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기만큼 조직력이 중요한 육아

역할을 나누면 육아 어렵지 않아요

by 말과맘


살다보면 자신에게 더 유리한 분야가 있다. 돈이 많으면 없는 것보다 편리하다. 건강한 것도 마찬가지다. 아이 육아와 교육과 관련하여 두 딸들은 자신들이 조금 더 유리한 조건이었던 것 같다고 여러 번 말한 적이 있다. 우선 영문학과 영어 교육학을 전공한 엄마를 두었다는 것이 영어를 공부가 아닌 생활로 편안하고 재밌게 익힌 것이 행운이라는 말을 두 딸로부터 들었다. 또, 인간의 심리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 강해 대학에서 심리학 부전공을 했고, 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해왔다. 따라서 아이들의 발달 단계별 심리현상과 기타 인간관계에서의 갈등과 화합에 대해 꾸준히 탐구를 해온 것이 육아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 하필이면 이 세상에서 가장 관심이 많고 좋아하는 대상이 어린이였다는 면에서 두 딸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행복한 호기심을 품고 행복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선물과 같이 즐거운 영역으로 기억하는 엄마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것을 이후 엄마들과 수많은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애기라면 질색이라는 분들도 많았다. 아이들은 귀찮다는 분도 있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이 되어 아이를 원망하면서 임신 기간을 힘들게 보낸 분들도 있었다. 아이들의 육아와 교육과 관련된 모든 부분이 노력이 아닌 나 자신의 타고난 관심 영역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는 면에서 나는 그 과정을 감사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 감사하다.



학문이 아닌 인간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심리학 공부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어느 날인가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생겨 심리학을 부전공하게 되었다. 서구의 앞선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이해하게 해주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나의 아픔을 치유해주고 행복을 증진시키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또 사람들이 차이에 대해 인정하면서 차이를 이해하여 갈등을 예방하고 긍정적인 관계를 쌓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 때 생긴 심리학에 대한 매력은 자녀가 성인이 되고 노후를 준비하는 지금까지 단 하루도 식은 적이 없다. 심리학을 전공으로 하고 싶다는 소망을 아직 다 펼치지 못하고 개인적인 관심을 이어오고 있다.


수 십 년을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결혼 생활은 아주 중요한 인간관계다. 나의 마음이 중요하듯 배우자의 심리도 중요하다. 둘의 욕구와 감정과 선호도는 자연적으로 다르다. 부부가 좋은 팀웍을 내는 데도 틈틈이 배워둔 심리학 덕을 보았다. 심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관점을 객관적으로 가짐으로서 대화가 감정에 따라 엉키지 않게 차분함을 늘려주었다. 관계에서의 긍정성은 더 늘리고, 부정성은 예방하거나 줄이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심리학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나의 결혼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후회할 구석이 많았을 것이다. 심리학을 전공할 필요까지는 없다. 다만 결혼과 자녀 교육을 시작했다면 관계와 심리에 대한 책을 꾸준히 읽는데 시간을 들인다면 시간 낭비는 절대로 아닐 것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자식 농사 내 맘대로 안 된다고 하지 않는가. 엘리트 부모 아래서 자녀가 꼭 엘리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부모가 배움이 적어도 자녀들이 공부에 재능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아이의 교육의 성공 열쇠는 단순히 IQ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양한 요소가 배합되어 결과를 내는 것이다. 하지만 단 하나 없어서는 안될 요소는 내적동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즉,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으면 특히 사춘기에 공부를 손에서 놓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관계의 불편함은 상호 존중을 깨뜨리기 때문에 부모가 하라는 것에 대한 충성도가 깨진다.


사춘기에 아이의 주도성을 잘 보호해주지 못하면 아이의 공부 정서가 망가져 공부를 게을리 하게 될 위험이 커진다. 발달 심리학에서 인생의 단계별로 어떤 특성과 위험이 있는지를 미리 학습해두었던 것이, 자녀와의 관계에서 갈등의 위험 회피에 큰 도움이 되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녀라도 말과 행동에 따라 관계를 해칠 수 있는 뇌관이 곳곳에 숨어있다. 어떤 말이 어떤 정서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마음의 공식을 미리 터득하지 못하면, 실전 육아에서 아이가 부모의 기대와는 영 딴 선을 탈 수도 있기 때문에 부모로서 마음에 대해 아는 것은 무척 힘이 된다.



