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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nic Jul 29. 2023

한국 영화의 도식을 살리는 법 <밀수>, 류승완

스포 없음

https://youtu.be/EaA25d3QL3k

<밀수> 메인 예고편





올여름 극장가를 책임질 텐트폴 영화 중 하나인 <밀수>가 지난 7월 26일 개봉했다. <모가디슈>, <베테랑> 등을 제작한 류승완 감독의 범죄 액션 영화이다. 1970년대 가상의 지방 군천에서 일어나는 밀수 사건을 둘러싼 스토리로 춘자(김혜수 분)와 진숙(염정아 분)의 여성 투 톱 서사가 펼쳐진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떠오르는 키워드는 깔끔한, 타란티노, 한국 영화 같은 것들이었다. 영화의 만듦새는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캐릭터의 내러티브도 부족함이 없으며 후반부 카타르시스 또한 충분했다. 영화 중 만화적 연출은 지루함을 줄이고 호텔 액션 씬은 타란티노를 떠올리게 했으며 이러한 부분이 다소 잔인한 영화의 신을 현실로부터 밀어내주기도 한다.



한국식 케이퍼 무비의 단점은 그거다. 뻔한 스토리. 그러나 '한국 영화'라는 장르화를 얹고 이러한 상업 영화는 꾸준히 제작된다. 조금 뻔하더라도 잘 만들어오면 관객은 충분히 반겨줄 의향이 있다는 얘기다.한국식 케이퍼 무비의 알 만한 내용. 그것은 극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미 관객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스키마다. 스토리? 이미 예상한다. 김혜수? 중요하겠지. 염정아? 중요하겠지. 투 톱 범죄 액션 영화? 둘이서 합작해 악역의 뒤통수를 치겠지. 뻔한 도식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래도 여전히 재미있냐는 것이다. 이들은 '아는 맛'에 속을 준비된 관객이다. 얼마나 공들여 매력 발산을 하는지, 그걸 보러 온다는 말이다.




영화는 영화관 안에서만 소비되지 않는다. 영화관 밖에서도 영화에 대해 꾸준히 언급하는 관객층이 있다. 그들이 영화의 개그 신을 밈meme화 하고, 영화 속에서 풀어내지 않은 캐릭터 간의 관계성을 상상하고, 그것을 함께 즐길 여지를 만들어준다. 영화관 밖에서 회자되는 영화는 애정을 받는 영화다. 영화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 주는 관객들은 그들 자체로 영화의 마케터가 되는 것이다. 팬이 영화를 인양한다.





기꺼이 팬이 될만한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 위해서는 당연히 영화의 매력이 선제되어야 한다. <밀수>는 꽤 관심을 유지할만한 요소를 잘 갖추고 있다. 생존 욕구 충실한 여성 서사, 배우들 사이의 케미와 캐릭터 다수의 앙상블, 1970년대의 복고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음향과 배우들의 착장, '해양 범죄 활극'에 맞게 필요할 때는 나와 주는 액션씬 등. 이러한 요소를 쭉 생각하고 있으면 <오션스 8>, <삼진그룹영어토익반>, <신세계>, <도둑들>, <타짜> 같은 영화들이 떠오른다. 여성 서사, 복고, 투 톱 워맨스-신세계의 경우 브로맨스지만-, 케이퍼 무비, 그리고 캐릭터의 측면에서다.







<타짜>가 떠오르는 것은 영화 초중반부까지 '예림이'를 떠올리게 하는 김혜수의 연기 톤과 <타짜 3>에 박정민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했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김혜수를 보고 있자면 <도둑들>의 펩시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펩시보다는 퍽 마카오 박에 가까운 캐릭터를 맡았다. <타짜> 정 마담과 <도둑들> 펩시에서 <밀수>의 조춘자가 되기까지 그의 필모그래피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한국 영화의 상투적 표현으로, '판을 짜는' 주인공이 된 그를 보고 있으면 한국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의 사용법이 조금 달라진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염정아가 연기하는 '진숙'의 해녀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과 꼿꼿함은 어떤 귀중한 직책이 그에게 내려진 듯한 느낌으로, 이런 여성 캐릭터는 흔치 않다는 감상이다. 이런 두 주연의 케미스트리는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원동력 중 하나다.


