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안 좋아한다더니

진흙에서 진주 찾기

by 말과맘


두 딸을 키우면서 주변에서 자주 들었던 질문중 하나는 "아이들이 학원을 안 다니고 어떻게 공부를 잘하는가?“였다.


나는 결혼에서 희생을 미덕으로 삼으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부모라는 거룩한 역할에 최선을 다하되 혼자서 끙끙거리며 ‘아빠의 무관심’을 당연시 할 마음은 없었다. 신혼 초부터 이미 남편은 누가 주부랄 것 없이 가사를 적절히 분담하고 있었다. 직장 일을 하면서 가사 노동까지 다 잘하려고 애쓰는 대신 SOS를 청하면 기꺼이 분담해줄 내 편이 있었기 때문에 몸에 과부하가 걸리면 즉각 내려놓을 수가 있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속속들이 예측하지는 못했지만, 결혼 전부터 남편과 나눈 질문과 답변을 통해 육아와 교육의 방향을 정해둔 것은 참으로 잘 한 일이었다. 미래를 계획하는 것을 즐기는 나로서는 결혼 전부터 앞으로 결혼 생활이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한 의문과 걱정이 컸다. 육아를 앞둔 예비부부와 예비부모라면 나의 사적인 에피소드를 계기로 ‘우리 부부는 어떻게 하지?’라는 질문에 둘이 함께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길 바란다.




1997년 공기업에 입사하여 국제협력팀에 배정받았다. 입사 동기들의 평균 나이보다 많은 내가 합격한 이유는 전공인 영어의 힘이 컸다고 나중에 들었다. 인정받는 영역이 있다고 하니 그 영역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내적 동기가 더 커졌다. 신입사원 시절에 외국에서 손님이 오거나 국제회의를 개최할 때 임원실에 들락거리며 회의를 참석하고 동행 통역을 했기 때문에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늘 있었다. 옆 사람을 곁눈질할 틈도 없이 긴장한 상태로 종일 일을 생각했다.


“미향 씨, 내가 좋은 사람 소개하고 싶은데 한 번 만나 볼래요?”

“아, 아뇨. 관심 없는데요. 소개팅 같은 거 안 좋아해서....”


보안이 지금처럼 잘 되지 않는 빌딩엔 외부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 뚫어져라 모니터를 쳐다보는 데 파티션 위로 빼꼼히 얼굴을 들이밀고 화사하게 웃는 그. 그는 내 책상에 ‘S생명 김영희‘라는 명함과 사탕을 건넸다. 공짜로 받은 사탕이 여러 번 이어지니 그와 나는 마치 회사 동료인 듯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만날 때마다 소개팅 얘기를 꺼내는 그에게 얼굴엔 미소를 지었으나, 속으로는 ‘내가 만날 사람은 내가 정해야지 촌스럽게 소개팅은...‘라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은 마음 한쪽에 있었지만 다른 한쪽에 두려움이 있었다. 하루가 멀다고 싸우시던 부모님을 오랫동안 지켜봤던 탓이었다. ‘나는 부모님과 다른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지.’ 그것이 두려웠다. 게다가 내겐 결혼과 관련하여 엄청난 핸디캡이 있었으니, 이른바 음식에 똥손이라는 거였다. 믹스 커피 한 잔을 타겠다고 선뜻 말해놓고도 ‘물을 먼저 넣나? 믹스를 먼저 붓나?’를 매번 고민했다. 그럴 때는 수치심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음식 콤플렉스를 거의 다 해소한 지금까지도 누군가가 “아이구, 갑작스럽게 차릴 것도 없네.”이러면서 냉장고에서 주섬주섬 재료를 내어 음식을 뚝딱 차려 내는 것을 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탄성이 절로 올라온다.


‘우와, 멋지다. 부럽군!'


1997년 8월 22일 금요일. S생명 그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소개팅을 하는 날이었다. 공황장애처럼 가슴을 조여오던 신입사원의 긴장감이 입사한 지 6개월이 지나니 많이 해소되었다. 이젠 부서 선임이나 동기들과 소리 내어 대화도 하고 우스갯소리를 나눌 여유가 생겼다. ‘나는 과연 결혼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안정적인 직장도 얻었고, 현재 학위를 밟는 것도 아니고, 고시를 준비하는 것도 아닌 데 만남을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했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보자.’


“미향 씨랑 딱 어울리는 사람 있는데 한 번 만나나 봐요!”

“네. 소개해 주세요!”

“어머 정말? 소개할 사람이 3명이야. 어떤 사람부터 소개할까?”

“상관없어요. 아무나 먼저 소개해주세요. 저랑 맞는 사람인지는 제가 찾을게요.”

“그럼 이번 주 금요일로 해요. 장소는 정해서 알려줄게.”


금요일 업무를 마치고, 나는 업무 수첩을 열었다. 독신을 선언할 용기도 없으면서 무작정 남자와의 만남을 늦출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생각하던 날 작성해둔 ‘남자를 선택하는 나의 십계명’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를 선택하는 나의 십계명>

1. 부자가 아닐 것

2. 지적 성장을 추구할 것

3. 철학, 종교관, 정치색이 같을 것

4. 성격은 다를 것

5. 머리숱이 많을 것

6.7.8.(기억 안 남)

9. 나이는 나보다 많지 않을 것

10. 배가 나오지 않을 것


나의 십계명에 모두 들어맞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수첩을 보며 이 중 1,2,3 계명만 맞으면 만남을 계속해보자고 다짐했다. 음식과 살림 솜씨가 바닥상태인 나는 1,2,3 계명을 통과한 그 사람에게 하루 빨리 나의 최대 단점을 고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상대에 대한 예의라 믿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정해진 장소에 도착하여 조용히 누군지 모르는 그를 기다렸다.


