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넷, 재투성이 기혼 생활 (1)

어쩌면 이혼. 5

by 은호











사실 너한테 그 동안 말 못한 얘기가 있어.

나한테 연인처럼 지낸 여자가 있어.

근데 걔가 임신을 했대.

나 없으면 죽어버리겠다며 자살 시도까지 해서 나한테 연락이 왔는데 어쩌겠어.

나도 걔가 그렇게 죽어버리면 살 수가 없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우리 이혼하자.



비대면 전화에 이어 대면으로 내게 날려온 남편의 고백인지 자백인지의 핵심은 이게 전부였다. 아이가 있는 집에선 차마 들을 수 없었으므로 차 안에서 남편을 만난 터였다. 고백에 이은 내 짧은 질문까지 포함해도 공유한 시간은 채 20분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따귀를 때린다거나 고함을 지른다거나, 나는 그 무엇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남편의 차에서 내 차로 옮겨타고 집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그러나 바로 집으로 올라갈 자신은 없었다. 감정이 뒤죽박죽 엉켰다. 분노인지 배신감인지 허탈함인지가 엉망으로 얽혀 한 마디도 제대로 못 토해낸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동시에 알았다. 이것을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감정을 가라앉히지 않으면, 집에 올라가 나를 기다리던 아들과 친정 엄마의 얼굴을 본 순간 폭발하여 울고 말 것이라고.


5분을 고민해도 털어놓을 대상이 마땅하지 않았다. 남편을 환불해 갈 사람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숨겨둔 여자ㅡ설명이 다 맞다고 가정한다면 남편 애를 임신하고 자살시도까지 한 가엾고 어리석은 타인ㅡ가 아니라, 남편의 '진짜 가족'이어야 마땅한 것 같았다. 그래서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찍 사별하고 남편과 남편의 형, 두 형제를 어렵게 키운 분이었다. 평소 시어머니에게 악감정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일을 선하게 전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전화를 건 나는 시어머니의 음성에 대고 남편 고백의 요약문을 터지는 눈물과 함께 줄줄 읊었다. 그러자 전화 너머에선 나보다 더 큰 울음이 돌아왔다. 체감상 남편과의 대화보다도 긴 시간동안 울음 섞인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그리고 시어머니는 결론을 내렸다.


엄마가 정말 미안하다.

근데,

네가,

한번만 봐줘라.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고 핸들에 얼굴을 처박았다.














그 후로 2주간이 어떻게 흘렀더라.

한 사흘 쯤은, 그대로 그 여자에게 가지 않고 "사태를 마무리 짓겠다"며 집에 들어온 남편과의 지리한 감정 싸움이 이어졌던 것 같고. 또 한 사흘 쯤은, 남편의 가족들이 그를 설득하려는 시도로 애를 먹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던 것 같고. 나머지 일주일 쯤은 남편과 별거 시작 동시에 합의 이혼 진행을 앞두고 의견을 조율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고. 그렇게 2주 후, 나는 남편과 합의 이혼 서류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양육비는 집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것으로 일시금으로 지불. 아들에 대한 면접 교섭은 희망하지도 않는 것 같은 얼뜬 얼굴을 노려보며 한 달에 두 번을 내가 억지로 적어넣었다. 만 13세 미만의 자녀가 있는 부부에게는 자녀 교육 동영상 시청에 이어 의무적으로 부부 상담까지 권고하고 있었으므로, 낯선 법원의 낯선 상담실 안, 나와 어떤 래포도 없는 낯선 상담자 앞에서 부부의 사정을 40분간 압축하여 설명하고 "아직 되돌릴만한 사이인 것 같으니 이혼을 숙려해 보시기 바랍니다."라는 앞뒤없는 코멘트를 듣고 나와 이혼 서류를 제출했다. 미성년자 자녀가 있으므로 숙려기간은 3개월. 이혼 의사 확인기일은 3개월 후에 잡혔다. 1월에 서류를 내고도 4월 어느 날까지 기다려야만 이혼에 성공한다는 얘기였다. 법원을 나왔을 땐 겨울의 짧은 해가 다 거의 다 넘어가 있었다. 여전히 얼뜬 얼굴로 가정법원 문 밖에 서 있던 남편은 내게 "이제 가면 되나?" 라며 걸음을 옮겼고 나도 그대로 주차해 둔 차를 탔다. 남편 차 꽁무니가 법원 정문 밖을 벗어나는 것을 보고나서야 핸들에 얼굴을 한번 더 처박았다. 집에 있던 남편의 짐은 이혼 서류 작성 하루 전날 다 뺀 터였다. 저대로 저 차는 서울로 향할 것이다. 가엾고 어리석은 그 타인과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어떻게 지지고 어떻게 볶아대며 천지에 깨를 튀기든 말든. 이제 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 될 것이다.


