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느 산을 갈까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어디를 갈지 망설인다. 산을 몇 군데 올라가다 보니 올라갈 때 나의 모습과 그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AI스피커에게 오늘 날씨와 온도를 물어본다. 스피커가 오늘은 미세먼지가 많다고 일침을 놓는다. 그럼에도 한참을 고민하다 등산 스틱과 장갑을 챙겨서 집 밖으로 나왔다.
편의점에서 작은 컵라면과 김밥을 사고 택시를 부른다.
이제 환갑이 다된 엄마의 나이를 생각하니 지난번 북한산 우이역에서 도선사까지 올라갔던 길은 무리일 것 같다. 택시를 타고 북한산 도선사로 데려다 달라고 청했다. 출근 시간이 지나서 차가 그다지 막히지 않았다. 밖에 싱그러운 풍경을 보며 오늘은 또 어떤 산 풍경을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된다. 택시 기사님도 이렇게 차를 타고 위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몰랐다며 덕분에 힐링한다고 고맙다고 말씀해 주신다. 내가 생각했던 건 백운대 탐방지원센터에서 내리는 것이었는데 얼떨결에 도선사에서 내렸다. 도선사에 내리니 곧 초파일이라고 준비된 연분홍 연등이 절을 둘러싸고 있다.
엄마 손에 이끌려 절은 한 바퀴 둘러본다. 산세 좋은 곳에 건립된 절에서 영험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화장실에 들렸다가 나와 주변을 돌아보니 도선사 옆으로 등산로 입구가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등산로로 오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만큼 발을 내딛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엄마가 이렇게 아무도 없는 길은 산동무와 함께 걷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래 혼자 가는 것보다 함께가 나을 때가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용암문으로 향하는 길을 오른다.
시작하자마자부터 완만함 없이 계속 올라 치는 길은 가쁘게 숨을 들이켜게 한다. 숨을 정리하며 천천히 올라가며 속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계속 오르고 오르다 보면 괜히 '용암문'이라는 이름이 용의 돌이라는 의미일 것 같고 그래서 이 길이 용의 꼬리처럼 힘들게 생겼나 혼자 입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그래도 중간중간 나오는 이정표를 보며 내가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용암문만 지나면 그다음은 백운대로 갈지 아니면 만경대에서 중간에 내려올지 결정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발걸음을 계단 위로 내딛는다.
용암문을 지난다. '용암(龍岩)'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니 내가 추측한 게 맞았나 보다. 용암문을 지나니 다른 곳에서 출발한 길과 마주치게 된다. 듣기론 북한산은 수십 개의 길이 있어서 매번 오를 때마다 다른 길로 오를 수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용암문을 기점으로 여러 등산객들이 교차하게 된다. 이정표를 살펴보니 앞으로 노적봉, 만경대를 지난 후 백운대에 이르게 된다고 안내가 나와 있었다. 이정표를 어찌나 높은 곳에 올려다 놓았는지 자세히 보려면 돌 몇 개를 올라가야 보일 정도이다.
용문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노적봉으로 향한다. 노적봉은 산을 타고 오를 수는 없고, 멀리서 보는 것만 가능하다. 노적봉을 지나 만경대로 향하는 길을 바위 투성이다. 이를 조금 지나면 만경대 옆으로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도록 산길이 나 있다. 나그네들은 지나가면 예전에는 이런 계단이 없었다며 옛 회상에 빠지 곤 한다. 만경대도 꽤나 높은 봉우리였지만 자일로만 오를 수 있고 등산화 신고는 오를 수는 없는 산이었다. 만경대를 지나면서 노적봉을 다시 한번 바라보니 가까이에서 느낄 수 없었던 웅장함이 느껴진다. 조금 더 지나 보이게 될 백운대를 바라보면서 그 높은 곳에서 휘날리고 있는 태극기를 눈에 담는다. 만경대를 지나 백운대로 향하는 길은 철로 된 계단으로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아래로 내려가기 전에 산을 휘감아도는 차가운 강풍이 몰아친다. 항상 백운대에 가까이 갈 즈음에는 이렇게 차가운 바람이 중간에 몰아쳐서 그동안 흘렸던 땀을 무색하게 한다.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면서 백운대의 웅장함을 눈에 담는다. 예전에 백운대 탐방센터에서 올라온 길과 다르게 용암문에서 백운대로 오르는 길은 아래로 내려갔다가 올라갔다가 하는 능선이 포함되어 있고, 릿지 산행도 포함되어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같이 간 엄마도 "여기로 오는 길 참 재밌지 않니?"라며 흥을 함께 해주었다. 백운대를 400미터 남겨두고 북한산성과 백운대 탐방센터에서 올라온 길과 합류하면서 사람들이 많아진다. 주말에는 백운대에 올라가기 위해 한 줄로 다른 이의 엉덩이를 보면서 올라간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인 것 같다. 이전보다 많아진 등산객 수에 봄이 지나가고 있구나라고 실감하게 된다.
