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를 아시나요??
초등학교 시절 ‘버디버디’라는 메신저가 있었다. ‘버디버디’를 통해 우리는 학교가 끝나고도 소통할 수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면 우선 버디버디를 켰다. 접속한 친구가 많으면 왠지 기분이 좋았다. 친구들이 내 옆에 늘 함께하는 기분이었다. 버디버디를 통해 우리는 함께 게임을 할 친구를 찾기도, 주말에 야구할 친구를 모으기도 했다.
버디버디에는 미니홈피가 있었다. 그땐 주로 인터넷에서 재밌는 사진을 찾아 올리는 게 유행이었다. 나는 개와 새를 결합한 ‘개새’ 사진을 주로 올리며 친구들을 끌어모으려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없었다. 좀 더 재밌어 보이는 합성사진을 올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 사진을 올리기도 지칠 때쯤, 갑작스레 인기를 끈 건 의외로 글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들은 조금씩 혈기 왕성해졌다. 서로 물리적인 다툼도 많았다. 우리는 그걸 ‘맞짱을 깐다.’라고 했다. 친구들이 서로 ‘맞짱’을 까며 서열을 매기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나는 한 발짝 물러서 ‘맞짱의 순간’을 기록하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맞짱’을 까는 순간에 말리는 척 맨 앞에 섰다. 그들의 움직임, 주특기, 스피드, 파워를 최대한 자세히 관찰했다.
데이터가 어느 정도 쌓이자, 버디버디 미니홈피에 ‘우리 반 학생들 전투력 측정’이라는 글을 올렸다. 같은 반 친구들이 싸울 때 보이는 특징을 자세하게 묘사한 글이었다. 대략 이런 식이었다.
S: 동네 아저씨 스타일. 손발보다 고함이 먼저 나감. 그 고함이 꽤 위력적임. 정통 복싱 스타일보다는 엄마 스타일의 등짝 스매싱을 주로 사용.
B: 날쌘돌이 스타일. 트레이드 마크인 꽁지머리가 흩날릴 정도의 스피드를 보여줌. 주로 발차기를 사용. 큰 키를 잘 활용해서 싸움.
C: 아가리 파이터. 청산유수로 터져 나오는 깝죽거림은 상대에게 큰 타격을 줌. 강자를 만나면 급격하게 조용해지면서 장점을 살리지 못함. 전형적으로 약자에게 강한 스타일.
별생각 없이 단숨에 휘갈긴 글이었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파장이 커졌다. 많은 친구들이 깔깔대며 좋아했다. 자신을 묘사한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들은 하나둘 와서 따졌다. 글을 당장 지우라는 협박과 조금만 좋게 고쳐줄 수는 없냐는 회유에도 꿋꿋하게 버텼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글을 수정하거나 삭제하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다행히 목에 칼을 들이미는 친구는 없었다. 자기는 왜 글에서 빠졌다며 아쉬워하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2탄을 준비하고 있으니, 앞으로 좀 더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며 격려했다. 세상에서 인정받은 첫 번째 글이었다. 안타깝게도 게으름에 빠져 2탄은 나오지 않았다.
○
6학년이 되자 버디버디는 고학년에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중학생들은 다 싸이월드를 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퍼졌다. 결국 버디버디의 인기는 조금씩 사그라들고, 싸이월드의 시대가 왔다. 싸이월드는 버디버디와 비슷했지만 달랐다. 싸이월드에서는 실명을 사용했다. 실명이 워낙 특이했기에, 나는 이점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통 다른 친구들 이름을 검색하면, 같은 이름이 두세 개 정도는 나왔다. 평범한 이름의 친구들은 열 개 넘게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내 이름 ‘비둘기’를 검색하면 언제나 딱 한 명이 나왔다. 특이한 이름을 장점으로 여기고 당당하게 말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었다. 몇 년 뒤, 밥을 먹다가 아빠가 한마디 던졌다.
“너도 싸이월드 하더만. 니 이름 쳐본께 바로 나오드라.”