상황에 맞는 역할 분담이 중요


어려서부터 아기들이 신기하여 관찰하는 일이 즐거웠었다. 그러다보니 아기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며 그들이 좋아하는 몸짓과 말을 몸으로 익혔었다. 아이들과 놀아 보았던 이력이 실제로 내 아이들을 키우는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좋았다. 그래서 아이들 교육에서 내가 주도하여 코칭할 수 있었다. 앞으로 뚫고 나아가는 공격수이기도 했다. 남편은 뒤에서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수비수 역할을 맡았다. 어려움이 생기면 감독처럼 같이 상의를 했다.


맞벌이 부부의 손발이 닿지 않는 곳엔 경험 많고 발이 빠른 미드필더로 베이비시터인 '이모님'을 배치했다. 육아처럼 중대한 장기 프로젝트에서는 개인기만이 아니라 팀웍이 중요하다. 베이비시터를 맞이할 때 가사일 실력보다는 아이를 정말 좋아하는 분을 모시겠다고 생각했다. '이모님'은 우리 부부가 낮 동안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육아에서 완벽 수비를 해주셨다. 이렇게 세 명의 어른이 힘을 합쳐 아이들의 건강과 재미를 채워주기 위해 손발을 잘 맞췄다. 셋이서 팀웍이 꽤 좋았다. 일과 가정을 조화롭게 지탱하기 위해 베이비시터는 꼭 쓰겠다는 계획은 신혼초에 남편과 상의해 두었다. 일에서도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 동생 만들어 주세요!"


할머니와 놀던 아이가 어느 날 내게 말했다. 그 무렵 아이에게 매일 그림책을 재미 있게 읽어주고 있었다. 그림책을 펼쳐놓고 아이에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냈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이야기에 끌리다지 않는가. 같은 그림책을 다시 읽을 때 조금씩 이야기를 변경해서 읽어주면 아이의 눈에서는 레이저가 품어지는 것처럼 집중한다. 엄마가 뱉는 말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할 테지만, 스스로 무슨 상상을 하는지 나도 다는 알 수 없다. 아이의 눈동자는 그림책의 여기저기를 누비며 늘 무언가를 관찰했다. 무서운 그림에서는 눈동자가 커졌고, 재밌는 곳에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들썩거렸다.


아동 전문가에 따르면, 그림책은 아이의 정서 발달에 무척 좋다고 한다. 말과 그림 사이의 연관성을 배울 수 있다. 아이의 인지 발달 수준에 맞추어 많은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일상에서 아이와 나누던 단어를 활용하여 최대한 아이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해본다. 아이의 반응은 눈빛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반복되는 소리, 된소리와 센소리, 억양을 강조하면 아이들은 대체로 까르르 웃게 되어 있다. 웃으며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아이가 그것을 즐거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랑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늘 즐거울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첫 단계를 쌓고 있는 것이다.


두 딸들은 맘에 드는 그림책을 골라 들고는 내 무릎에 앉아 읽어달라고 했다. 큰 아이가 동생을 만들어 달라고 할 즈음, 동생이 태어나서 온 가족이 더욱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들을 읽어주던 참이었다. 동생을 기다리고 낳아달라고 말한다는 것은 동생을 거부하기보다는 반기는 분위기를 만든다. 즉 동생을 적이 아닌 친구로 받아드릴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였다. 동생을 낳아달라는 말을 듣고 얼마 후 오래지 않아 정말 동생이 생겼다.