백운대로 향해 나 있는 좁은 돌길을 따라 가면 철봉과 발의 감각에 의지해 올라가야 하는 암벽 구간이 나타난다. 등산화를 신었다면 밑창의 릿지에 의존하여 올라가면 좀 더 수월하다. 백운대의 넓은 돌덩이를 바라보면서 온 몸으로 바위를 오른다. 백운대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 상체를 접어가며 올라가면 나중에 온 몸이 뻐근해지곤 한다. 중간 즈음 올라가 거대한 바위에 앉아 정상을 바라보니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곳까지 올라갈 필요는 딱히 없는 것 같다. 중간에 거대한 돌에 나를 누이며 하늘을 바라본다. 오늘 미세먼지가 많다고 했는데 하늘을 바라보니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하다. 이런 가을 같은 하늘을 느껴본지가 언제인지.. 참 오랜만인 것 같다.
한참 하늘을 바라보다 백운대 정상으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등산객을 보면서 보는 사람이 더 아찔해진다. 운동화를 신고 내려가다가 미끄러지는 나그네를 보면 내 마음도 조마조마해진다. 옆의 인수봉을 바라보니 자일을 타는 사람들이 있다. 자일은 말로만 들었지만 실제로 타는 사람은 본 적은 드문 것 같다. 엄마의 말로는 자일은 자일용 신발을 신어야지 더 잘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밧줄과 나의 발에 의지해서 암벽을 탄다는 것을 또 다른 공포이면서도 동시에 스릴일 것 같다.
하산을 결정하고 나는 바위를 거꾸로 내려간다. 올라오는 자세로 반대로 내려가면 무릎도 덜 아프고 상대적으로 고소공포증 같은 두려움도 감소된다. 금방 내려와 모든 길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백운대탐방센터로 방향을 정했다. 탐방센터로 가는 길은 계곡 물줄기 소리를 시원하게 들을 수 있다. 예전에는 백운대 산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코로나로 인해 닫힌 현재에는 어떤 기능을 했던 곳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산장을 지나니 우이동 하산길이라고 이정표가 나온다. 계곡 물이 흐르는 중간에 돗자리를 펴고 등산화를 벗고 편히 앉았다. 가만히 앉아 시냇물 소리를 듣고 있으니 내 몸도 시원해지는 것 같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추울까 봐 패딩을 꺼내서 입는다. 등산가방에 꾸깃꾸깃 넣어 놓은 김밥과 컵라면을 꺼내 점심 식사를 준비한다. 늦은 점심이긴 하지만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길에 먹는 것이 가장 기분이 좋다. 몸이 무거워진 채로 산행하면 올라가는 것이 버거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물을 붓고 컵라면을 데우고, 삼각김밥을 반으로 잘라 사이좋게 엄마와 나누어 먹는다. 산에서는 무엇을 먹어도 기분이 좋아지고, 산의 풍경과 함께라면 그 맛이 두 배가 된다. 적당히 배를 채우고 어제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딸기를 후식으로 먹는다. 오후 3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한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하산해야 하니 보통 오후 3~4시 사이에는 하산해야 어두워지기 전에 안전하게 등산로 입구까지 도착할 수 있다. 한탕의 무리를 내려보내고 우리도 하산 준비를 시작한다.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심히 내려가다가 한바탕 휘청거렸다. 등산화를 잘 조이지 않은 탓인지 이전에는 잘하지 않은 실수를 할 뻔했다. 예전에 내리막길에 왼쪽 발목을 삐끗해서 다친 이후에는 아주 조심하는 중인데 이번에는 오른쪽을 삐끗했다. 다행히도 심하게 삐끗하지 않아서 다시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한다. 내려가는 길은 짧지만 돌계단으로 되어 있어서 조금은 짜증이 나기도 한다.
내려가는 길은 1시간 정도로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엄마는 내려가면서 길이 짜증 난다고 퉁명스럽다. 나는 웃으며 앞으로 탐방센터에서 북한산 우이역까지 가게 되는 아스팔트 길이 더 짜증 날 것이라고 말한다. 산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아스팔트나 돌계단보다는 흙길을 좋아한다. 북한산 우이역에서 백운대 탐방센터까지 이어지는 길은 계곡을 따라서 볼 수 있는 운치가 있지만 한 편으로는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탐방로가 반복되어 있어 등산을 시작하기 전부터 힘들게 한다. 하지만 내려가기만 한다면 꽤나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물소리와 함께 만개한 복숭아꽃이 잘 다녀왔냐고 인사해 주는 것 같다. 오늘도 너무나 아름다운 하늘과 물소리를 나의 추억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