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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둥산 Oct 08. 2021

7. 암이지만 라면은 먹고 싶어

젊은 암환자의 항암 일기 2


암 환자가 되면 다들 식단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운동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궁금해한다. 채식주의자가 되는 사람도 있고, 유제품과 밀가루 음식을 전면 중단했다는 사람도 보인다. 이 글에서 항암 하는 환자에게 좋은 식단을 읽게 될 거란 기대를 하셨다면 그런 내용은 없음을 초장에 밝힌다.



내가 단번에 끊은 것


암 진단을 받으면 과거의 내 생활을 되짚어보게 된다. 보통은 ‘식’ 생활에 대한 걸 가장 먼저 떠올리고 그것을 그만두는 게 가장 빠르다.


처음 암센터 외래를 가면 초진 질문에 답변 작성을 먼저 요청받는다. 심혈관 등 기저 질환이 있는지, 가족력이 있는지, 흡연자이면 흡연량이 어떠한지, 술은 일주일에 얼마큼 마시는지 같은 것들이다. 기저 질환 없음, 가족력 없음, 흡연은 한 적은 있지만 지금은 태우지 않음, 술은 거의 매일 맥주 한 캔씩이었다.


암 진단 후 하루아침에 끊은 것은 술이다. 고백하건대 암 진단 전의 나는 찐 건어물녀였다. 퇴근 후 집에 오면 바로 씻고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따는 게 자동화된 생활을 했다. 식사를 하기엔 늦은 시간이 되어버려서 건너뛴다. 빈 속을 달래려 과자봉지 하나를 옆에 끼고 멍하니 텔레비전을 응시한다. 안주를 곁들이면 다음날 호빵맨 얼굴이 되어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과자도 없이 빈 속에 맥주만 마시는 날도 빈번했다. 냉장고에는 항상 맥주가 채워져 있었다.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이 되면 그동안 내가 마셔댄 빈 캔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절대 폭음하는 스타일은 아니다.(주량이 낮아서 못한다.) 그냥 매일매일 꾸준히 한 두 캔씩 마셨다. 그래야 고된 하루를 마감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저녁을 보낸 지가 거의 삼사 년 정도 된 것 같다. 남편이 옆에서 나무랐지만 내 유일한 낙이라며 그의 회유를 차단시켰다.


물론 술 때문에 내 암이 초래된 건 아니다. 그랬다면 세상의 모든 애주가들은 암 환자여야 한다. 하지만 매끼 건강한 재료로 정성껏 채식 위주의 식단을 할 자신도 없는 데, 좋은 건 못하더라도 나쁜 건 하지 않는 게 맞다.


우리 집 냉장고 왼쪽 문 칸에 355ml 체코산 맥주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암 진단을 받은 후 어느 날 그 캔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게 한동안 함께 했던 맥주와의 작별을 고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버리진 못했고 얼마 뒤 친동생에게 모두 내어 주었다.



뭐라도 먹어야 하니까 라면이라도


항암은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라온다. 항암제 투여 후 일주일이 제일 힘들고 나머지 두 주 동안은 컨디션이 회복된다. 좌표로 그리자면 v자 형으로 떨어졌다 올라가는 셈이다. 3주 간격이 어찌나 짧게 느껴지는지. 왜 다들 살만하면 다시 항암 하는 날이라는 건지 알 것 같다.  


어떤 증상들이 나타나는지 매일 나를 관찰했다. 나의 경우, 초반엔 근육통이 가장 힘들었다. 그러다 3회부터는 멀미를 하는 듯한 속 울렁거림이 시작됐는데 횟수를 거듭할수록 심해졌다. 시댁에서 고생한다고 이것저것 맛있는 집밥을 해주셨는데 신나서 배불리 먹고는 집에 돌아와 결국 구토를 했다. 그러자 바로 식도염 직행이었다. 집 근처 병원에서 주사와 약 처방을 받으니 좋아졌다. 그 이후로는 토하지 않기 위해 기를 썼다.


