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01
2021년 1분기 대한민국 경제의 최대 화두는 ‘LH 사태’로 일컬어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다. 정부는 지난 2월 24일 수도권 주택 공급을 확충하기 위해 광명과 시흥을 3기 신도시로 추가 선정했다. 그로부터 채 열흘도 지나지 않은 지난달 4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는 기자회견을 통해 2018년 4월부터 다수의 LH 직원이 경기 시흥 과림·무지내동의 10개 필지 100억 원 가량을 나눠 매입한 정황을 폭로했다.
매번 그랬다. 정부의 신도시 개발 정책은 부동산 투기 의혹을 달고 살았다. 노태우, 노무현 정권 시절 진행된 1·2기 신도시 때 투기 정황으로 구속된 공직자는 158명에 이른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로부터 내부 징계를 받은 공무원은 ‘아무도’ 없었다. 큰 처벌이 없으니 정보의 불균형을 이용해 크게 한몫 챙기고 사표 내버리면 남는 장사였다. LH 신입 사원이 사내 메신저로 말한 ‘어차피 잘려도 땅 수익이 회사에서 평생 버는 돈보다 많다’라는 발언은 비단 개인의 그릇된 도덕 의식이 아닌 공적 기관이 대체 어디까지 썩어 버렸는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귀결된다. 정치권을 비롯한 국가 수뇌부가 별일 아닌 듯 쉬쉬하며 지금껏 관련 처벌 법률 하나 제정하지 않고 투기를 방관한 대가는 오롯이 국민이 짊어진다.
원망으로 달궈진 화살은 정부로 향했다. 이 지경이 되도록 무엇을 했느냐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핵심 기조는 ‘서민 주거 안정 및 실수요자 보호’다. 문 정부는 재임 4년간 총 24번의 ‘종합부동산대책’을 냈다. 대표적으로 서울 전역과 과천, 세종시를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한 강도 높은 ‘8·2대책’을 통해 다주택자를 견제하며 주택시장 안정화를 꾀했다. 그런데도 집값 상승이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2019년엔 ‘12·16 대책’을 내놓아 고가 아파트의 주택담보대출 금지와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하며 부동산 매매 시장 자체를 냉각시켰다. 작년엔 세입자가 2년 기한의 계약을 연장할 권리를 갖는 ‘임대차 3법’을 개정했다. 세입자가 최소 4년의 거주기간을 보장받는 본 법안으로 인해 임대인은 전세가를 올리게 됐고 이에 부동산 매물은 확연히 줄어들어 매매뿐 아니라 전·월세 가격마저 급등했다.
‘임기 내 연평균 6회의 부동산 대책’의 또 다른 의의는 정부가 ‘그만큼 번번이 실패하셨다는 것’이다. 최근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새 임대차법 시행 이틀 전에 본인 소유 주택의 전세 보증금 1억 2천만 원 가량을 올려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는 국민을 투기꾼으로 여기며 집값 상승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았으나 진정한 투기 세력은 국민 아래 공공성과 공익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공적 기관 내부에 있었다. 국민들은 그동안 쌓여있던 설움을 토해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 앤 써치가 발표한 문 대통령의 3월 넷째 주 국정 지지율은 월초 대비 8.3% 떨어진 34.7%까지 내려갔다.
여권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여당은 당내 인사였던 박원순, 오거돈 전 서울, 부산시장의 사퇴로 인해 실시되는 4·7 보궐선거 계획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당장 내년 예정된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문제다. 비난 여론이 일자 문 정부는 재산 축소 의혹이 불거진 변창흠 전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의를 지난달 12일 수리했고 이어 김상조 전 정책실장까지 사실상 경질하며 정부 핵심 인사에 변화를 줬다. 지난달 31일 이낙연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상임위원장은 한번 더 믿어달라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고 문 대통령 또한 이번 LH 사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했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과일까,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여당의 급한 불 끄기일까.
4년 전, 문 정부는 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국정 농단으로 인해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적폐 타도’를 외치며 청와대에 입성했다. 2021년 현재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각 부처 수장이 물러나는 식의 꼬리 자르기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 여·야를 막론해 사회를 어지럽히는 관료주의 세력을 제대로 청산하고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바로잡는 실질적 개혁만이 희망을 잃은 국민들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만은 문제가 흐지부지되지 않기를. 그저 내 집 마련이 목표인 청년층을 비롯한 국민의 염원을 담아 간곡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