그 순간부터 인터넷 공간의 자유로움은 사라졌다. 미니홈피에 글을 올릴 때 나도 모르게 검열하게 되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오직 ‘내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미니홈피 배경음악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너무 질리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바꿔주었다. 포지션의 ‘I love you’, 프리스타일의 ‘Y’가 그 시절 인기 많던 배경음악이었다. 소중한 순간은 사진첩에 기록했다. 나중에 다시 사진첩을 보면 그 순간의 기분을 떠올릴 수 있었다. 첫 페이지에 나오는 ‘미니룸’이라 불리던 작은 방 한 칸. 그 가상의 방도 열심히 꾸몄다. 소파를 놓기도 하고, 침대를 놓기도 하고, 이리저리 옮겨보기도 하면서 내 방보다 더 신경 썼다. 그 방 안에는 나의 분신 ‘미니미’가 살았다. 강제로 스포츠머리를 해야 했던 중학교 시절, 미니미의 머리를 화려하게 바꿔보며 해방감을 느꼈다. 미니미는 머리 위 작은 말풍선을 통해 내 마음을 대신 전했다. 그 말풍선에 무슨 말을 썼던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시절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방을 꾸미고 배경음악을 바꾸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 싸이월드에서 상품을 살 수 있는 돈은 ‘도토리’였다. 도토리는 한 개에 100원이었다. 5개면 배경음악 하나를 살 수 있었다. 지금은 별이 되어버린 인디 가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그는 음원 판매 수익을 도토리로 주겠다는 싸이월드의 제안을 받고 불만을 표하는 노래 ‘도토리’를 만들기도 했다.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게 뼛속까지 익숙해도
아무래도 이건 좀 짜증나
도토리, 이건 먹을 수도 없는
껍데기, 이걸로 뭘 하란 말야
<도토리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도토리는 서로에게 선물을 할 수도 있었다. 생일인 친구나 마음에 드는 이성 친구에게 ‘도토리’를 선물하는 문화도 생겼다. 아. 물론 나는 한 번도 받아보진 못했다. 하하하. 난 괜찮다. 걱정 마시길.
싸이월드에서는 친구를 ‘일촌’이라고 불렀다. 일촌들은 미니홈피에 들어와 글을 남겨주곤 했다. 사진에 댓글을 달아주고, 방명록에 글을 남겨주었다. 미니홈피 가장 첫 화면에 보이는 ‘일촌평’은 그 친구와 내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인기 많은 친구의 미니홈피에서는 한 눈에도 가득 찬 일촌평과 끝없이 이어지는 방명록을 볼 수 있었다. 반면 내 미니홈피는 깨끗했다. 텅텅 비어 허전한 일촌평. 두세 개가 전부였던 방명록.
하하하하…. 난 괜찮다…. 걱정 마시길….
솔직히 괜찮지 않았다. ‘이곳은 오직 나만의 공간’이라고 위로하기엔 너무 쓸쓸했다. 아주 가끔 내 미니홈피에 들어와, 내 사진을 보고, 댓글을 남겨주고, 방명록까지 남겨주는 번거로운 일을 해준 친구들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애정을 가진 사람들. 참 좋은 사람들.
○
6단계만 거치면 전 세계 사람이 서로 아는 사람이라는데, 싸이월드는 그걸 증명했다. 내 일촌의 일촌을 계속 탐험하던 ‘일촌 파도타기’. 가끔은 몰래 가깝지 않은 친구들의 미니홈피를 염탐했다. 그러다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졌다. 파도를 타다 보면 알 수 있었다.
우린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린 모두 만난다는 것을.
한때는 3,000만 명의 사용자 수를 자랑하던 싸이월드는 어느 순간 몰락했다. 싸이월드는 스마트폰 시대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 사람들은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로 하나둘 넘어갔다. SNS의 핵심은 소통인데, 싸이월드에는 더 이상 소통할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다. 몇 차례 심폐소생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심장은 제대로 뛰지 않고 있다. 2년 전, 싸이월드 사진첩을 복원할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몇몇 친구들이 복원하고 나서, 추억의 옛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도 궁금해져서 복원해볼까 하다 말았다. 비밀번호 찾기가 너무 귀찮았다. 옛 추억은 데이터 센터 어딘가 묻어두기로 했다.
훗날 누군가 싸이월드를 아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싸이월드를 아냐고요?
제가 아는 SNS 중에 최고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