항암제 투여 후 특히 2~3일 차에는 숙취와 더불어 심한 차멀미를 하는 것 같아 누워만 있는다. 어지럽고 미열도 난다. 그러다 보니 자꾸 누워서 잠만 자게 됐다. 계속 피곤하고 무기력해진다. 입맛은 저 밑 지하 깊은 곳으로 떨어지고 후각도 예민해지는데 밥 냄새도 역겹게 느껴진다.


쉽게 말해 평소에 잘 먹던 음식에서 다른 맛이 난다. 특히나 신맛이 나는 음식을 못 먹게 되는 것은 신기했다. 항암제 넣기 전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김치찌개인데 이 시기에는 생각도 하기 싫어진다. 이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해내야 한다. 속은 안 좋은데 배는 고픈 걸 보면 뭐라도 먹고 싶은 게 맞다.


이 힘든 일주일 동안 그나마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은 다름 아닌 ‘라면’과 ‘치킨’이었다. 암 환자는 가공 식품과의 작별을 고해야 할 것 같지만 구역질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무엇일지 나 자신과 스무고개 하듯 찾아냈다. 속이 니글니글한데 신맛도 안 나고 밥 냄새도 안나는 것은? 얼큰하게 내 속을 달래기에는 라면이 제격이었다. 불량 환자의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라면을 먹는 순간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 개운할 수 없다. 다른 고기들은 다 안 넘어가는데 고소하고 매콤 달달한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치킨은 넘어가는 것을 어떡한단 말인가. 암 환자 00 먹어도 되나요? 이런 류의 질문은 검색해보지 않았다. 라면은 찬물에 한번 씻고 먹자 그리고 계란을 꼭 같이 넣어 먹자 정도로 합의 봤다.



보양식은 맛집 탐방으로 챙긴다


그렇게 일주일 가량 버텨내어 숙취 같은 속 울렁거림이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잘 먹게 된다. 매끼 영양소가 풍부한 식단을 차려먹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병원에서 영양사 선생님이 가르쳐주었던 것은 명심하고 챙겼다. 계란 한 알, 두부 반 모 정도의 단백질을 매 끼니에 포함시킬 것. 이제까지 영양상태가 안 좋아 항암이 밀리는 일은 생기지 않았으니 나쁜 성적은 아닐 거라 혼자 생각해본다.


항암 일정은 계획대로 되고 있긴 했지만 떨어지는 체력을 조금이라도 올리려 보양식을 먹어야지 싶었다. 한창 더운 여름에 항암을 했기 때문에 집에서 힘들게 닭을 하루 종일 삶아 먹을 순 없었다.


수개월 회사를 휴직하고 있기 때문에 평일엔 시간이 넘쳐났다. 집에만 있는 나를 위해 남편이 종종 차를 태워 콧바람을 쐬게 해 줬다. 항암 때문에 힘든 시간은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이렇게 컨디션이 좋을 때 얼른 놀아둬야 한다. 우리는 코 시국에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하는 게 좋겠다며 교외 맛집과 카페를 주로 찾았다. 이런 곳은 보통 주말에 붐비고 평일엔 한적해서 좋았다.


남양주나 파주 등지로 누룽지 삼계탕, 만두전골, 들깨 전복탕, 장어구이를 먹으러 다녔다. 부모님이 드시면 더 좋아하실 것 같아 시댁 친정 부모님 번갈아 모시고 다니기도 했다. 내 보신뿐만 아니라 부모님 건강도 챙겨드리는 것 같아 아주 뿌듯하다. 한적한 자연 풍경을 볼 수 있는 카페에서 고소한 커피 한잔으로 입가심을 하면 하루가 달콤해진다.


집에서만 있으면 무기력하고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건강해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맛집 탐방을 추천한다. 자연스럽게  듯이 맛있는 보양음식을 찾아다니다 보면 당일치기 여행하는 기분도 든다. 적은 비용으로 고효율의 여행을  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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