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카스텐
스틸하트의 <she’s gone>. 이 노래는 고음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 필수 코스였다. 노래방에서 누군가 <she’s gone>을 예약하면 긴장감이 맴돌았다. she’s gone~ out of my life~~. 아무도 노래의 첫 부분엔 관심이 없었다. 모두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노래의 음이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하면 모두가 주목했다. 포깁미(forgive me)! 거얼~~↗얼~~↗어~~↗어얼!!(girl). 이제 모두가 기다리는 순간이 왔다.
Lady, won't you save me?
My heart belongs to you
Lady, can you forgive me?
For all I've done to you
Lady, Oh, lady
대부분 도전자는 기세 좋게 무너졌다. 자기 몸보다 큰 바위를 밀겠다며 덤비는 꼴이었다. 가끔 누군가는 그 바위를 강력한 힘으로 밀어냈지만, 많은 이가 주저앉았다. 나도 She’s gone의 바위를 밀어내지 못했다. 내가 She’s gone을 부를 때, 친구들은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루는 인터넷에서 ‘고등학생이 부르는 She’s gone’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봤다. 의문을 품으며 클릭했다. 노래방에서 녹음한 듯한 구린 음질에서 깨끗한 목소리가 나왔다. 나도 모르게 끝까지 들었다. 내가 들은 노래방 ‘She’s gone’ 중에서 최고였다. 그 고등학생에겐 결코 She’s gone이 도전이 아니었다. 노래를 마음껏 가지고 놀았다. 원래 노래보다 한 옥타브 올려 애드립을 하기도 했다. 이게… 인간인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소년의 이름은 하현우였다.
그 소년은 자라서 ‘국카스텐’의 보컬이 된다.
처음 국카스텐의 <거울>을 들었을 때, 최면에 걸리는 기분이었다. 처음 나오는 기타 리프는 나를 홀렸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가사도 알쏭달쏭했다. ‘국카스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굳이 찾아볼 정도로 궁금하진 않았다.
벌거벗은 너의 시선은
벌거벗은 내 몸을 보고
차갑게 너는 나를 안고
야속하게도 키스했네
<거울 – 국카스텐>
<이하나의 페퍼민트>에서 그들의 라이브를 처음 봤을 때, 나는 다시 한번 그들에게 사로잡혔다. 자기가 직접 자른 게 분명해 보이는 더벅머리에, 용 그림이 화려하게 박힌 셔츠를 걸친 그들. '저런 옷은 도대체 어디서 구한 걸까?' 싶은 호기심이 스쳤다. 약간 삐뚤어진 입매로 격렬하게 머리를 흔들며 기타를 치는 하현우의 모습은 강렬했다. 공중파 첫 출연임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공중파를 신경 쓰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괴상한 매력이 있는 밴드였다.
TV에서 폭포수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득음했다는 가수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변성기가 이후 늘 ‘고음 불가’였던 나는 그들처럼 득음하고 싶었다. 주위에 폭포수가 있나 찾았지만 없었다. 집, 학교, 학원만을 왔다 갔다 하던 나는 크게 소리칠 공간이 없었다. 아쉬웠다. 폭포수만 있었다면 나도 가수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어느 날 아빠와 차를 타고 가던 중, 아빠가 어디 잠깐 들렀다 온다며 차를 비웠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공간. 완벽한 조건이 갖춰졌다. 득음 찬스였다. 어떤 곡으로 득음을 할까 고민하다가 국카스텐의 <파우스트>를 골랐다. 아무도 없는 차 안에서 내 안의 모든 것을 쏟아내듯 노래했다. 자유와 열정의 순간이었다.
랄랄라 라라 랄랄라 라라 랄랄라 라라라
랄랄라 라라 랄랄라 라라 랄랄라 라라라
<Faust - 국카스텐>
아빠가 보이면 바로 노래를 멈추려 했다. 아빠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덜컥 소리가 났다. 차 뒷문이 열리더니 아빠가 들어왔다. 아빠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뭐 하고 있었냐?”