동생을 기다리는 언니


둘째 임신과 출산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큰 아이와 함께 즐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신 출산 백과>라는 두툼한 책을 보며 다가올 단계를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 그 책에는 태아의 단계별 사진과 발달 과정 및 특징이 빼곡이 실려 있었다. 큰 아이는 이 책을 그림책 삼아 뱃속의 동생이 얼마나 컸는지, 지금은 무얼 하고 있는지를 매일 물었다. 태아 그림에 시선을 고정한 아이에게 다소 과장스런 의성어와 제스처까지 동원해서 동생이 무얼하고 있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아이는 내 배를 만지며 동생의 모습을 상상했다. 한 번은 태아가 1.5kg 정도라고 책에 적혀 있었다. 태아의 크기와 몸무게가 얼만큼인지 설명하고 싶었다. 평소 아이가 가지고 놀던 콩을 가져와서 1.5kg 정도의 꾸러미로 만들어 뱃속에 동생의 몸무게가 이 콩만큼이라고 말해 주었다. 이렇게 대화를 하면서 아이는 킬로그램이라는 용어도 익숙해진다. 정확하게 1kg이 얼마인지는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동생이 뱃속에서 매일 계속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아이 수준에서 이해해 나가고 있을 것이다. 엄마랑 나누는 모든 대화와 활동이 아이에겐 놀이이자 학습이었다. 주말에 아이와 이렇게 계속 대화를 하고 나면 저녁이 되면 목이 깔깔하게 쉬어 있곤 했다. 아이의 성장 과정에 관심이 많아 내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과정이었지만, 그 과정이 아이에게 참으로 중요한 시기였음을 그 때가 지금이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동생 이름을 뭐라고 지어줄까?"


큰 아이의 태명은 '꼬맹이'라고 지었었다. 동생의 태명은 "복덩이"로 하자고 했더니 좋다고 했다. 큰 아이는 뱃속에 있는 '복덩이'를 매일 상상하며 동생이 빨리 나오면 좋겠다고 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0-3세이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심리적으로 안정된 삶을 사는 데 가장 중요한 시기를 0~3세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말의 중요성이 절실하게 생각되기 때문에 학교 교육에서 육아와 교육에 대한 단계별 중요성을 꼭 가르쳤으면 하는 바램이 생길 정도다.


이 시기에 큰 아이와 작은 아이 모두 많은 스킨십을 했다. 자주 안아주고 뽀뽀하고, 팔다리를 주무르고, 볼을 비비고, 배에다 얼굴을 묻기도 하고, 팔에 바람을 불어 방구 소리를 내기도 하고... 온갖 손놀이와 신체 놀이를 많이 해주었다. 놀이 속에 아이는 늘 종알 종알 뭔가를 말했고, 나도 아이가 된 듯 아이 말에 맞짱구를 쳤다.

숫자에 대한 느낌을 알려주는 과정 중에는 계단놀이를 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대신 숫자 놀이를 하며 계단을 오르내렸다. 그게 얼마나 재밌던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지만 손을 잡고 계단으로 가자는 요구를 들어주곤 했다. 16층을 걸어서 오르내리며 "일, 이, 삼, 사, 오, 육 ...구십구, 백!...".을 세는 ‘공연‘을 수백번은 했던 것 같다.


둘째 아이 출산을 100일쯤 앞두었던 시기였다. 아이와 서점을 갔다가 1에서 100까지 숫자가 적힌 커다란 포스터를 샀다. 거실 벽에 아이와 키높이를 맞추어 붙였다. 스카치 테이프에 동그라미 모양을 만들어서 숫자 100에 붙였다. 그리고 ‘복덩이’ 동생이 몇 밤을 자면 우리에게 오는지를 세어보자며 매일 숫자를 카운트다운 해나갔다.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거실 벽에 숫자판으로 달려갔다. 조막만한 손으로 동그라미 테이프를 떼어서 1이 낮아진 바로 옆 숫자로 옮겨 붙였다. 100일, 99일.....90일, 80일, 70일... 내려왔다. 20일을 지나 19, 18, 17.... 이렇게 매일 내려오던 어느 날 아이는 내게 19를 '일십구'로 읽어야지 왜 '십구'라고 읽느냐고 물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지만, 최대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했다.


"ㅇㅇ아 우리 집이 일십육 층에 있어 십육 층에 있어?"

"십육 층이요."

"그렇지? 10부터 19까지는 우리가 맨날 맨날 말하니까 더 쉽게 말하고 싶어. 그래서 '일'자를 빼기로 약속한 거야. 그래서 십일, 십이... 십육...십구라고 말하는 게 편해. '일십구'라고 해도 돼. 근데, 엄마는 '십구'가 더 편해. 그래서 십육 층이라고 말하는 거야."

설명에 정답은 없다. 그저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아이가 납득하는 표정을 지을 때까지 아이가 아는 말을 최대한 사용하여 설명했다.



