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다. 자신의 경험에 따라 사람들을 분류한다. 좋은 사람, 성실한 사람, 나쁜 사람, 악마같은 사람, 천사 같은 사람. 분류 기준은 나를 대하는 태도, 지식의 정도, 외모, 말투 등 다양하다. 하지만 섣불리 사람을 분류하다보면 잘못된 고정관념에 빠질 수도 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그 사람의 모습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몬드'는 그런 위험을 알려준다.
주인공 '윤재'는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났다. 갓난 아이 때부터 엄마가 어떤 노력을 해도 웃지 않았다. 무섭게 생긴 애꾸 눈 아저씨를 보고도,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것 처럼 노려보는 개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끼지도 못하고, 슬픈 영화를 봐도 눈물 흘리지 않는다. 윤재의 눈 앞에서 할머니와 어미니가 괴한을 만나 칼에 찔렸을 때도, 윤재는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였다. 사회적 도덕규범으로 윤재를 바라본다면, 사람보다는 괴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예쁜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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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어린 괴물이 있다. '곤이'이다. 곤이는 어렸을 때 부모님께 버려졌다. 보육원에서 자라면서 곤이는 더 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커졌다. 그 방향이 잘못되어 곤이는 점점 나쁜 길로 빠지게 되었다.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다고, 모두가 안 좋은 길로 빠지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훌륭하게 자라난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나쁜 길로 들어갈 확률이 보통 사람보다 높은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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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이는 윤재를 처음 만난 날 윤재가 특이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윤재의 변함 없는 무표정을 보고, 윤재의 찡그린 얼굴을 보기 위해 노력한다. 윤재를 때리기도 하고, 욕설을 퍼붓기도 하며 괴롭힌다. 번번히 실패하자 분을 못 참고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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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이는 윤재가 점점 더 궁금해진다. 윤재가 어머님을 대신해서 운영하는 헌 책방을 매일 찾아간다. 대화를 하며 윤재를 알아간다. 둘은 점점 가까워진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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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님이 쓰신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는 책이 있다. 최재천 교수님은 수많은 생물의 아름다운 행동을 소개한다. 동물이나 식물에게도 사람이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 책의 머릿말에서 최재천 교수님은 이렇게 말하신다.
'알면 사랑한다.'
무엇이든지 점점 알아갈수록 사랑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 반대도 성립하지 않을까 싶다.
'사랑하면 알게된다.
곤이와 윤재의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는 말이 아닐까? 곤이와 윤재 두 어린 악마의 마음에도 사랑이라는 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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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는 '도라'라는 여자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곤이에게서 '우정'을 느꼈다면, 도라에게 느낀 감정은 '사랑'이 아닐까 싶다. 도라의 행동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누워서도 도라가 떠오른다.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던 윤재의 심장에도 '우정', '사랑'같은 인간적인 단어가 서서히 비집고 들어간다. 아주 서서히, 물감이 종이에 스며들 듯 윤재는 변하고 있다.
-제가 그 앨 좋아하는 걸까요?
-글쎄, 그건 네 마음만이 알겠지.
-마음이 아니라 머리겠죠, 뭐든 머리의 지시를 따르는 것 뿐이니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린 마음이라고 얘기한단다.
'교육은 최대의 낙관주의'라는 말이 있다.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아이가 결국에는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 그곳에서 교육은 출발해야 한다. 아이의 잘못이 그 아이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잘못뒤에 숨겨져 있는 이면을 살피는 것,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현재의 상태에서 긍적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어야 할 것이다. 윤재가 변했듯, 누구나 조금씩 더 따뜻해질 수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