여성 서사를 부각하는 영화라면 기존에 남성 캐릭터가 맡았던 캐릭터들을 여성 캐릭터로 살짝 바꾸기만 해도 꽤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밀수>는 아예 여성 캐릭터를 떼거지로 등장시켰다. <밀수>는 군천의 여성 캐릭터들을 하나하나 돌보는듯한 시선으로 비춰주면서 감초 여성 캐릭터까지 확실히 전달한다.





<밀수>의 해녀들. 신구의 조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다음 요소는 영화의 액션 씬과 자극성이다. <밀수>의 초반부를 보며 생각보다 잔인하다는 사실에 놀랐는데, 복고 풍 분위기와 쨍한 태양빛 아래 펼쳐지는 바다에서 일어나는 유혈 사태가 사건의 비극을 부각한다. 그 후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배경 음악으로 깐 권 상사(조인성 분)의 호텔 액션 씬은 인물의 감정과 액션의 동선까지 전달력이 높았으며 쿠엔틴 타란티노가 떠오른다. 장도리(박정민 분)의 혀를 내두르는 얼굴과-비유적 표현이 아니다-권 상사의 눈빛은 상당히 볼 만하다. 바다에서 펼쳐지는 해녀들의 액션 시퀀스는 다소 코믹하게 흘러간다. 이 후반부 수중 액션씬과 호텔 액션 씬의 상반되는 톤 앤 매너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사실 영화 전체적으로 그렇다. 곳곳에 유머를 심고 주의를 끄는데, 현실로 파도 타듯 밀었다가 다시 멀어지게 만드는 단짠단짠식 구성이 영화 전체적으로 지루함을 줄인다. 류승완 감독은 심각한 것을 심각하지 않게 보여줄 줄 아는 감독이다. 이 부분이 영화의 호흡을 밀고 당긴다.





결국 관건은 아는 내용이지만 얼마나 재미있게 풀어내느냐이다. 영화의 팬이 되어줄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한국 영화의 공식에서 어느 정도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지, 관객이 극장 밖까지 데려가 즐길만한 구석이 얼마나 있는지다. 그것이 이 도식의 뻔함과 저울 양 측에 올라갔을 때 어느 쪽이 무거운가에 따라 관객의 손은 방향을 정하게 된다. 엄지가 위로 올라가면 좋아요, 아래로 내려가면 싫어요일 것이다.


워맨스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는 좋아요에 가까울 것이다. 헤테로 러브 라인을 좋아하는 사람도 약간은 즐거울 수 있을 듯하다. 여름용 킬링 타임 무비를 찾거나 오랜만에 새로운 액션 씬 좀 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괜찮은 선택일 것이다. 김혜수, 염정아, 고민시의 팬이라면 필수 관람 해야 된다. <오펜하이머> 개봉 전까지 버티는 와중 깔끔한 상업 영화를 원한다면 추천한다.

왠지 이 영화가 TV에서 명절 특선 야간 영화로 나올 것 같은 미래가 그려진다. 추석 영화 대표 격인 <극한직업>과 같은 흥행을 얻는다면 가장 좋겠지만 앞으로 줄줄이 올여름 텐트폴 무비가 개봉 예정이기에 전망이 확실치 않다. 개인적으로 여성 서사를 좋아하므로 나는 추천하겠다. 그렇다고 해서 또 페미 영화라고 눈에 불 켜고 보지 말고 그냥 봐도 괜찮다. 밀수하는 해녀들이란 어디 가서 흔히 못 보는 소재니 이전에 치킨 튀기는 형사들 얘기 정도 좋아했다면 이 영화도 재미있게 볼 것이다.




사족

그리고 조인성은 나이가 들어도 조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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