딱 2주였다. 내 이혼은 2021년 1월 새해 벽두에 폭탄 고백으로 시작하여 설이 되기도 전에 초고속으로 결정되었다. 이 스피디한 전개는 사정을 다 전해 들은 나의 친언니가 <완전히 미친놈이구만> 이라는 짧은 소회와 함께 내 등을 떠민 까닭이 가장 컸다. 나는 평소 친정 엄마의 백마디 말보다도 14살 많은 친언니의 한 마디 말을 더 가슴에 꽂고 행동에 옮기는 늦둥이어서, "야 정신 못 차리고 너한테 집도 절도 다 주고 몸만 나간다고 할 때 당장 이혼해.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래." 란 말에 대 큰 공감과 함께 당장 그래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당시 언니의 조언과 내 빠른 이혼 결정은 현명했다고 본다.

그 후의 결정들이 현명하지 않아 문제지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개월, 그 숙려기간이 1월부터 4월까지 멸렬하게 흐르는 동안 내 지인들도 이 이혼의 사정을 차차 알게 되었다. 그러면 꼭 이렇게 물어왔다.


"그렇다고 그 여자랑 살게 그대로 둬? 여자 인적사항 알아내서 소송이라도 해야하지 않겠어?"


안 알아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소송 과정을 알아보고 난 후 내 정신력을 낭비하지 않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소송은 싸움이었고, 나는 공교롭게도 싸움에 소질도 취미도 전혀 없는 지독한 회피형이었다. 이렇게 태어나 요대로 살아오는 내내 누군가와 첨예한 갈등 상황에 놓여본 일이 거의 없었던 내가 어떻게 긴긴 시간 정신력을 소모하며 싸우겠는가. 이긴다고 해서 크게 얻는 것도 없었다. 나는 이미 받을만큼 받고 이혼 진행중인 사람이므로.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남편의 그녀전혀 궁금해하지는다는 점이었다. 내 입장에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도 그냥 딱한 여자일 따름이었다. 내 남편이었던 자가 임신을 시켰고, 남편이 제게 오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버리겠다고 목까지 맸다고? 이것은 이 자체로 형벌이 아닌가? 그렇게 그가 좋으면 그 애 낳고 사는 수밖에. 나는 남편이 없어도 목을 매달 필요는 없는 사람이었다. 이 헤어짐과 영원한 부재가 아쉬운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아들이었다. 그게 유일하게 괴로운 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 안녕을 묻고 기원하는 모두에게 '나'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씩씩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들과 더 잘 살아갈 거라고.


그러나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 홀로인 날까지 씩씩할 수는 없었다. 어떤 날엔 용기가 100이었다가 또 어떤 날엔 용기가 -30000까지 치달았다. 희망과 절망이 하루씩 번갈아 뺨을 치며 정신 못 차리겠지 깔깔대는 것 같았다. 희망이 뺨에 붙는 날엔 인생 2막 즐겁게 살아보자며 5년 후 10년 후의 계획까지 세우고 즐거워했다가 절망이 뺨을 치는 날엔 나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확인이 필요하다며 무슨무슨 판과 무슨무슨 카페에 접속해 기백개가 넘는 이혼 사연을 탐독하며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분노에 같이 분노했다. 그러다가도 불현듯 그들의 사연에 달려들어 훈수니 공감이니를 두고자하는 내가 한심해 핸드폰을 내던지며 절망의 끝을 찍었다.


