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으로 콤플렉스 극복하기
육아와 교육은 수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쉽지 않은 일의 연속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가정 생활이 자녀가 태어난 이후에도 유지되려면 출산, 아니 결혼을 하기 전부터 자녀가 살아갈 환경을 마음으로 준비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지난 20여년 두 아이를 교육시키고 나서 내린 결론이다.
맞벌이를 하는 데도 가사 노동은 당연히 아내가 하는 것으로 고정된 생활이라면 어떤 마음이 들까? 또, 처음 경험하는 부모의 역할이기 때문에 알 수 없는 불안을 갖게 되고, 직장 일 이상으로 24시간 보살핌과 관심을 두어야 하는 큰 일이 추가되는 것이다. 늘어난 가사 일과 육아를 딱 절반으로 나누어 하자는 취지는 아니다. 엄마가 전업주부라면 당연히 가사와 육아는 엄마가 대부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아빠가 전업 주부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렵지만 소중한 역할을 보다 현명하게 다성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낳기 전부터 부부가 지혜를 내어 계획하고 서로 협력하여 아이가 부모에게 오기 전이나 후나 연속선 상에서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이상적이다. 가사 노동에서 협의를 잘 해내지 못해 삐걱거리는 불협화음은 육아의 절대적인 일이 가중되는 순간 서로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지는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육아를 시작하는 부모에게 준비운동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한다.
육아의 방향은 다분히 출산 전부터 결정된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하는 남편이라면 아내는 독박 육아를 당하기 쉽다. 누구나 초보인 부모의 길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되지만, 서로를 아끼고 의지하는 마음을 낼 수 있는 한 육아는 숭고한 기쁨의 연속으로 인식될 수 있다. 아이를 다 키운 입장에서 뒤돌아 볼 때, 연애와 신혼의 달콤함도 중요하지만 곧 다가올 육아와 교육은 아이들의 인생의 행불행과 부부의 이후 인생에 엄청한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라 육아를 시작하기 전 부부에게 꼭 짚어주고 싶은 요소다.
결혼 전 남동생과 같이 살았다. 주말에 남자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점심으로 그냥 라면이 어떠냐고 했더니 좋다고 한다. 내 손님이라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가장 간단한 메뉴지만 속으로는 몹시 당황했다. 태연한 표정으로 한참 버벅거리며 라면을 '요리'했다. 김치를 곁들인 라면을 먹던 남자 친구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아아… 이거 라면이 왜 이런 가요오~? 면발이 제대로 안 익었어요오~” 아아. 그 순간 내 표정은 굳어버렸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피가 얼굴로 다 모인 기분이었다. 나는 웃음기 가신 얼굴로 그를 쳐다보며 차분히 말했다.
“숟가락 내려놓고, 이 집에서 나가주세요.”
동생과 남친은 얼굴이 하얘졌다. 동생도 그도 이건 완전 농담이었다며 상황을 수습하려 애썼다. 그게 농담인 줄 나는 이미 표정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내가 말했죠? 음식 못하는 거 내 콤플렉스라고. 콤플렉스가 뭔데요? 전 재산을 다 털어서라도 머리카락을 심고 싶은 사람한테 왜 머리카락이 없냐고 묻는 건 안 되는 거잖아요!"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남자 친구는 정말 미안하다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나는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때 그가 내 맘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사과가 진심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와 만남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음식이 가정의 중심 활동인데 요리에 똥손이라는 콤플렉스가 얼마나 컸던지 나는 결혼 그까이거 하지 말자고 다짐도 했었다. 하지만 어찌어찌해서 나는 이 사람을 만났고, 두 번째 만남에서 그에게 서둘러 내 특급 콤플렉스를 고백했다. 그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수 없음을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어, 저는 음식이 취미예요. 음식이야 같이 만들면 되는 거죠 뭐.“
이러는 게 아닌가. 세상에나! 결코 꾸민 것 같지 않은 이 대답에 나의 마음은 이미 열리고 있었다. 나는 이 남자와 결혼했다. 그 뒤로 24년 동안 내가 만든 음식은 먹기도 전에 ‘맛있겠다’고 하는 가풍이 생겼다.
결혼은 예기치 않은 많은 의무를 동반했다. 결혼식이 지나고 얼마 후 큰 오빠가 전화를 했다. 우리 집에 한 번 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요일 점심을 하자고 약속했다. 차분하게 통화는 했지만 내 심장은 또 요동쳤다. ‘집에서 손님치레라니.....’ 결혼 전엔 그냥 오빠일 뿐 외식을 하든 시켜 먹든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니 갑자기 오빠가 예의를 갖출 대상이 되었다.
“아, 어떡하지? 오빠가 일요일에 우리 집 보러 온다는데 밖에서 밥을 먹을 수도 없고. 큰 일 났네.”
내가 어떤 기분인지 남편은 알고 있었다. 남편은 얼른 종이 한 장과 볼펜을 들고 뭔가를 적었다.
“일단, 당황하지 말고 메뉴를 적는 거지. 그리고 재료를 산 다음, 음식을 만들면 된다 이거지.”
간단했다. 나처럼 당황하지 않는 남편이 믿음직스러웠다.
