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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리에 Jan 16. 2024

프롤로그 : 언어는 권력이다

내 나이 마흔살, 나의 남은 인생을 같이 보내고 싶은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프랑스인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인생에서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프랑스인과 2016년 결혼을 하고 프랑스 남부 시골 온천마을에 우리 둥지를 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남편이 틀어놓은 둥지에 내가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프랑스에 오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프랑스어와 영어가 많이 다르지 않아서 금방 배울것이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정확히 말해서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평생 영어를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에 비교하면 영어에 대한 어느정도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 훨씬 더 프랑스어를 배우는 것이 빠르긴 하다. 프랑스어와 영어는 물론 언어적, 역사적, 그리고 문화적 측면에서 비슷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알파벳을 사용하고 어휘와 문법에 비슷한 요소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같은 어휘이지만 다른 뜻을 가진 가짜친구(faux amis)들만 식별하면 영어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생존 프랑스어는 짧은 시기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은 한국 사람들이 영어나 프랑스어를 배우는 것보다 일본어 배우는 것이 좀 더 쉬운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일본에서 살 때 일본어를 배우러 어학원에 한 학기 정도 다녔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같은 반이었던 중국인 학생들은 일본어의 조사를 이해를 하지 못해서 조사를 어려워했다. 반면 한국인 학생들은 일본어의 조사를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유는 중국어에는 조사가 없었기에 없던 개념을 만들어야 했고, 한글에는 조사가 있어서 한글로 사용하는 조사를 일본어로 바꿔서 단어만 암기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프랑스어에 대해 간과했던 점은 프랑스인들의 토론(Debat)문화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그들의 사고방식(Mentalite) 이었다.  연극은 영국인이 좋아하고, 노래는 이탈리아인이, 바이올린은 독일인이 가장 좋아하는 예술이며 웅변(éloquence)과 수사학(rhétorique)은 프랑스인이 가장 좋아하는 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나에게 프랑스어가 생각보다 어려운 진짜 이유는 자신을 설득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글과 말 모두에서 웅변의 예술인 바로 ‘프랑스에서 수사학’의 중요성이었다. 내가 간과했던 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프랑스에서 자신의 권리를 확립하기 위해서 말을 잘 할 줄 알아야 한다. 논리적인 대화를 통해 상대방을 납득시키면 권리를 찾을 수 있지만, 상대방의 말만 듣고 있다보면 이것은 상대방을 존중해서 들어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며 무시당하거나 무력하게 남의 의견에 끌려다니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프랑스는 토론 문화의 나라이다. 프랑스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다. 프랑스인들은 "Je ne sais pas(모르겠어요)"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싫어한다.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프랑스인들에게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질문을 하면 그들은 잘 알지 못해도 아무말 대잔치의 대답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므로 언어의 한계로 말을 못하는 경우, 심지어 모르는 상황에서도 말하는 상대에게 휘둘리는 상황이 가끔 일어나곤 한다. 게다가 성격마저 소심해서 본인의 생각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프랑스에서는 항상 손해를 보게 되며 생존이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방송을 통해 그들의 토론을 듣다 보면, 총이나 칼을 휘두르며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 혀가 총이나 칼의 역할을 대신 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공격적인 물리적 수단이 아닌 언어의 힘으로 상대방을 공격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언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다면 프랑스에서의 삶의 어려움은 이미 절반 정도 해결하고 출발한다고 보면 된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자기 권리와 주장을 논리적으로 빠르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어 능력은 프랑스에서의 삶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효과적으로 주장하고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건 물론 개인적인 나의 생각이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핵심 도구일 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형성, 전파에도 영향을 미친다. 언어는 상대방과의 의사소통의 주요 수단이며, 정치적인 문맥에서는 언어가 권력의 핵심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며 언어는 문화를 형성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언어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내가 구사하는 언어(한글, 영어, 일본어)가 통용이 되지 않는 프랑스 남부 시골 마을에 살면서부터였다. 언어를 잃고 나서야 나는 비로서 언어가 권력이라는 점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마흔이라는 중년의 나이에 미지의 언어와 마주하게 되면서 나의 생존 프랑스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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