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던..
어린 시절 뉴스에선 종종 도둑 소식이 들렸다.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집에 있는 귀중품을 훔쳐 간 도둑. 복면을 쓰고 들어와 사람들을 협박한 뒤 현금을 훔쳐 달아난 도둑. 금은방에 비비탄총을 들고 들어와 보석을 훔친 도둑. 오이를 수건으로 감싸 총인척하며 은행을 털던 간 큰 도둑. 오직 부자들의 집만 쥐도 새도 모르게 털어간다는 전설적인 도둑.
언젠가부터 도둑이란 단어는 듣기 어려워졌다. 과학 기술의 발달과 진화된 수사 기법 때문에 도둑질로 성공하기 만만치 않아졌다. 이젠 도둑이란 단어는 ‘도둑놈 심보’ 같은 관용적 표현에서만 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이 좋아지는 만큼 범죄도 진화했다. 보이스 피싱, 전세 사기, 중고차 사기, 대출 사기 등의 범죄는 도둑질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큰 피해를 일으킨다. 이런 말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 도둑들은 지금보다 순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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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현관문은 열쇠가 두 개였다. 평소엔 아래쪽 열쇠만 잠갔지만, 뉴스에 도둑 소식이 들리면, 엄마는 우리에게 꼭 위쪽 열쇠까지 이중으로 잠그라고 강조했다. 복면 쓴 도둑이 무서웠기에 엄마 말을 잘 들었다. 덕분에 우리 집에 도둑이 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평소에 열쇠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나는 잃어버리기 선수였기에, 엄마는 나에게 열쇠를 맡기지 않았다. 엄마는 대부분 집에 있었고, 초인종을 누르고 ‘엄마 나야!!’를 외치면 문이 열렸다. 가끔 엄마가 외출할 일이 생기면, 어쩔 수 없이 엄마는 나에게 열쇠를 쥐여주셨다.
한 마디를 덧붙이며.
“절대 잃어버리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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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철저한 문단속은 부작용도 있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평소처럼 초인종을 눌렀다,
“엄마 나야!”
이상하게 문이 열리지 않는다.
‘엄마가 화장실에 있나?’
조금 기다려본다.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
‘혹시 초인종이 고장 났나?’
다시 초인종을 눌러본다.
문밖에 서 있는 내 귀까지 초인종 소리는 선명하게 들린다.
‘아…. 엄마가 없구나.’
핸드폰도 없고, 시계도 없던,
하필 주머니에 pc방 갈 돈조차 없던 그때.
나는 묵묵히 창밖을 보며 엄마를 기다렸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자 노하우가 생겼다. 우리 집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이 없으면 옆집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옆집 아주머니께서는 늘 반갑게 맞아주셨다. 엄마는 그분을 ‘609호 집사님’이라고 불렀다.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집사님’께 인사를 드린 뒤 말했다.
“엄마가 집에 안 계세요.
혹시 전화 한 번만 해봐도 될까요?”
“그래, 그래. 얼른 들어와서 전화해봐라.”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 미안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얼른 집에 가겠다고.
잠시만 거기서 기다리라고.
엄마가 정말 미안하다고….
난처한 순간도 있었다. 전화를 빌리러 옆집에 갔는데, 부부 싸움을 하고 계셨다. 내가 들어가자 두 분은 마치 연극을 하고 있었다는 듯이 나에게 친절하게 말했다.
“밖이 춥지? 엄마가 오실 때까지 여기서 쉬어.”
그리고 다시 연극을 시작하셨다.
“더 이상은 이렇게 못 살아!!”
“내가 뭘 잘못했어!!”
“나가!! 나가!!”
관객은 오직 나밖에 없는,
지독히도 실감 나는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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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 때 친구 집을 놀러 가서 도어락을 처음 봤다. 현관에서 친구는 슬라이드 폰처럼 생긴 것을 철커덕 열더니, 띡띡 숫자를 눌렀다. 그러자 문이 열렸다. 해리포터에서 보았던 마법의 주문이 생각났다. 잠긴 문을 단숨에 열던 그 주문.
“알로 호모라!”
친구는 열쇠가 필요 없었다. 아파트 복도에서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이런 엄청난 발명품이 있다니…. 저거 사달라고 엄마한테 졸라야겠다.
진짜로 엄마에게 졸랐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도 도어락을 설치했다. 설치를 마치고 우리는 당황했다. 숫자키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일단 보조키를 사용해 문을 열었다. 이런 식이면 도어락으로 바꾼 의미가 없다. 열쇠를 잃어버리면 집에 못 들어가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었을 뿐.
도어락을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갑자기 번쩍하고 숫자가 나왔다. 손바닥을 대면 숫자가 나오는 터치식이었다. 이제 진짜로 더 이상 열쇠가 필요 없게 되었다. 그렇게 현관 열쇠와 추억은 끝이 났다.
그때 이후로 복도에서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리는 일도,
전화를 빌리러 옆집 벨을 누르는 일도 생기지 않았다.
학교는 지금도 열쇠로 문을 잠근다. 가끔 교실 열쇠를 주머니에 넣고 다음 날에 안 가져오는 날이나,
“컴퓨터실 열쇠가 사라졌습니다! 혹시 가져가신 분은 연락주세요.”
같은 메시지를 받는 날이면 그때가 떠오른다.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그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