일요일 아침 일찍, 청소하고 쇼핑하고 남편을 도와 주방보조 역할을 열심히 했다. 음식 만드는 순서를 척척 알고 있는 남편을 보며 ‘이 남자랑 결혼하길 얼마나 다행이야.’ 생각했다. 별 기대 없이 외식을 생각하며 집에 들어선 오빠 내외는 좀 놀랐다. 몇 가지 요리가 있는 식사를 마치고 맛있게 잘 먹었다고 했다. 곧바로 과일과 커피까지 챙기는 남편을 보며 오빠는 그런다.
"동생이 요리 못해서 시집이나 갈 수 있나 했는데, 어디서 이렇게 요리 잘하는 남편을 만났대? 난 이제 큰 일 난겨. 집에 가서 내가 구박받으면 다 매제 때문인 줄 알어”.
하하 호호. 긴장이 풀렸다.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결혼 후 첫 명절이 다가왔다. 추석 며칠 전부터 몸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명절을 잘 보내고 싶었다. 이 불안감을 남편에게 실토했다. 남편 표정도 긴장이 들어갔다. 드디어 시댁에 도착했다. 우리를 맞아 주시는 형님들과 어머님은 이미 부엌에서 일이 한창이셨다. 나도 얼른 부엌으로 들어섰다. 친정과는 음식 종류도 다르고, 재료 위치도 모르겠다. 음식의 순서가 뒤죽박죽 기억이 하나도 나질 않는다. 거의 바보처럼 허둥지둥거렸다. 명절이 특히 두려웠던 이유가 어머님은 아니었다. 형제별로 동등하게 일을 분담하면 좋을 텐데 내가 솜씨가 없어서 형님들이 더 많은 일을 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결국 피하진 못했지만.
“형님, 제가 잘 모르니까 뭐라도 그냥 시켜주세요!”
급한 대로 그렇게 말씀드렸다. 하지만 전보다 손놀림이 더 둔했고 정신은 몽롱했다. '어쩜 이렇게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걸까.....' 내가 나를 책망하는 소리에 머릿속은 시끄러웠다.
남편은 아까부터 안방문 안쪽에서 내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한참을 안절부절못하던 남편은 급기야 부엌으로 나왔다. 팔뚝을 걷어붙인 아들을 본 어머님은 깜짝 놀라시며 새 며느리가 볼세라 아들의 옆구리를 두어 번 찌르셨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결심한 듯 어머님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귀가 안 좋아 보청기를 끼고 계신 어머니 눈을 바라보고 또박또박 말했다.
“어머니, 그냥 하게 해 주시면 안 돼요? 왜나면요 ㅇㅇ씨가 여기서 이거 안 하고 서울 올라가면, 제가 막 화가 나서 ㅇㅇ씨가 더 힘들어져요. 그러니까 여기서 이거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순간 침묵이 흘렀다. 형님들도 남편도 나도 돌아올 반응을 대기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어두운 표정을 거두며
물으셨다.
“아아, 요즘 애들은 그렇게 사는 겨?”
“네, 그렇게 살아요. 그래야 안 싸우거든요.”
어머니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 그럼. 허허. 요즘 애들은 참 재밌게들 사네.”
그 후 시댁에선 음식은 다 같이 만들고 다 같이 노는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엄마, 나 어렸을 때 왜 부엌에 못 들어오게 했어? 살림 못하는 게 얼마나 창피했는지 난 결혼 평생 안 한다고 생각했어. 난 애 낳으면 꼭 요리 가르쳐서 결혼하게 할 거야.”
어느 날, 난 엄마에게 투덜거렸다. 엄마는 말했다.
“아까우니께 그렜지. 그 까이꺼 밥, 반찬이야 배우면 금방 허는 거구. 자꾸 부엌일 허먼, 나처럼 살까 봐. 그 시간에 공부해가지구 서울 가서 저 허고 싶은 거 맘대로 허고 살라구 그렜지....”
엄마의 예상은 적중했다. 어느 사이 나는 밥이랑 반찬쯤은 배워서 그럭저럭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두 딸과 음식 만드는 시간을 즐긴다. 이것이 내 엄마보다 더 나은 선택이라 장담할 순 없다. 하지만 가족과 같이 웃고 떠들며 함께하는 부엌일은 노동이 아니며 오락이자 문화 활동이다.
음식을 못한다는 나의 컴플렉스에서 결혼을 무척 두려워하던 터라 나는 결혼을 하기도 전에 일상이 될 가사 노동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 지에 대한 문제 제기를 애시당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이서 나눌 수 있는 것은 정성껏 나눠서 서로가 지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시작이 반이었다. 맞벌이 부부로 손쓸 수 없는 부분은 과감히 외주를 주기로 했다. 남편 못지 않게 나는 나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아이를 낳기 전에는) 돈보다 자아실현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쪽으로 지나치게 치중되어 있을 때였다. 한 가정의 생애 전체에 대한 재무 계획에 아직 눈을 뜨지 못했을 때였기 때문에, 당연히 가사와 육아를 동시에 도와줄 도우미를 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수 있었다. 출산 전에는 퇴근 후 가사 노동은 서로 적절히 나누어 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첫 발을 잘 디뎠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어마어마하게 할 일이 많은 육아를 앞에두고 이 결심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다행스럽다는 감정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계획하지 않아 갑작스레 닥친 육아의 방법을 두고 두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미리 질문을 통해 생각해보는 지혜를 발휘하기를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