동생과 경쟁이 아니라 놀이 친구가 되게 하기


"작은 애가 태어나면 모두의 관심이 애기한테 쏠리잖아. 그 때 큰 아이는 갑자기 부모를 빼앗긴 기분이 들 수가 있대. 그래서 가족들이 의식적으로 큰 아이에게 관심을 줘야 심리적으로 안정을 얻을 수 있대. 그러면 동생을 미워하거나 공격하지 않고 잘 돌보려고 한대. 우리가 저녁에 퇴근하면 나는 애기랑 먼저 좀 놀 테니까, 당신은 큰 애랑 먼저 놀아 줘. 그리고 나서 서로 자리를 바꿔서 놀아주는 식으로...."


이모님께도 이 부분을 잘 설명해드렸더니 그거 좋은 생각이라고 하셨다. 작은 원칙이지만 가족이 모두 두 아이에게 공평하게 나눠줌으로써 큰 아이가 동생이 태어나도 여전히 자신은 소중한 존재라는 생각에 의문을 품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언니와 동생은 라이벌이 아니라 늘 같은 팀이라는 좋은 느낌을 갖는데 도움이 되었다. 어느 날 친정 엄마가 두 딸을 보고 물으셨다.


"너희들은 싸워본 적이 있니?"

"글쎄요. 기억나는 게 없는 거는 없는데, 엄마, 저희 싸운 적이 있어요?"


둘이 같이 있어야 더 재미있는 걸 각자 잘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서로 다투는 데는 어른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둘 사이에 미묘한 경쟁의식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말습관의 결과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서로의 경쟁을 유발시키는 대화는 이렇다.


"우리 애기들 누가 누가 빨리 밥먹나 보자!"

"언니는 벌써 10개나 풀었네. 민지도 얼른 언니 따라잡자."

"동규도 열심히 하면 형처럼 잘할 수 있어.“

“사촌 형 봐봐. 엄마 말 잘 듣고 얼마나 착해.”


어른들에겐 그저 듣기 좋은 말이지만 듣는 아이로서는 비교되는 대상과 경쟁심이 생긴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되시는 분은 아이의 입장에서 이 말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와 아빠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은 본능이다. 아주 작은 것에서라도 둘 사이를 비교하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아야 우애에 금이 가지 않는다.


딸들은 서로가 있어야 놀이가 더 즐거워지는 놀이 동무였다. 둘은 모든 놀잇감을 공유했다. 언니가 그림을 그리면 동생도 그렸다. 언니가 보는 책은 동생도 보았다. 그렇다 보니 둘 사이에는 공통의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아주 구체적인 것까지 공감하고 공유를 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자신의 재미를 위해 상대가 필요한 윈윈 관계였다.


작은 아이가 5학년이던 시절 과학 영재원 면접에 갔었다. 면접관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둘째는 언니라고 대답했다. 면접에 참여하신 교수님들은 웃으시며 왜 언니를 가장 존경하느냐고 물어보셨다. 그 이야기를 듣는 엄마로서도 무척 뿌듯했었다. 나도 그런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적 꿍짝이 잘 맞는 가족의 조직력 덕분에 개인기가 출중하지 못한 부분도 메꿀 수 있어서 좋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었다.



둘째 임신과 출산 과정을 처름부터 끝까지 큰 아이와 함께 즐겼다. <임신 출산 백과>라는 두툼한 책에 태아의 단계별 사진이 많이 실려 있었다. 큰 아이는 이 책을 그림책 삼아 뱃속의 동생이 얼마나 컸는지, 지금쯤 무얼 하고 있는지 매일 물었다. 태아 그림에 시선을 고정한 아이에게 다소 과장스런 의성어와 제스처까지 동원해서 설명하면 큰 아이는 웃으며 좋아했다. 예컨대, 태아가 1.5kg 정도라고 책에 적혀 있는 페이지에서는, 평소 아이가 가지고 놀던 콩을 1.5kg짜리의 꾸러미로 만들어 뱃속에 동생의 몸무게가 콩만큼이라고 들어보게 하기도 했다. 동생이 뱃속에서 계속 자라고 있음을 점점 이해해 나갔다. 엄마랑 나누는 모든 대화와 활동이 큰 아이에겐 놀이이자 학습이었다.


"동생 이름을 뭐라고 지어줄까?"


