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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리에 Jan 23. 2024

두려움은 무지에서 샘솟는 것

▶ 중급초보 B1 (2018-2019.3) 



나의 ‘직업훈련센터’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다만 기존에 다녔던 ‘직업훈련센터’에서는 프랑스어를 전혀 배울 수 없었기에 다른 도시에 있는 이름이 같은 ‘직업훈련센터’로 나의 서류는 전달되었다. 기존의 ‘직업훈련센터’는 10km 거리였기에 자전거로 통학이 가능했지만 새로운 ‘직업훈련센터’는 45km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에 있었기에 나는 집에서 버스를 타고 통학하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프랑스 남부의 시골이다. 한국에 사는 내 친동생이 여름 휴가를 우리집에서 보내도 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동생, 네가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서 내리는 거야. 그 다음엔 고속버스를 타고 전라도 광주에 도착하는 거지. 그리고 다시 시외버스터미널로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다시 해남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거야. 그 다음에는 해남의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30분을 걸어서 시골 구석에 있는 외갓집에 간다고 생각해보렴. 


동생은 그 뒤로 카톡의 답장이 끊겼다. 




우리 동네에서 ‘직업훈련센터’가 있는 도시에 가는 버스는 아침에 7시 15분에 한대 뿐이었다. 우리집은 그 버스의 기점에 위치해 있었고 ‘직업훈련학교’는 종점에 있었다. 가는 데에 1시간 30분이 걸렸다. 그러므로 교통편으로 왕복 3시간이 걸렸다. 내가 결혼해서 프랑스에 오기 전에 나는 서울의 대학로 근처에서 살았다. 서울은 큰 시내버스에서 내려서 작은 마을버스로 갈아타면 그 마을버스는 구불구불 언덕길까지 올라가서 마을 사람들을 데려다 주었다. 내가 살고 있는 프랑스의 시골 마을의 버스는 한국의 고속버스만큼 크지만 그 메가버스가 다니는 길은 서울의 ‘시내버스 + 마을버스’를 합쳐 놓은 것과 같다. 즉 우리 동네에서 그 버스를 타면 그 메가버스는 중간에 걸쳐 있는 모든 마을의 깊숙한 곳까지 돌고 돌고 돌아서 도시에 있는 그 종점까지 간다. 그래서 종점까지 걸쳐 있는 모든 마을의 학생, 직장인, 일반인 모두를 데리고 가는 셈이다. 그리고 집에 오는 버스가 종점에서 오후 5시에 한대가 있다. 그러면 아침에 버스에서 보았던 거의 모든 승객이 또 같은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심지어는 운전수도 같은 사람이다. 몇 달 동안 매일 얼굴을 마주치니 가까운 이웃처럼 심지어는 가족이나 친척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새로 배정받은 ‘직업훈련센터’에 갔더니 인터뷰가 있었다. 인터뷰 없이 시작할 프랑스가 아니었지 싶었다.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왜 수업을 듣고 싶은지 그리고 수업과정이 끝나면 어떤일을 하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프랑스어를 배우고자 강한 열망을 보였기에 인터뷰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기존의 ‘직업훈련센터’에서 새로운 ‘직업훈련센터’로 옮기는 데 총 3개월이 걸렸다. 나의 서류를 넘기는 데 2개월이 걸렸고 약속을 잡고 인터뷰를 하고 수업을 시작하기까지 1개월이 걸렸다. 그래서 9월에 옮기기로 결정을 하고 나서 3개월 후인 12월부터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9월에 유방암 진단을 받고 나서 각종 검사와 수술을 받고 마침내 항암치료가 시작하는 시점도 12월이었다. 우연일지 필연일지 모르겠지만 항암치료와 동시에 프랑스어 수업도 시작했고 그 수업이 끝나는 날짜도 항암치료가 끝나는 날짜와 대동소이했다. 그리하여 암투병으로 인해 생존하기 위한 항암치료와 함께 동시에 필연적인 우연으로 프랑스어 수업을 듣게 되었다.  



역시 도시의 ‘직업훈련센터’는 규모가 훨씬 더 컸다. ‘리사’는 혼자서 비서 업무처리를 하며 선생의 역할도 모두 도맡아했었는데, 여기 도시의 ‘직업훈련센터’에 오니 6명이 각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 비서는 모든 사람들의 서류를 처리하는 행정업무를 담당했고, 직업상담을 해주는 사람, 그리고 가르치는 것을 전담하는 선생님이 3명이 있었다. 초급 담당 선생님, 중급 담당 선생님, 그리고 덧셈이나 곱셈등을 포함해서 때로는 동화책 읽어주는 법도 알려주는 그야말로 모든 기타 사항을 담당해주는 선생님이 있었다. 그리고 모든 수업 듣는 사람들을 인터뷰 하고 반배정 해주는 책임자가 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그 조직에 대해 깊이 있게 알게 된 이유는 ‘직업훈련학교’에 오기 위해서는 버스가 아침에 한대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월요일 오전에는 수업이 없었고 수업은 오후 1시에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집에서 오는 버스가 그것 한대밖에 없으므로 오후 1시에 시작되는 수업을 위해 아침 8시 40분에 도착해서 오전을 그 기관 내에서 보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고, 식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 나는 정말 의도하지 않게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비서와 같이 보내면서, 그 조직의 체계를 이해하게 되고, 그들의 회의 내용도 간혹 듣고, 비서의 업무를 모두 알게 되고 전화통화를 듣게 되고 그녀가 화장실을 가서 자리를 배우게 되면 내가 사람들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안내도 해주게 되었다. 



