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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T May 13. 2024

새로움, 생산, 창조

아무리 힘들어도 편집자를 버티게 하는 힘은 ‘원고’에서 나온다

오랫동안 경계에 살았다. 톱니에서 떨어지는 산화된 기름의 향기에 취해 살았다. 언젠가는 저편으로 들어가길 꿈꾸며. 저편에서 갓 넘어온 원고의 따뜻한 온기는 당장의 곤궁을 잊게 만들고, 꾸벅꾸벅 졸던 허세를 부추겨 저편의 삶에 대한 환상을 심었다. 새로운 원고는 현재를 견디게 하는 중독성 강한 마약이고, 이편의 삶을 끌고 가는 힘이었다.

이편은 거대한 구조의 세계다. 무리를 이루기 위한 규칙의 체계가 연결부위마다 스민 세계고, 정치/경제/문화와 같은 중심줄기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움직이는 세계다. 이 속에서 개인은 구조의 개별 부품이며 또 구조가 만드는 힘의 영향을 온몸으로 받는 존재다. 그래서 위태롭다. 힘의 영향이 구조를 이루는 부품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체계를 허물 수 있는 오류를 스스로 품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기 오류성에도 불구하고 구조는 더 커지려 하는 속성이 있다. 더 커지면 아무래도 안정성은 높아질 것이다. 비록 부분적인 와해가 발생할지라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편의 세계는 다르다. 저편은 파편화된 창조의 세계이고, 새로운 원고가 만들어지는 생산의 세계다.  창조의 세계는 어쩌면 신들의 세상이고, 적어도 씨앗을 가꾸는 농부들의 세상이다.

편집자는 창조의 세계를 넘어온 원고를 상품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 불행하게도 이것은 나의 뒤늦은 자각이다 – 원고는 상품이 될 때 구조에 편입될 수 있다. 원고는 표준 규격에 맞는 상품으로 가공될 때, 비로소 구성원이 맛볼 수 있는 샷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구조의 세계를 움직이는 힘의 본류가 드러난다. 새로움. 저편 세상의 산물이 이편 세계를 움직이는 원료가 되는 것이다. 만약 새로움이 더 이상 구조에 공급되지 않는다면, 구조는 담쟁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덮일 것이다. 결국 허무하게 무너지겠지. 구조는 흡혈귀처럼 새로움을 먹을 때, 점점 성장하고 젊어질 수 있다.

이 사실을 구조는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새로움/생산/창조에 대한 경배의 이데올로기를 창조의 영역에 뿌린다. 사람들을 새로움/생산/창조에 잡아둠으로써 구조는 생존할 수 있고, 지속될 수 있다. 그래서 나의 희망 고문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이고, 농부를 붙들어 두는 토지에 대한 환상이 생겨난 것이다. 어렇게까지 나아가다 보면 어쩌면 창조의 세계란 없을지도 모르겠다. 거대한 구조 속, 어두컴컴한 엔진 룸 한편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이 창조의 세계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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