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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숨자 Dec 12. 2022

한심한 것들

 이놈이나 저놈이나  생식기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그놈이 그놈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엄청난 인내심을 가지고 많은 것을 성취한 이들도 본능 앞에서 세상 유치하고 한심한 촌극을 벌인다. 그런 주제에 배설하고 나면 민망한지 촐싹거렸던만큼  근엄한 척을 한다. 가지 가지 한다.


 섹스가 산넘고 물넘을 가치가 있는지 중요한게 아니다. 내가 바로 이 내가 하고 싶고 무엇보다 할 수 있느냐만이 중요하다. 가능성의 씨앗을 발견하면 급작스럽게 토양에 적합하지도 않은 퇴비를 쏟아 붓는데 상대방은 질식할 지경이라 숨도 못 쉬고 벙찔 뿐이다. 그틈을 타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팬티부터 내린다. 본인이 싫다는 사람과 할만큼 저질은 아니지만  상대방이 좋다고 한 적도 없다는 것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깜짝 놀랄만큼 아무 생각이 없는데 특히 상대방의 입장에 대해 전혀 생각이 없다. 삽입이 있었더라도 본인이 배설하지 않았다면 섹스를 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확실한 삽입이 없었던 경우 자기가 성범죄같은 불경스러운 것과 일말의 관계도 없는 신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고 여자는 다를까? 누가 남자보다 여자가 성욕이 적다고 했나? 여자의 욕망을 받아보지 못한 이들의 개소리다. 일단 가고 보는게 사람이고 그건 남자나 여자나 똑같다. 걔가 어떻게 생겼건 어떤 사람이건 그날의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그냥 하고 싶을 수도 있다.  여자가 삘받으면 못할 일이 없다. 이 삘이 어떻게 오느냐? 일단 받아  적어라. 신한 ...


 여자가 좀 더 잘하는 것은 나는 사실 그에게 호감이 있었다며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애초에 좋아할 만한 구석이 없는 남자랑 잔게 민망한 나머지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착즙 기술을 활용해서 호감의 이유를 발명해 낸다. 그렇게 남자한테 농락당한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놀이에 빠져 있는데 남자가 좋다고 붙는 경우 진짜 비극이 시작된다.


 현자타임은 여자도 온다. 특히 마음이 없었는데 파트너가 실력자여서  절정을 느끼고 나면  그가 싫어진다.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의 배설을 기다려줄 만큼 인내심이 충분한 여자도 흔치 않다. 빨리 집에가서 맥주 한캔 따고  발라당 누워서  유튜브나 보고 싶은 것이다. 끝났는데도 좋으면 그건 진짜이므로 작정하고 덤벼서 잡아야 한다.


  슬픈건 보통 남자가 실력자가 아니라는데 있다.  그는 이미 끝났는데  나는 아직 시동도 안 걸렸고 만족스러운 활동이 아니었고 봉사 활동한 것 같고 괜히 속은 것 같고 손해본 것 같은 기분에 우울해진다. 이 자식은 혼자 끝났으면  빨리 집에나 가지 주절주절 아무말을 시작한다.  이새끼가  가야 셀프로라도 마무리를 지을텐데 먹고 튀는 것을 고상한 말로 포장하느라 제딴에는 정신이 없다. 분명 본인이 무슨 말하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최근에 들은 단어  폴리어쩌고를  써먹어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없는 1인극을 해놓고 여자와 같은 무대에서 내려온 것처럼 동지애가 생긴마냥 혼자 친밀감을 느낀다.  이럴때 남자가 한말을 녹음해서 본인이 했던 개소리를 듣게 하고 수치사시켜 버리고 싶지만 또 수치를 알면 그딴 소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열받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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