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세상으로 초대한 건 부모다

부모 준비

by 말과맘


출산에 앞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아기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동등한 권리를 가지므로 장애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는 정도의 수준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태어날 아이가 건강하길 바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선천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날 확률이 결코 낮지 않았다. 태아의 장애 감지 기술이 발달했다지만, 여전히 신생아 20명 중 한 명 꼴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다. 산모 수첩에 나온대로 산부인과에서 초음파, 피검사, 기형아 검사를 다 마쳤지만 여전히 걱정은 가시지 않았다. 만약 그런 어려운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아이의 탄생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진심으로 축복하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에게 선택권이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음 수련이 필요한 과정이었다.


1999년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오체불만족>이라는 책을 사서 읽었다. 선천적 사지 절단증으로 팔다리가 다 없는 심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오토다케가 가족과 학교, 사회의 관심으로 장애를 딛고 비장애인과 어울리며 적극적인 삶을 살아내는 실화였다. 읽는 내내 마음이 뭉클했고 눈시울이 뜨거웠다. 만에 하나 장애를 가진 아기가 태어난다면 꼭 그렇게 따르고 싶은 든든한 롤모델을 만난 셈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뒤 장애에 대한 불안이 확연히 줄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지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그 때 처음으로 가슴으로 받아들였다. 건물이나 도로 설계 시 장애인의 이동 편의를 더 많이 배려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장애를 가진 사람이 이동하려면 전적으로 가족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앞의 작은 턱 하나에도 장애를 가진 사람의 이동은 막혀버리게 되니 이동을 도와주는 일손이 필수가 된다. 그렇게 장애우를 돌보는 가족은 경제활동을 할 때 큰 제약을 받게 된다. 따라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증가한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 인식이 아직 낮은 수준이라 주변의 무시와 편견 속에 시달릴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아이가 부모를 신처럼 의지하는 것은 본능이다. 어떤 상황이 발행하더라도 나로 인해 태어난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길 바랐다. 그러려면 엄마인 나부터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다. 아이도 부모의 자세를 닮는다는 것을 오토다케의 삶을 통해 깊이 깨달았다. 어떠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계속 걱정만 하는 대신 긍정하겠다고 다짐하니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평생 직장에서 일하며 살고 싶다는 나의 일방적인 다짐에 조금의 변수를 고려하는 유연성을 장착한 계기가 되었다. 아이가 건강하든 장애가 있는 아이를 이 세상에 초대한 쪽은 부모이기 때문이다.



산후 우울증 예방하기


산모들이 겪는 또 한 가지 어려움으로 산후 우울증이 있다. 산모의 75% 이상이 일시적으로 산후 우울증을 겪는다고 <임신출산백과>에 적혀있었다. 그 이유는 일시적 호르몬 이상, 원치 않는 임신, 경제적 또는 심리적 준비 부족, 가족이나 배우자의 무관심이나 지지 부족, 산모의 체형 변형 등 다양했다. 또, 아기가 태어났을 때 모습이 인형처럼 예쁘고 깔끔할 것이라 기대하지 말라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현실을 모르고 한껏 기대했다가 쭈굴쭈굴하고 붉은 피부에 태반과 양수가 범벅이 된 아기의 첫 모습을 보고 실망하여 우울감에 빠지는 산모도 있다고 했다. 책을 읽고 나서 신생아에 대한 기대도 최대한 낮추었다. 장애가 있을 수도 있으며, 겉모습이 쪼글쪼글한 유인원처럼 생겼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진심으로 기쁘게 아기를 맞이할 마음 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출산일을 12일 앞두고 첫 아이가 태어났다. 출산의 공포를 잊기 위해 <임신출산백과>에서 조언한 것처럼 예쁜 꽃이 피어나는 상상을 기도처럼 무한 반복했다. 아주 수월한 출산이었다.


"축하합니다. 23시 42분. 3.0kg 건강한 여아입니다."

"오오오. 너 너~무 귀엽게 생겼다."


마음을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아이를 반기려는 생각 덕분일까. 사지가 건강하게 움직이는 귀여운 아기를 보고는 감사함과 기쁨이 몰려들었다. 쪼글거리는 유인원은커녕 남편을 닮은 것으로 보이는 '귀요미'가 간호사의 품에 안겨있었다.



베이비 시터 구하기


출산은 곧 육아의 시작이었다. 출산 휴가가 끝나고 직장에 복귀하려면 믿을만한 베이비시터가 필요했다. 육아도우미 서비스는 여성의 사회활동을 돕는 업무이니 어쩌면 국가에서 뭔가 제공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최근 출산한 산모입니다. 혹시 동사무소에서 베이비시터 알선 업무 같은 걸 하시나요?''

