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해도 괜찮은 마당, 실패가 경험이 되는 교육

"No Problem", 실수가 환대받는 나라

실수는 실패가 아니라, 아이가 세상을 향해 뻗는 가장 용기 있는 손길입니다.


한국의 아파트 숲에서 살던 시절, 내게 아이의 ‘실수’는 곧 부모인 나의 ‘성적표’였습니다.

아이가 받아쓰기에서 하나를 틀려오거나,

친구 관계에서 서툰 모습을 보일 때면 내 마음엔 커다란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내가 뭘 놓친 걸까?',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하지?' 완벽이라는 좁은 틀에 아이를 맞추려다 보니,

내 손엔 늘 아이의 앞길에 놓인 돌부리를 치우기 위한 빗자루가 들려 있었습니다.


pexels-emma-bauso-1183828-2253880.jpg 물 장난하는 아이들. 그 속에 담긴 것은 교정해야 할 무질서가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아이만의 반짝이는 탐험입니다.


하지만 캐나다의 너른 마당으로 삶의 자리를 옮긴 후,

내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그곳 사람들의 입버릇 같은 한마디,“No Problem!”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친절한 인사치레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만난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닌 그들의 '교육 철학' 그 자체였습니다.

아이가 운동장에서 공을 차다 엉뚱한 곳으로 날려 보내도,

수업 시간에 엉뚱한 대답을 내놓아도 선생님과 부모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웃으며 말했습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게 바로 네가 배우고 있다는 증거야.”


특수교육을 전공하며 책에서 수없이 읽었던 '수용'과 '포용'이라는 단어가,

캐나다의 너른 마당에서는 공기처럼 당연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실수가 '교정해야 할 오답'이었다면,

이곳에서의 실수는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자 '소중한 경험'으로 대접받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학교에서 한 아이가 공들여 만든 작품을 실수로 망가뜨린 적이 있었습니다.

당황해 울먹이는 아이에게 교사는 다가와 나무라는 대신 이렇게 물었습니다.

“자, 이제 이 예상치 못한 모양으로 우리는 어떤 새로운 걸 만들어볼 수 있을까?”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완벽한 부모, 완벽한 교사는 아이의 실수를 막아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실수를 마주했을 때 아이가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그 '실패'를 '데이터'로 전환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길러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pexels-2032083378-29122999.jpg "완벽이라는 좁은 창틀을 벗어나니, 비로소 너른 마당의 햇살이 보였습니다. 부모의 마음이 마당처럼 넓어질 때, 아이는 비로소 넘어지는 법을 배우며 단단해집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아이의 돌부리를 치우느라 전전긍긍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이가 넘어졌을 때 "무릎은 괜찮니? 거기서 무엇을 보았니?"라고 물어줄 수 있는 여유를 배웠습니다.

마당이 넓어지니 비로소 보였습니다.

완벽이라는 감옥의 문을 열고 나오면, 실수조차 배움의 축제가 되는 너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오늘 혹시 아이의 실수에 눈살을 찌푸렸다면, 나 자신과 아이에게 이 말을 건네보면 어떨까요?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우린 지금 아주 잘 배우고 있는 중이니까.”


"실수해도 괜찮은 오늘, 우리는 어제보다 조금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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