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아이의 신호

나에게 장애아이가 없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

교실에서 아이들을 마주하다 보면,

세상이 '금쪽이'라 부르는 아이들을 매일 만납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 뒤에는 아이보다 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서 있는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특수교사로서, 상담가로서 제가 마주한 수많은 부모님은 대부분 비슷한 길을 걷습니다.


처음 아이의 '다름'을 마주했을 때, 부모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단계를 거칩니다.

처음엔 "그럴 리 없다"며 부정하고, 다른 병원과 기관을 전전합니다.

그다음엔 "왜 하필 내 아이에게"라는 생각에 하늘이 원망스럽고 화가 납니다.

그러다 결국 깊은 무력감과 슬픔에 빠지기도 하죠.

교실 창가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들의 뒷모습에서 저는 그 수만 갈래의 감정을 읽습니다.


pexels-shkrabaanthony-6288110.jpg 아이의 다름을 고유함으로 받아들이는 부모

하지만 제가 현장에서 본 '성공한 부모님'들은 조금 달랐습니다.

여기서 성공이란 아이의 장애가 마법처럼 사라진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다름'을 '틀림'이 아닌 '고유함'으로 받아들인 분들입니다.


한 어머니가 기억납니다.

아이가 학교 복도에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던 분이셨죠.

어느 날 그 어머니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이제 이 소리가 비명으로 안 들리고 '엄마, 나 지금 너무 긴장돼요'라는 말로 들리기 시작했어요."


그것이 바로 '수용'의 시작이었습니다.

아이를 금쪽이라는 프레임에 가두지 않고,

그 거친 행동 뒤에 숨은 아이의 절박한 신호를 읽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부모님이 마음의 근육을 키워 아이의 행동에 상처받지 않고 그 신호를 '통역'해 주기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아이의 돌발 행동은 조금씩 잦아들었습니다.

아이는 비로소 자신을 이해해주는 '단단한 어른'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social-support-group-resilience.jpg.jpg 아이가 숨 쉴 수 있는 세상을 일구는 개척자 그것은 바로 부모


제가 현장에서 만난 부모님들 중에는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을 완전히 새로 쓰신 분들이 계십니다.

제 주변에도 아주 심한 자폐 아동을 키우시며,

그 아이를 위해 직접 장애 유치원과 복지관을 설립하신 어머니가 계십니다.

그분은 늘 말씀하십니다. "내 아이가 장애가 아니었다면, 나는 평생 이런 일들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라고요.


아이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그 다름이 필요한 세상을 직접 만들어버리신 것이죠.

제가 아는 사회적 리더들 중에도 의외로 자녀의 장애를 계기로 삶의 방향을 바꾼 분들이 많습니다.

아이의 장애라는 거대한 파도에 잡아먹히는 대신, 그 파도를 타고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신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처음부터 단단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분들도 처음엔 복도 끝에서 소리 없이 우셨고,

아이의 돌발 행동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밤을 보내셨을 겁니다.

하지만 그 고통의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마음 근육'이 되었을 것 입니다.

"아이의 장애를 수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체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가 가진 특별한 신호를 읽어낼 수 있는 유일한 통역사가 되는 일이며,

나아가 그 아이가 숨 쉴 수 있는 세상을 일구는 개척자가 되는 일입니다.


SE-3a6187fd-5332-4269-bc50-d2b8421f80d2.jpg 콘트리트속에 피어난 꽃처럼 아픈 사랑이 세상을 열어줄 것입니다


교사인 제가 지켜본 바로는,

아이의 말문을 여는 것은 화려한 치료 기법이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투박한 신호를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통째로 던져 그 신호에 응답해준 부모님의 단단한 마음이었습니다.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결코 부모의 패배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한 '지도'를 드디어 손에 쥐는 과정입니다.


지금 아이의 행동 때문에 막막한 어두움을 지나고 계신가요?

여러분이 겪는 그 혼란과 슬픔은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통과해야만 하는 '사랑의 증명' 같은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은 지금 평범한 사람들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힘을 키워가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그 아픈 사랑이 결국 아이의 세상을 열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아이의 신호를 언어로 읽어낼 수 있을 때까지,

여러분의 마음 근육이 단단해질 때까지 제가 교실에서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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