"아, 동사무소에서 그런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50대 후반의 여자분이 계세요. 오랫동안 애기 돌보는 일을 하셨다는데 바로 얼마 전에 그만두셨대요. 어제 마침 그분이 여기 오셨다 가셨어요. 개인적으로 그분을 연결해 드릴까요? 애기를 아주 예뻐하시는 것 같아요.”

"아 네. 그럼 제가 그분을 먼저 만나 뵐 수 있을까요?"


개인적이라지만 왠지 신원이 확실한 듯한 믿음이 들었다. 경험도 있고 아이를 좋아하는 베이비시터를 만나는 일은 일하는 엄마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하다. 결코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당시는 IMF 시기였고 집도 없었고 되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그러나 나는 평생 일을 하고 싶었다. 자녀 출산으로 적극적으로 일하는 자세를 늦추고 싶지 않았던 거다. 전화 통화를 한 바로 다음 날 그분을 만났다. 10년 이상 한 집에서 두 아이를 키우신 베테랑 베이비시터셨다. '이모님'과 우리는 그렇게 인연이 되었다. 이모님은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날까지 7년간 우리 집에서 두 딸을 돌보셨다.



맞벌이 부부의 귀가후 가사 분담


우리 부부가 저녁에 귀가하면 '이모님'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낮에 아이들이랑 노래하고 춤추고 그림을 그리고 만들고 산책하고 … 무척 바쁘 하루를 보내시고 지치신 상태였다. 딸들은 '할머니'와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일이 얼마나 재밌던지 매일 아침 엄마 아빠가 출근할 때도 벙글 벙글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분리불안이 생기지 않아 다행이었다. 가족과 만날 때와 헤어질 때 모두 울지 않고 산뜻하게 인사하며 웃어주었다. 가족도 아닌데 이렇게 믿고 맡길 수 있는 분을 만난 것이 큰 복이라 생각하며, '이모님'에게 예의를 다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 해도 '이모님'도 저녁 휴식은 필요했다. 저녁이 되면 지치신 이모님을 대신하여 우리 부부는 아이들과 놀아주며 집안일을 마무리했다.


"당신은 회사에서 일하고 오는데 힘들지도 않아? 좀 쉬어야지."

"어, 난 이게 충전이야! 너무 보고 싶었은데 하루 종일 못봤잖아. 이렇게 놀아야 내일 사용할 에너지가 생겨. 아이는 일곱 살까지 효도하는 거래. 더 자라서 힘들게 할 때마다 그 예뻤던 기억을 꺼내서 힘을 내는 거라더라고. 당신도 나처럼 미리미리 좋은 추억을 쌓아 둬. 나중에 기억나는 게 없으면 후회되잖아.”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행복한 일을 안 하는 사람만 손해지 뭐."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도 참다가 저녁에야 만나니, 저녁이면 피곤한 줄도 모르고 신나게 아이들과 놀면서 엔돌핀을 얻었다. 아이들과 노는 건 결혼 전부터도 좋아하던 일이었다. 퇴근 후 아이와 재밌게 노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가사일에 빈구석이 생긴다는 뜻이다. 모든 것을 좋아하거나 잘하는 사람은 없다. 혼자 감당하려고 끙끙거리다가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짜증을 내거나 쓰러질 것 같았다. 여성의 모성만 자연스러운게 아니라 믿었다. 유교 문화 속에 꽁꽁 숨겨진 부성을 끌어내야 했다. 긴긴 희생으로 가슴에 '한'을 쌓고 싶지 않았다. 분업이 필요했다.


"저녁에 집에 오면 집안일도 해야 하고 아이랑 놀기도 해야잖아. 난 두 가지 다는 못하겠어. 체력도 한계가 있고. 내가 잘하는 일이면서 놓치고 싶지도 않은 일은 아이랑 신나게 노는 거야. 당신이랑 일을 나누지 않으면 하나도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어...."

"......"


남편의 침묵은 주로 긍정이었다. 그날 집에 도착한 남편은 말없이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했다. 이모님은 방에 들어가셔서 내일 '업무'를 위한 휴식을 하셨다. 나는 남편에게 미안함 없이, 아이와 낮에 놀아주지 못한 놀이 시간을 채웠다. 두 딸들이 자기 친구들이 생기기 전까지 내가 아예 아이가 된다는 자세로 유치하게 깔깔 거리며 놀았다. 놀아주었다기 보다는 논 것 같이. 아이들과 최대한 몸을 함께 움직이며 많이 안아주었다. 남편이 맡아서 하는 일은 내가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아도 만족감을 느끼는 습관을 들였다.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들이 부모와 살갗을 맞대고 놀고 싶을만큼 같이 놀아주는 것이었다. 다행히 딸들은 엄마와 아빠를 보면 두 팔을 뻗고 달려와서 안아주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육아는 하루 이틀에 끝나는 일이 아니다. 몸이 방전될 때까지 나를 밀어붙이지 않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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