나는 당황해 대답하지 못했다. 아빠가 물었다.
“노래했냐?”
순간 얼굴이 빨개진 나는 작게 대답했다.
“응.”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깜짝 놀랐네.”
득음은 그렇게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여전히 고음 불가다.
국카스텐의 음악은 결코 대중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주로 라이브 공연을 위주로 활동했다. 하지만 국카스텐의 독보적인 사운드와 폭발적인 무대는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었다. 결국 모두에게 알려졌다. 그 시작은 <나는 가수다>였다. 국카스텐은 <나는 가수다> 공연 전 본인들의 심정을 밝혔다.
“나가수 섭외가 왔는데, 사실 고민도 안 했죠. 모든 멤버가 다 나가자고 했어요. 이 친구는 새벽에 6시까지 잠을 못 잤대요, 심장이 뛰어 가지고. 저희가 별의별 곳에서 공연해 봤거든요. 진짜 안 해본 데가 없는데도 저희를 잘 모르세요. 그래서 우리가 잘 살고있는 게 맞나 의심했어요. <나는 가수다>를 나오면서 그 시절을 모두 보상받은 것 같아요.”
“저희는 진짜 연습을 많이 해요. 어느 정도 연습을 하냐면 몸에 완전히 익혀서 다른 생각을 해도 이게 알아서 그냥 입하고 손에서 나올 정도로 연습을 하기 때문에 무대에서는 거의 몸부림을 쳐요. 나가수는 우리 밴드 인생에서도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락 음악의 소리 하나하나 악기의 연주들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구나, 정말 살아있는 음악이구나 느끼실 수 있게끔 정말 열심히 할게요.”
국카스텐은 <나는 가수다> 첫 무대부터 사람들을 단숨에 사로잡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장희 <한잔의 추억>, 들국화 <행진>, 패닉 <달팽이>, 조용필 <모나리자> 등의 수많은 명곡을 국카스텐의 방식으로 편곡했다. 그들은 무대 위에서 마치 초월적인 존재 같았다. 하현우의 보컬은 사람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밴드의 날카로운 음색과 몽환적인 사운드는 화면 너머까지 전달되었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에게 락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하현우의 솔로 행보는 또 다른 전설을 만들었다. 그는 <복면가왕>에서 가면을 쓰고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우리동네 음악대장'이었다. 그가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모두가 알았다. ‘우리동네 음악대장’은 하현우라는 걸. 사람들은 알면서도 속아줬다. ‘우리동네 음악대장’은 압도적인 실력을 뽐내며 복면가왕 역대 최다 연승을 거둔다. 그의 무대는 매번 화제가 되었다. 엄마도 아빠도, 친구들 모두 다 ‘우리동네 음악대장’을 좋아했다.
아빠는 조용필의 오랜 팬이다. 친구들과 조용필 콘서트 갔던 날,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야광봉을 샀다. 집에 돌아와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조용필의 엄청난 무대를, 관객들의 파도 같은 환호성을 우리에게 오래도록 설명했다. 그랬던 그가 ‘우리동네 음악대장’의 무대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동네 음악대장이 조용필보다 훨씬 잘하는 것 같다.”
이 말을 증명할 책임은 이제 국카스텐에게 있다. 우리 아빠를 배신하지 않길 바란다.
Q: 국카스텐이 생각하는 좋은 음악은 무엇인가요?
A: 좋은 음악이요? 국카스텐의 음악이 좋은 음악입니다.
<EBS 스페이스 공감 인터뷰에서>
<비둘기 추천 국카스텐 플레이 리스트>
1. 거울
2. 붉은 밭
3. Violet wand
4. Faust
5. VITRIOL
6. GAVIAL
7. 꼬리
8. 매니큐어
9. 변신
10. 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