큰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태명은 '꼬맹이' 였다고 알려주고, 동생의 태명은 "복덩이"로 하자고 했다. 뱃속에 있는 '복덩이'를 매일 만져보고 상상하며 동생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심리적으로 안정을 얻고, 두뇌 세포의 연결을 촉진시키는데 가장 중요한 시기를 0~3세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손놀이와 신체 놀이를 많이 해주었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를 타는 숫자 놀이를 하고 싶어 대신 계단을 오르내리기를 좋아했다. 16층을 걸어서 오르내리며 "일, 이, 삼, 사, 오 ...백!...". 를 수백 번은 했다. 둘째 아이 출산을 100일쯤 앞두고, 서점에서 1에서 100까지 적힌 숫자 포스터를 사서 거실 벽에 붙였다. 스카치 테이프로 동그라미 모양을 만들어서 숫자 100에 붙였다. 그리고 매일 숫자를 카운트다운 해나가기로 했다. 큰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벽에 붙은 숫자판으로 달려가 조막만한 손으로 동그라미 테이프를 떼어 1이 낮아진 숫자로 옮겨 붙이기를 했었다. 90일, 80일, 70일... 내려오다가 20일이 남았다. 또, 19, 18, 17.... 이렇게 매일 내려오던 어느 날 큰 아이는 내게 19를 '일십구'로 읽어야 하는데 왜 엄마는 '십구'라고 하는지를 물었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지만, 최대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을 했다.


"ㅇㅇ아 우리 집이 일십육 층에 있어 십육층에 있어?"

"십육층이요."

"그래, 맞아. 10부터 19까지는 우리가 너무 많이 말하니까 더 쉽게 하려고 '일'자를 빼기로 한거야. 그래서 십일, 십이... 십육...십구라고 하기로 약속한거지. '일십구'라고 해도 맞는데 엄하는 '십구'가 더 편해."


정답이 아니더라도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아이가 납득하는 표정을 지을 때까지 설명했다.





"작은 아이가 태어나면 모든 관심이 애기한테 쏠리잖아. 그 때 큰 아이는 갑자기 부모를 빼앗긴 기분이 들 수 있대. 의식적으로 큰 아이에게 관심을 주는 노력을 해야 동생을 미워하거나 공격하지 않는대. 퇴근하면 나는 애기를 먼저 챙겨야 하니까, 당신은 큰 애랑 같이 놀아줘. 그러고 나서 서로 자리를 바꾸는 거로."


이모님께도 이 부분을 잘 설명해드렸는데 좋은 생각이라고 하셨다. 작은 원칙이지만 일을 하는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두 아이에게 공평하게 나눠줌으로써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방법이었다. 둘은 라이벌이 아니라 같은팀이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데 좋은 역할을 했다. 어느 날 두 딸을 보고 친정엄마가 물으셨다.


"너희들 싸워본 적이 있니?"

"어, 글쎄요. 기억나는 게 없는 거 보면 안 싸운 거 같아요. 엄마, 저희 싸운 적 있어요?"


딸들은 둘이 같이 있어야 더 재미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서로 다투는 것은 의식하지 못하게 둘 사이에 경쟁의식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무의식 중에 경쟁을 유발시키는 대화가 있다.


"우리 애기들 누가 누가 빨리 밥먹나 시합하자. 시작!"

"언니는 벌써 10개를 풀었네. 민지도 얼른 언니 따라잡자."

"ㅇㅇ도 열심히 하면 형처럼 잘할 수 있어."


좋은 의도의 말이지만 아이들에게 이런 대화는 경쟁을 낳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엄마와 아빠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본능에 따라 둘 사이에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다. 둘 사이를 비교하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둘이 서로 즐거운 놀이 파트너가 되었다. 둘이 항상 같은 놀잇감으로 놀았고, 언니가 그림을 그리면 동생도 그렸다. 언니가 보는 책은 동생도 보려고 했다. 둘은 공통의 이야깃거리가 많았고 서로 재미를 위해 필요한 사이가 됐다. 윈윈 관계였다.


시간이 흘러 작은 아이가 5학년이던 시절 대학 과학영재원 면접을 다녀왔다. 면접관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고 했다. 둘째는 언니라고 대답했다. 면접관 교수님들은 웃으시며 왜 언니를 존경하느냐고 물어보셨다고 했다. 언니를 존경하는 동생이라.... 듣기만 해도 뿌듯했다. 나도 그런 언니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비교적 꿍짝이 잘맞는 가족의 조직력 덕분에 개인기가 부족한 팀원들끼리 그럭저럭 괜찮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었다.

keyword
이전 04화아이를 세상으로 초대한 건 부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