나는 중급 담당 ‘클라우디아’ 선생님의 반에 배정이 되었다. 그녀의 발성은 뱃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성우의 목소리 같았고, 외모는 전형적인 학자 스타일인 교수님이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프랑스에서 생존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이고 기본이 되는 ‘편지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프랑스에 살기 전까지 프랑스에서 이렇게까지 편지를 쓰는 것이 중요한지 미처 알지 못했다. 체류증을 갱신하기 위해 나는 편지를 쓰지 않고 필요한 서류만 첨부해서 관공서에 보낸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보냈던 서류를 3주만에 반송받았다. 그래서 다시 이 서류가 무엇인지 설명을 쓴 편지를 동봉해서 서류에 첨부해서 보냈다. 그랬더니 내가 보냈던 서류가 비로서 처리가 되었다. 



나는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숙제를 하고 싶었다. 그런 나를 보고 ‘클라우디아’ 선생님은 내가 갈 때마다 엄청나게 많은 양의 연습문제를 복사해 주었다. 나는 숙제가 많은 것이 굉장히 행복했다. 배우는 것에 목마른 상태였기 때문에 열심히 풀고 질문했다. 그래서 ‘클라우디아’ 선생님이 산더미같이 복사해서 나누어 주었던 유인물로 인해 나는 약 4달동안 3권의 문법책을 끝내고 신문기사, 프랑스어 시험인 델프 문제를 풀었다. 예전에 ‘멜라니’ ‘리사’와 함께 보냈던 생존 프랑스어도 안되었던 그 시절에 나는 프랑스어는 들어도 이해 못했고 말도 못했던 상황이었고, 신기하게도 프랑스어에 어려움을 심각하게 겪고 있으니까 영어는 물론이고 모국어인 한국어마저 잊어버리는 언어장애를 겪게 되었다. 언어장애로 인해 집 밖에 외출해서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도 겁이 났다. 심지어 관공서에서 행정문서가 우편으로 도착하면 봉투 안을 열어도 모르는 단어들이 한가득 쓰여있어서 커다란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랠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두려움은 언제나 무지에서 샘솟는다(Fear always springs from ignorance.)" 라고 하였다. 무지는 공포와 두려움을 낳는다. 그러므로 이를 잠재우는 해결책은 무지를 없애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마주치는 데서 오는 두려움과 어려운 용어들이 가득한 관공서 행정문서에서 내가 받았던 스트레스는 ‘클라우디아’에게 편지를 쓰는 방식을 배우고 나서 점차적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프랑스어 말하기는 공포로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며 이것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추후에 이야기 하겠다. 


‘클라우디아’ 선생님의 반에서 나를 포함해서 프랑스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스무명 정도 되었다. 역시 도시여서 그런지 전 세계의 출신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러나 이곳의 '직업훈련센터'에서는 씻지 않고 오는 사람은 있었어도 적어도 핑크빛 실내슬리퍼를 신고 수업에 오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은 이 곳에서 있었는 에피소드들이다.



에피소드 1) 

모로코 출신의 ‘하나’라는 이름을 가진 귀여운 통통한 몸매에 우유빛깔 피부를 가진 여성이 있었다. 그녀가 임신을 했다고 해서 축하한다는 인사를 하고서는 그녀의 나이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난 19살이야.” 라고 오동통 귀여운 외모의 그녀가 대답했다. 


에피소드 2) 

어느날 신입생이 교실에 들어섰다. 그가 들어서자 앉아 있는 내 의자 위로 커다란 그늘이 졌다. 고개를 한참을 들어 올렸다. 키가 2미터 정도 하는 그는 얼굴이 축구선수 ‘음바페’와 닮았다. 다름아닌 그는 세네갈 출신으로서 프랑스에는 세미 축구 선수로 와 있었다. 그가 내 필통에서 지우개를 꺼내서 허락도 없이 쓰려고 하자 내가 “이건 내꺼니까 쓰지마”라고 했다. (난 깡이 있다. 흑형에게 개겼다.) 그 대화를 제외하고 그와 나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그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활짝 미소를 지으며 Bonjour(안녕)라고 했다. 살짝 무서워진 나도  Bonjour(안녕)이라고 맞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는 항상 그렇듯이 평소처럼 문 앞에 선생님의 교탁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원래 전혀 내 근처에도 앉지 않은 ‘짝퉁 음바페’가 나의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잠시 후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로 그날이 그의 기말고사를 보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말하기는 하지만 읽지 못하고 쓰는 것은 더 힘들었던 그는 눈에 힘을 주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꽁주게종(동사변화형)’을 알려달라고 했다. 2미터의 거대한 흑형이 ‘꽁주게종(동사변화형)’을 알려달라고 하자 쫄았다. 뭘 어떻게 알려달라는 거야? 난 열심히 ‘클라우디아’ 선생님을 구원의 눈길로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드디어 나의 눈길을 느꼈고 그 ‘짝퉁 음바페’에게 시험 부정행위 하지 말라며 경고를 주었다. 그러자 그 ‘짝퉁 음바페’는 쓰기 시험을 포기하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인상을 쓰고 있었다. 다음에 그 무서운 ‘짝퉁 음바페’를 만날까봐 걱정했으나 다행히 그 뒤로 그 흑형은 안보고 수업을 종료하게 되었다. 