이 아수라백작 같은 면모는 이혼이 확정되는 확인 기일이 한달 쯤 남자 절정에 달했다. 깊은 새벽까지 잠 못 이루는 날에는 내 조울의 근원과 해결책을 찾으며 홀로 고뇌했다. 과연 내 홀로서기에 대한 용기는 100인지 -30000인지, 양과 음 어느 쪽에 있는 것인지 대략의 평균을 가늠해보다가 결국 인정하기도 했다. 마이너스가 맞다고. 아이를 혼자 키울 용기가 선뜻 나지 않는다고. 그제서야 알았다. 결혼 후 어떤 면으로든 남편을 의지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며 오히려 전혀 의지가 되지 않는 애 아빠인지 애 형인지 모를 인간이라 생각해왔으나, 아이를 키우며 맞닥뜨릴 중요한 순간들ㅡ입학이라거나, 입시라거나, 또 결혼이라거나ㅡ에는 이 사람이 나서서 어떻게든 하겠지, 하는. 아직 닥치지 않은 아이의 미래에 이 사람이 어떻게든 의지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또 알았다. 다가오지 않은 날들을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혼자서는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할것 같다는 나의 밑도 끝도 없는 불안증이, 그 심약함이, 이 망할 결혼이라는 제도에 내 자신을 꾸역꾸역 편입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오늘의 이 사단은 내가 나로서 오롯이 존재하지 못하고 남(자친구 였던 것)에게 내 미래를 의탁하고 싶어했으므로 벌어진 결과였다. 뒤늦은 깨달음이 썼다. 쓰고 참담한 날엔 죄없는 베개에 얼굴을 또 처박고 울었다. 개운하지 않았다. 늘 그랬듯.


그렇게 확인 기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 날 퇴근길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곧 전남편이 될 사람의 전화였다. 자기가 집으로 갈 테니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무슨 이야기냐 물어도 가서 얘기할테니 주말에 아이를 외갓집에 보내고 집에 있으란 말만 반복했다. 3개월의 숙려기간동안 한 달에 두번은 커녕 3개월간 두번 겨우 아이를 만나러 와 1시간도 채 보지 않고 돌아갔던 자가, 굳이 할 말이 있다며 주말에 애는 외갓집 보내고 시간을 내라고 한다고? 그것도 확인 기일이 일주일 남은 시점에?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피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안 좋은 예감은 적중하는 법.

법원 문앞을 나서서 "이제 가면 되나?" 물었던 그 날처럼 얼뜨고 객쩍은 얼굴로 집에 들어선 당시 곧 전남편은, 나와 멀찍이 거리를 둔 채 거실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헛기침을 몇번 했다. 그리고는 내게 제 업적이라도 전달하듯 별안간 홀가분한 얼굴이 되어 입을 열었다.


"걔랑 끝냈어."


내 반응을 확인하는 눈에 내가 어떤 표정으로 답을 되돌려주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어쨌든 당시 곧 전남편은 자기 예상과 다른 내 반응에 당황했는지 부연을 길게 붙이기 시작했다.


"임신했던 애는, 이제 없어. 내가 산부인과 데리고 갔어. 안 가겠다는 걸 때려서 끌고 갔어."


그 말엔 분명히 경악했던 것 같다. 애가 있었는데, 없어졌다고요. 그것도 뭘 어떻게 해서???? 내 경악에 당시 곧 전남편은 앞의 말을 지우듯 손사레를 치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확실히 끝냈다고.


"그래서 어쩌라고?"

"끝냈다니까."

"니가 걔랑 끝낸 거랑 우리가 이혼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있어?"


남편은 눈을 껌뻑이더니 대꾸했다.


"그래 이혼할 거면 해. 근데 애는? 애는 잘 키워야지, 아빠는 필요하잖아."

이토록 저열한 방식으로 이혼을 철회하자고 요청하다니. 정신이 다 아득해졌다. 대답하지 않는 나를 보며 남편은 구구절절 제 입장을 이야기했다. 미안하다고 빌지는 않을 것이라는 둥. 무릎 같은 건 꿇지 않을 거라는 둥. 나도 니가 이해가 안 되는 점이 많다는 둥 하면서. 도대체 내가 상대하고 있는 이게 서른 네 살인지 열 네 살인지 모를 수준이었다. 떠드는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십 수분을 침묵했더니 곧 체념하고 일어섰다. 문을 닫고 나가는 소리까지 신경질이 났다. 현관 문이 닫히자마자 얼굴을 싸쥐고 비명을 질렀다. 모든 것이 끔찍했으나 제일 끔찍한 것은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리는 내 자신이었다.

이혼할 거면 해. 근데 애는?

아빠는 필요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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