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의 아이콘
학생들을 가르치다 자주 놀란다. 능력자들이 참 많다. 나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는 학생. 동영상 편집을 빠르게 해내는 학생. 한 번만 보고도 춤을 따라 출 수 있는 학생. 감각적인 시를 쓰는 학생. 하지만 단 한 가지는 우리 세대보다 훨씬 부족함을 느낀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한다.
교실에는 노트북이 26개가 있다. 교육청에서는 학생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해 모든 학생에게 노트북을 빌려주었다. 참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학생들은 이상하게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다. 아마 컴퓨터보다 스마트폰을 자주 접해서 그런 것 같다. 와이파이를 연결하지 못하는 아이, 독수리 타법 신공을 보여주는 아이, 폴더를 찾지 못하는 아이…. 컴퓨터를 활용하는 수업은 다양한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다.
사회 시간이었다. 자신이 소개하고 싶은 나라를 발표하는 수업이었다. 파워포인트로 발표 자료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다행히 아이들은 꽤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가장 먼저 완성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 다 했으면 꺼요?”
다급하게 외쳤다.
“안돼! 저장해야지!”
“저장 어떻게 해요?”
“아…. 저장은 말이지.”
이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표 자료를 열심히 만들고 있던 학생들에게 잠시 멈추고 앞을 보게 했다.
“자! 여기 보세요! 어이! 거기. 하던 거 멈추고 여기 보자! 우선 저장하는 방법을 먼저 알려주겠습니다. 잘 보고 완성한 뒤에 꼭 저장해야 합니다. 자!! 여기 선생님 마우스 보이죠? 이 디스켓 모양을 누르세요.”
그때 한 아이가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디스켓이 뭐예요?”
“아…. 디스켓은 말이지. 너희 USB 알지? 그거랑 똑같은 거야. USB가 있기 전에는 디스켓에 저장했어.”
나도 사실 디스켓을 사용하던 세대는 아니다. 디스켓의 모양, 크기, 질감은 생생히 기억나지만, 디스켓을 언제 마지막으로 썼는지,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디스켓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같은 아파트 9층에 살던(10층인가?), 아파트 앞 슈퍼 아들이자, 우리 아빠의 제자였던, 이름 모를 형.
그는 컴퓨터 박사였다. 물론 박사 학위가 있지는 않았지만, 컴퓨터에 빠삭했다. 아빠는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면 늘 인터폰으로 형을 불렀다. 그러면 5분 내로 형이 우리 집에 왔다. 그가 이리저리 만지고 나면 컴퓨터는 다시 제대로 작동했다. 아빠는 원인을 물었고, 형은 자세히 답했다. 아빠가 알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빠는 내가 게임 CD를 사달라고 조를 때도 먼저 그 형에게 인터폰을 했다.
“00야. 혹시 ‘킹 오브 파이터즈’ 게임 다운 받을 수 있냐?”
그러면 형은 디스켓 몇 개를 들고 우리 집으로 왔다. 한 시간 정도 거실에서 기다리면 ‘킹 오브 파이터즈’뿐만 아니라 ‘메탈슬러그’, ‘보글보글’까지도 컴퓨터에 깔려 있었다. 그의 디스켓은 보물창고였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디스켓 실제로 본 사람?”
아무도 없었다. 파일을 저장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 잘못이 아니었다. 아이들 기억에는 ‘디스켓’과 ‘저장’ 사이의 연결고리가 없었다.
디스켓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것도 꽤 오래전에….
그래도 ‘저장’의 아이콘은 영원히 ‘디스켓’이길 소망한다.
학생들이 이게 도대체 뭐냐고 물으면,
“아…. 디스켓은 말이지.”
라고 대답하며 추억을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혹시나
‘시대에 맞게 저장 아이콘을 ‘USB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간곡히 부탁한다.
“거…. 참. 한 번만 넘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