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기다리던...
매일 저녁 6시쯤 우리 아파트엔 하얀 다마스 한 대가 들어왔다. 작은 차에 어울리지 않는, 큰 풍채를 가진 사내가 내렸다. 그는 트렁크 문을 열고 종을 꺼낸 뒤, 특유의 리듬에 맞춰 흔들었다.
“딸랑딸랑~, 딸랑딸랑~”
아파트 모든 집에 울릴 정도로 꽤 날카로운 종소리였다. 동시에 그는 자기 목소리를 녹음한 파일을 메가폰 스피커에 크게 틀었다. 작은 소음에도 이웃 간의 마찰이 잦던 아파트였지만, 유독 그 쩌렁쩌렁한 소리에는 관대했다. 오히려 그 소리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딸랑딸랑~, 딸랑딸랑~”
“따끈따끈한 두부! 두부가 왔어요. 따끈따끈한 두부! 두부가 왔어요.”
그 사내의 정체는 두부 아저씨다.
○
종소리가 들리면 기다렸다는 듯이 아파트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두부 아저씨의 오래된 단골들이다. 어느 슈퍼나 마트에 가도 다 있는 두부였지만, 아파트 사람들 대부분은 이 아저씨 두부를 최고로 인정했다. 아저씨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다.
엄마는 두부 심부름을 자주 시켰다. 종소리가 들리면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비오야, 두부 한 모 얼른 가서 사 와.”
종종 내가 문을 열면 동시에 옆집 현관문이 열렸다. 옆집 아주머니께서는 인자한 미소로 천 원짜리 한 장을 건네시며 말씀하셨다.
“비오야! 우리 껏도 하나만 사와라잉. 부탁한다잉.”
동시에 문이 열리는 빈도수가 점점 늘어나자, 이게 진짜 우연인지, 혹시 아주머니께서 두부 종소리가 들리면, 귀를 쫑긋하고 계시다가, 우리 집 문소리에 맞춰, 문을 여시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괜찮았다.
나는 두부 심부름을 참 좋아했으니까.
두부 아저씨 종소리를 눈앞에서 듣는 것도 좋았고, 면보를 들추면 솟아오르는 새하얀 김도 좋았다. 그 김에서 나는 냄새는 정말 고소했다.
○
오동통한 두부는 단돈 천 원이었다.
엄마에게 받은 천 원 한 장을 아저씨께 드리면
“심부름 왔구나?”
라고 친절하지만 수줍은 한 마디를 건네시며,
두부 꽁다리 부분을 잘라주셨다.
“이거 한번 먹어보렴.”
너무 맛있어서, 혹시 그 꽁다리 부분만 따라 살 수는 없는 건지 궁금했지만, 여쭤볼 용기까지는 없었다.
비닐에 싸주신 두부는 따뜻했다. 손에 느껴지는 말랑말랑한 두부의 온기가 좋았다. 비닐에 손을 살짝살짝 가져다 대면서 집에 올라갔다. 엄마는 조금 맛볼 수 있게 두부를 바로 썰어주셨다. 방금 사 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 위에 김치를 살짝 올려 먹었다. 천 원의 행복이었다.
○
두부 아저씨는 시곗바늘 칸트만큼이나 시간을 잘 지키셨다. 가끔 두부 아저씨가 저녁 6시쯤에도 오시지 않으면, 엄마는 걱정했다.
“왜 두부 아저씨가 안 오시지? 빨리 와야 하는데….”
잠시 뒤에 현관문 밖에서는 옆집 아주머니들 말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진다.
“두부 아저씨가 오늘은 늦으시네?”
“오늘은 두부 아저씨 안 오는 날인가? 허 참…. 큰일이네.”
모두가 그를 그토록 기다리고 있었다.
○
고등학생이 되었다. 야간자율학습으로 학교가 밤 10시에 끝났다. 도저히 두부 아저씨를 만날 수가 없었다. 온종일 학교에만 있다 보니, 두부 아저씨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사를 갔다.
그 후로, 두부 아저씨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두부 아저씨가 아직도 종을 치며 두부를 파시는지, 아름다운 은퇴를 하셨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갑작스러운 이별에 전하지 못했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때 주신 두부 꽁다리보다 맛있는 두부는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다시 볼 기회 없이 살아가더라도, 마음속으로 늘 응원하겠습니다. 건강히 지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