에피소드 3)

독일 출신의 군인 포스를 풍기는 여성이었다. 그 여성은 열심히 핸드폰 사전을 찾아가면서 연습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한페이지가 모두 성수 일치를 시켜주지 않아서 오답이었다. 그래서 간섭하기 싫었지만 그녀가 물어봐서 성수 일치 시켜줘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사전과 비교하더니 사전에서는 그렇게 안나와 있다면서 끝까지 성수일치를 시켜주지 않았다. 결국 ‘클라우디아’ 선생님이 나의 말대로 성수일치를 시켜줘야 한다고 설명하자 그때서야 알겠다고 했다. 역시 독일인다운 사고방식이었을까? 살짝 당황했다. 


에피소드 4) 

터키 출신인 키가 자그마하고 오동통 농심 너구리를 연상시키는 분위기의 나이 지긋한 교수님 스타일의 한 아저씨는 항상 손바닥 크기의 종이 사전을 들고 안경을 콧등에 걸치고 검지손에 침을 묻히면서 단어를 찾아 보는 모습이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다. 내가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90년대가 떠올랐다. 


에피소드 5) 

수단 출신의 ‘아부’의 이름을 가진 그는 수업시간에 ‘클라우디아’ 선생님보다 말을 더 많이 한다. 그래서인지 간단한 프랑스어 단어를 사용해서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은 다 한다. 


에피소드 6)

아리따운 미모의 히잡을 쓴 모습이 수녀님을 닮은 리비아 출신의 난민이었던 그녀.. 그녀는 본인의 나라의 전쟁을 피해서 프랑스에 도착했다고 했다. 프랑스에 살다보니 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되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에피소드 7)

빨간머리 앤의 외모를 닮은 리투아니아 출신의 여성은 매일 내 옆에 앉았다. 그나마 영어를 말할 줄 아는 마담이었다. 그러나 나는 프랑스어로 말하기를 원했고 그녀는 영어로 말하기를 원해서 우리는 서로 많이 말하지 않았다. 


에피소드 8)

그 옆에는 러시아 출신의 육중한 마담이 앉았다. 그녀의 러시아 발음으로 하는 프랑스어는 내가 이해하기 힘들었다. 특히 그녀의 R 발음을 나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대화하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나에게 아이가 있냐고 물었고 나는 없다고 대답했으며 나는 그녀에게 아이가 있냐고 되묻자 그녀는 Non, merci. 라고 대답했다. 


에피소드 9) 

어느날 수업 쉬는 시간에 다른 반 마담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사실 그녀는 누구에게나 말하고 싶어하는 데 마침 내가 그녀 옆에 있었던 것이었다. 어쨌든 그녀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녀는 스무살이었고, 시리아 출신이었으며, 두 명의 엄마였다. 에메랄드 녹색의 커다란 눈을 가진 그녀는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게 하얀 피부를 가진 예쁘장하게 생긴 마담이었다. 그녀는 한참 말을 하다가 나에게 중국인이냐고 물었다. 나는 한국인이라고 대답하자 그녀는 사슴같은 눈을 양옆으로 찢으며 ‘칭챙총‘이라고 말하면서 본인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모르며 아시아인은 모두 중국인인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 그녀는 집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답답해서 청소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일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 이유는 그녀가 밖에서 일하려면 히잡을 벗어야 하는데. 다른 남자들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보는 것이 싫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그녀는 청소부가 되기 위한 방법을 주변에 물어보며 열심히 모색하고 있었다. 


이 시기의 나는 항암치료와 프랑스어공부를 병행했던 시기였다. 항암치료를 위해 가야 했던 병원에서 비서, 간호사, 의사들의 질문들을 이해하고 응답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생존프랑스어 실력을 향상시켜야 했다. 암투병을 하고 있던 내가 받은 수많은 검사들과 내가 무슨 치료를 받고 있는지 나는 이해하고 싶었다. 암으로 죽지 않기 위한 이 시기는 그야말로 나에게 문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한 ‘진정한 생존 프랑스어’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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