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글 혹은 말에 풍성함을 주거나 상대방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하여 적절한 비유를 하거나 적확한 예를 들고자 노력한다. 특히 어려운 주제를 다룰 때 비유나 예를 통한 다양한 변주는 좋은 글이나 훌륭한 강사의 평가 척도가 된다.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슬며시 등장하는 비유와 예는 늘 불청객을 포함함으로써 주장을 흔들고, 어떤 경우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우들도 있다.
예 1. 인플레이션의 잦은 재발의 가능성을 ‘고질병’에 비유하는 경우.
예 2. 부동산 업계의 구조를 흥부와 놀부를 등장시켜 설명하는 경우
1의 경우는 자연스럽게 의사의 존재를 끌어들임으로써, 인플레이션을 다양한 원인에 의한 구조적인 현상이라기보다 미국 연준이라는 의사에 의해서 조정되고 길들여질 수 있는 것으로 몰고 가는 위험이 있다. 이때 연준의 파월 의장은 슬며시 인플레이션 주치의라는 독재자(혹은 신)의 이미지를 얻게 된다. 그리고 2의 경우는 부동산 시장의 당사자들을 선과 악으로 이분화시키는 치명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이렇게 비유와 예는 단순 보완(Supplement)을 넘어, 나의 담론에 의도하지 않은 종자를 심음으로써 주장과 목적을 흐린다. 그리고 종종, 주장하는 메시지의 균열을 일으켜 옆길로 새는 관점의 전환을 유도한다. 작가와 화자는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하여 비유나 예를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곳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는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다. 예 1. 의 경우에 대해서 남겨진 댓글 하나는 이런 이종교배의 혼란을 여실히 보여준다.
예 1. 의 댓글: ㅇㅇㅇ님은 틀린 말은 없는 것 같은데…, 다 듣고 나면 뭔가 남는 게 없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