 등을 수용하는 영어에 비해 프랑스어는 다른 억양을 수용하는 똘레랑스가 없었다. 또 추가적인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있어서 언어의 실수에 대해 대체적으로 더 관용적(tolerant)이고 더 관대하다. 약간 과장하자면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는 알아듣지는 못해도 틀렸다고 지적질을 한다거나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한쪽 눈썹을 치켜 세우며 “다시 말해 줄래?(Pardon?)” 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한번의 움직임으로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겨울왕국의 ‘엘사’처럼 차갑게 “Je ne comprends pas(이해 못하겠어)”라고 한다거나 무슨 말만 하면 “Ce n'est pas le français (그건 프랑스어가 아니야)”. 라는 말을 들으면 그나마 말을 하려고 하는 용기마저 사라진다. 언어 구사는 감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데 자꾸 이해 못했다고 하고 프랑스어가 아니라면 나도 말하고 싶지 않다.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과는 대화가 잘 되는 반면에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말귀가 통하지 않는 답답한 사람들과 말하고 싶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물며 나는 프랑스 시골에서 언어의 고립되고 그것이 정서적 고립으로 연결이 되고 자신감 부족과 삶의 의지마저 약탈해 가는 정신멘탈의 붕괴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는 자신감과 자존감의 상실로 인한 정신적인 붕괴를 이미 경험했다. 멘탈의 붕괴는 마치 지구의 내핵을 뚫고 들어간 것과 같았다. 나는 그 속에서 생존해 나온 사람이었다.
제대로 구사해야 하는 그 언어인 프랑스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니까 모국어를 포함해서 내가 할 수 있었던 모든 언어를 상실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체류증 갱신 때문에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에 전화했을 때 한국어로 말하는 데도 단어를 잊어버려서 더듬거리며 질문을 했다. 요즘도 매일 한국어를 말하지 않고 프랑스어로 말을 하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하면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친구는 내가 하는 말에 대한 적절한 단어를 찾아준다. 언어는 사용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모국어마저도…
언어를 잃고 나서야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인지를 하게 되어 언어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내가 필요로 하는 프랑스어 수준에 관해 명확한 기준이 생겼다. 관광을 하면서 필요로 하는 관광 프랑스어가 아니고, 우리 동네 사람들과의 친목도모회를 위한 동네 프랑스어도 아니며, 프랑스인과 함께 직업 훈련을 받고 인턴을 하며 구직활동을 하며 일을 하기 위한 프랑스어 수준이 필요하다. 프랑스에서 생활하면서 적어도 행정처리를 내가 알아서 처리해 갈 정도의 수준이 필요하다.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프랑스어 수준이 그 정도인 것이다.
그 정도는 해야 앞으로 프랑스에 살면서 최소한 언어를 못해서 나 자신의 주장을 못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상황에 덜 직면할 것이다. 나는 내가 전하고자 하는 말을 다른 사람의 두뇌를 거쳐가지 않고 직접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나의 의견을 주장하고 나를 보호하는 변호사의 역할을 해야 되는 것이었다. 프랑스에서 침묵은 금(金)이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 남의 의견을 잘 듣고 이해도 해야 하지만 나의 의견도 제대로 말할줄 알아야 한다. 강력한 논리, 명확한 표현, 적절한 언어 선택 등은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세종대왕이 왜 한글을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라.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이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해서 억울한 일이 많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백성들을 사랑하는 어진 마음에서 한글을 만들지 않았는가?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으로만 작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적인 구조와 권력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도 말했다. 나는 여기에서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주장한다. 내가 프롤로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언어는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인 “언어는 권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