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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문구점

없는 게 없던...

by 비둘기

옛날 옛적엔. 글을 쓰는 방을 문방(文房)이라 불렀다. 글을 쓰려면 도구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 노트북에 글을 쓴다. 가끔은 노트에 펜으로 쓰기도 한다. 지하철을 탈 때는 휴대폰 메모장을 이용한다.

옛날 옛적엔. 붓으로 글씨를 썼다. 그때 꼭 필요한 친구들이 있었다.

문방사우(文房四友).

서재에 꼭 있어야 할 네 벗.

지필연묵(紙筆硯墨).

종이, 붓, 벼루, 먹.

문방구(文房具)의 좁은 뜻은 이 네 친구를 말한다. 넓은 의미로는 현대에 사용하는 펜, 잉크, 공책 등 모든 학용품을 뜻한다. 이들을 파는 곳도 문방구라고 부른다. 사실은 문방구점이 옳은 표현이지만, 언어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문방구’라고 하면 누구나 학교 앞 준비물을 사던 작은 가게가 떠오를 것이다. 문방구, 문구점, 문방구점 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 우리 학교 앞 가게들은 다들 ‘문방구’가 아닌 ‘문구점’이라 불렀다.




우리에게 문구점은 멀티 플렉스였다. 그곳은 학용품만 파는 게 아니었다. 햄, 호떡, 과자,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음식이 있었다. 음식 가격은 대부분 100원, 비싸면 200원이었다. 천 원만 있어도 그곳에선 부자였다. 오락도 할 수 있었다. 두 대 정도 있던 오락기는 인기가 많았다. 학교 끝나고 뛰어가도 늘 누군가 이미 쭈그려 앉아 오락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화면에 빨리 ‘GAME OVER’라는 글씨가 뜨길 간절히 바라며 뒤에서 지켜봤다. 참 못된 마음이었다.



문구점은 우리를 도박에 빠지게도 했다. 문구점엔 100원을 넣고 하는 ‘가위바위보’ 게임이 있었다. 가위바위보를 이기면 룰렛이 돌아간다. 거기에 나오는 숫자만큼 메달을 준다. 메달 1개는 100원의 가치가 있다. 문구점 안에서는 자유롭게 화폐처럼 사용할 수 있다. 한 번 100원으로 한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메달 7개를 땄다. 그 손맛을 한동안 잊을 수 없었다. 1,000원을 날리고서야 도박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우리 동네는 문구점이 많았다. 정문에 ‘그린 문구’, 후문에 ‘사이버 문구’, 학교 가는 길목에 있던 ‘똘이문구’. ‘똘이문구’는 동네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가게도 좁고 많이 낡았다. 학교에서도 가장 멀었다. 하지만 주인 할머니가 워낙 친절하셨다. 할머니 때문에 그곳을 찾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준비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똘이문구를 갔다. 물건이 질서 없이 정리된 것 같았지만, 주인 할머니께서는 귀신같이 찾아서 꺼내주셨다.



정문의 ‘그린 문구’는 부부가 운영했다. 아저씨와 아줌마가 함께 계셨다. 후문의 ‘사이버 문구’는 아저씨가 주로 계시고, 가끔 딸로 추정되는 누나가 있었다. 이 두 문구점은 적절히 고객을 나눠 가졌다. 정문으로 오가는 학생들은 ‘그린 문구’를, 후문으로 오가는 학생들은 ‘사이버 문구’를 갔다. 두 문구점은 경쟁 관계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평화로운 시절이었다.


평화로운 연못에 돌을 던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정문에 ‘스마일 문구’가 생긴 것이다. ‘스마일 문구’의 주황색 간판은 오래되어 낡은 ‘그린 문구’ 간판과 비교되었다. ‘스마일 문구’는 오픈 날 다양한 분식을 팔며 우리들의 마음을 끌어들였다. 만두, 떡꼬치, 피카츄 돈가스, 김말이. ‘그린 문구’에서는 볼 수 없던 먹거리였다. 친구들은 하나둘 그린문구를 떠나 스마일 문구로 갔다.



그때부터 그린 문구 아저씨는 조금씩 예민해졌다.

하루는 내 친구 C가 엄마께 천 원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C는 우리에게 한턱내겠다고 했다. 유독 ‘똘이문구’ 할머니를 좋아하던 C는 ‘그린 문구’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우리 세 명이니까 천 원짜리를 우선 동전으로 바꾸자. 내가 400원 쓰고 너희 300원씩 줄게. 일단 돈은 여기 앞에 ‘그린 문구’에서 바꾸고 ‘똘이 문구’에서 사 먹자.”

‘그린 문구’ 문을 열자마자 아저씨께는 우리에게 험상궂은 표정으로 우리에게 호통을 치셨다.

“자식들아! 거기서 사 먹을 거면 돈도 거기서 바꿔! 여기가 무슨 돈 바꿔주는 데야?”

우리는 아저씨가 너무 무서웠다. 황급히 문을 닫고 ‘똘이 문구’로 뛰어갔다.



하루는 학교에서 불량식품의 위험성을 배운 날이었다. 학교 끝나고 오락을 하러 친구들과 ‘그린 문구’에 들어갔다. 오락이 끝나고 먹을 거나 사서 집에 가려던 때, 친구 한 명이 말했다.

“야! 근데 선생님이 불량식품 안 좋다고 하시지 않았어?”

그때 갑자기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린 문구 아저씨였다.

“이 자식아! 뭐가 불량식품이라는 거야. 응? 다시 말해봐. 뭐가 불량식품이야!”

우리는 또다시 황급히 그곳을 뛰쳐나왔다. 갑작스러운 호통에 오기가 생긴 친구는 나오며 크게 외쳤다.

“불량식품 먹지 맙시다!”

지금 생각하니,

참 버릇없는 자식이다.



학교 앞 문구점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수많은 악재가 겹쳤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준비물을 대부분 제공해준다. 온라인 쇼핑몰은 하루 만에 집 앞까지 배송해준다. 대형 문구점들은 화려하고 귀여운 제품으로 유혹한다. 게다가 코로나19라는 결정타를 맞았다. 학교를 오지 않는 아이들. 학교 앞 문구점은 그나마 있던 고객을 잃었다. 살아남기엔 너무 가혹한 환경이었다.



20년 전에 다니던 내 초등학교 앞을 가봤다. ‘그린 문구’, ‘사이버 문구’, ‘스마일 문구’, ‘똘이 문구’ 모두 사라졌다.

이제 학교 끝난 아이들은 어디에서 놀아야 하나.



궁금하다.

지금 아이들은 훗날 어떤 장소를 그리워할까.

그들에게 과연 ‘학교 앞 문구점’ 같은 장소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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