“여보세요! 아, 미향 씨 어떡하냐. 오늘 시간 된다고 하던 사람이 갑자기 저녁 미팅이 잡혔대요. 그래서, 두 번째로 소개한다고 했던 사람이 여의도에서 일해. 그분한테 연락했더니 오늘 시간이 된대. 금방 거기로 갈 거예요. 미안해요.”

“네. 괜찮습니다.”


누가 먼저든 상관이 없었다. 나에겐 내가 원하는 사람을 구별하는 십계명이 있지 않은가. 마음은 편안했다. 들어오는 입구를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어떤 젊은 남자가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첫 만남에서 체면을 살려주는 남성의 드레스 코드, 양복을 그는 입지 않았다. 그게 좋았다. 나의 십계명은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말을 몇 마디 나누는 사이 나는 이 사람이 제1,2,3 계명을 충족한다고 직감했다.


그를 그다음 날 또 만났다. 나는 음식을 너무나 못하는데 그것이 가장 큰 콤플렉스여서 결혼이란 걸 못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고백해야 했다. 콤플렉스라는 것이 큰 고통인지 온 마음을 다해 말했다. 혹시라도 정이 들고 난 뒤 그게 문제가 되어 차이는 아픔을 감수하기 싫었다. 아, 그런데 이 남자가 뭐래? 음식이 취미라질 않는가! 음식은 같이 하는 게 좋지 않겠냐면서. 그런 말이 남자 입에서 그렇게 쉽게 나오리라고는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다. ‘남자는, 여자는 이래야 한다 ‘는 경계를 두지 않고 가부장성을 장착하지 않은 이 남자를 앞으로 계속 만나고 싶었다. 그와의 만남이 서너 번 이어졌다. S생명 김영희 씨가 다른 두 명도 꼭 한 번 만나보라고 집요하게 종용했지만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 남자와 결혼했다. 어느 날 남편은 "요리는 내 세 번째 취미쯤 되지."라고 말했다. 그 순간 첫 번째 취미와 두 번째 취미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대화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내가 얼마나 다행스러운 결혼을 한 것인지 음미하느라 물어볼 시간을 놓쳐버렸다.


결혼 후 아무리 바빠도 주말이나 특별한 날이면 분위기 좋고 근사한 맛집을 찾았다. 요리하는 수고를 피하기만 해도 내겐 선물이었다. 그날도 누군가의 생일이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런 대화가 오갔다.


“아, 나는 왜 이런 맛있는 요리를 못 하는 걸까? 너무 속상해.”

“나는 그 이유를 알쥐이~.”

“어, 이유가 뭔데?”

“관심. 나는 요리가 재밌다고 생각하니까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저절로 무슨 재료를 넣었는지, 어떻게 조리했는지 궁금하거든. 근데 당신은 사람하고 대화가 시작되면 도통 음식엔 눈길을 안 주더라고. 뭐든 관심을 둬야 발전하잖아.”

“아아~ 바로 그거였구나! 그래, 난 항상 사람한테 쏠리지. 그러고 보니 음식 조리과정이 궁금했던 적이 없네.”

“음식은 과학이나 예술 같애. 이 재료 대신 다른 걸 넣으면 어떻게 변할까 생각하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아아~ 그게 비법이구나!”


그날의 깨달음은 컸다. 나는 모르고 남만 아는 나의 한구석을 발굴한 엄청난 날이었다. 그날 대화 이후 음식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전까지는 골똘히 생각하던 주제를 머릿속에 돌리면서 의무적으로 손만 음식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니, 바로 얼마 전에 했던 요리인데도 과정이 하나도 기억에 저장되지 않아 속상했었다. 남편 말처럼 요리가 예술이나 과학일 수 있다는 시선으로 식재료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요리 솜씨가 생겨나다니 신기했다. 음식에 호기심을 갖게 된 지 5년쯤 흘렀을까. 음식을 못한다는 깊은 콤플렉스에서 거의 벗어난 나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자존감이 부쩍 상승해 있었다.


“당신 요리 솜씨가 엄청 늘었어.”

“관심이지! 마음을 바꾸니까, 요리가 그렇게 어렵고 그런 건 아니네. 하하. 뭐든 스스로 결심해야 발전의 계기가 되는 거 같아.”




결혼이 두려웠던 내 요리 콤플렉스가 요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배우자를 만나게 도와주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다. 둘이서 함께 가사를 나눈다는 자세는 이후 육아와 교육에서 크나 큰 도움이 되었다. 교육은커녕 첫째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가사에 관심을 기울여 본적이 없는 남편으로 섭섭해지면서 심리적인 거리가 생기는 것을 흔하게 보아왔다. 미리 평등한 부부에 대한 자료와 책을 읽고 적절한 질문을 대화 속에 끼워 넣는 노력이야 말로 신뢰를 잃고 힘들어 하지 않을 좋은 방법이라 믿고 있다. 독박 육아를 담당하는 일은 부부, 가족의 정서에 적지 않은 나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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