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언제 가르칠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가 적기

by 말과맘


무엇이든 스스로 알고 싶을 때가 적기

세상이 삭막하다고 느껴질 때는 세상보다 내 마음이 메말라 있었다. 첫째와 둘째를 3년 터울로 낳은 후, 직장과 가정을 모두 잘 챙기고 싶은 마음으로 분주하게 살다보니 가끔은 몸도 맘도 지쳤다. 의무감을 덜어 내고 멍 때리기를 하고 싶을 때 좋은 영화나 잘 고른 책 한 권이 삶의 온기를 되찾게 해주었다.


대학 시절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었다. 소설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에 마음을 빠뜨리며 우리 시절보다 삶의 무게가 훨씬 더 무거운 시절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았었다. 무거운 삶의 무게를 의연하게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어느 새 메마른 나의 감성에 촉촉함이 생겨났다. 그러고 나면 주변 사람들을 너그럽게 이해할 여유가 생겼다.


첫째를 낳고 몇 년을 앞만보고 달리다 지친 어느 날, 오랜만에 조정래의 다른 장편 소설 <한강>을 읽기 시작했다. 주말이라 '이모님'도 댁으로 가셨고, 아이를 방에 재워놓고 거실에서 <한강> 제2권에 빠져 들었다. 언제 깨었는지 아이는 거실로 나와 내가 읽는 책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엄마, 이거 재미있어요?"

"응, 재밌지. 왜?"

"여기 그림이 하나도 없는데 재밌어요?"

"응. 그림이 없어도 재밌어. 엄마는 한글을 다 아니까 이게 무슨 얘긴지 알아. 글씨로 된 책은 그림책보다 재밌는 얘기가 더 많아. 재밌어서 계속 읽고 싶어. 왜?"

"ㅇㅇ이도 한글 알고 싶어요...."


아이를 우면서 근거 없는 ‘해야한다’는 말에 휘둘릴 위험은 항상 있다. 먹어서 생긴 에너지보다 사용하는 에너지가 많으면 되는 그 간단한 다이어트 비법도 무수히 많다. 아이에게 한글을 언제 가르치는게 좋은 지에 대한 답변도 다양하다. 한 때 영어 발음을 좋게 하기 위해 어린 아이의 혀를 강제로 수술하는 열풍이 일었던 적도 있다. 지금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그런 말에 현혹되던 시기도 있었다. 또 영어를 너무 어릴 때 가르치면 아이 두뇌가 손상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즐겁고 쉽게 여러 언어를 동시에 잘하는 아이들의 사례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언제 한글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변은 없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나이 몇 살로 정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억지로 하는 것이라면 모든 공부가 그렇듯이 8살이어도 위험하다. 억지로 하는 것은 어떤 것도 아이는 괴롭고 효과도 떨어진다. 언어 학습을 시작하는 시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우고 싶은 욕구가 있는지 여부와 그 방법이다. 너무 배우고 싶어할 때는 조금 지루한 것도 스스로 참아 내려는 의지가 생겨서 무리가 적다. 또 동기가 충분하지 않을 때라도 재밌게 놀이로 접근하면 즐거움이라는 동기가 새로 생겨날 수 있다. 그날 아이가 한글을 알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까지는 한글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일을 아이에게 시키려면 잔소리를 해야 한다. 아이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전에 억지로 시킨 일을 시키면 거부감을 가지게 된다. 잔소리를 들으며 하는 그 일 때문에 아이의 마음은 얼마가 답답할까? 평양 감사조차도 저 싫으면 그만 아닌가. 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더라도 내 마음이 시켜서 하면 의지력이 생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엔돌핀이 솟는다.


아이 교육에서 가장 중시했던 원칙이 있다면 아이가 스스로 하고 싶다는 동기를 기다리거나 부여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은 놀이처럼 느껴진다. 어려워도 해내면서 성취감을 느낀다. 독서를 아이 교육의 주 공부법으로 삼겠다는 방향을 목표를 가졌기 때문에 책에 대한 좋은 첫 인상을 주고 싶었다. 그림책을 재밌게 읽어 주는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그런데 글로만 되어 있는 책이 그림책보다 더 재밌다고 하니 아니는 글이 알고 싶다고 했다. 그날로 한글을 재밌게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재미를 추구하면 호기심이 더 생긴다


아이에게 책을 재밌게 읽어 주다보면 아이는 어느 때인가 글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딱히 몇 살이라는 답변을 바라지 않기를 바란다. 초등학생이 되었어도 받아쓰기와 글자 익히기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도망치는 아이들이 있지 않은가. 때가 되었다면 가능한한 즐거운 방식의 학습법을 찾아야 한다. 부모로서 재밌게 학습을 이끌 수 없다면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는 것이 좋다. 첫 단계에서 글자 공부가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이후 모든 공부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아이 스스로 관심도 있고 즐긴다면 조금 이른 시기여도 시도해 볼 수는 있다.


어린 아이에게 '기억' '니은' '디귿' '리을' ... 식으로 자음의 이름을 암기시키면서 글자를 공부시킨다면 대체로 재미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최근 뇌과학이 엄청 발전하고 있다. 똑같은 학습도 아이들이 즐겁게 할 수 있는 많은 도구와 교수법이 생겼다. 놀이처럼 글자를 습득하게 하는 도구가 시중에 팔릴 것이라 생각했다. 인터넷에서 놀이식 한글 학습을 검색했다. 마침 마음에 쏙 드는 스티커 학습지를 발견했다. 스티커를 떼어 다른 종이에 붙이는 것은 거의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손놀이다. 놀이기 때문에 한글을 배우는 것이 아니어도 그 자체로 즐겁다는 말이다. 스티커 종이에 그림과 글씨와 칼라가 적절히 섞여서 한글을 이미지로 익히게 하는 신기한 한글 학습 프로그램이 있었다. 방문 교사가 집으로 와서 수업을 해준다고 적혀있었지만, 그냥 도구만 구입했다. 재밌게 하는 일은 내 스스로 잘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각 카드마다 과일이 칼라로 그려져 있고 과일과 같은 색깔로 과일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아이는 글자만 보고도 그 단어를 말할 수 있다. 왜냐면 초록색의 수박 껍질 색깔로 '수박'이라 적혀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수박 색깔의 ‘수박’이라는 글자 스티커를 조막만한 손으로 떼어서 수박 그림에다 붙이는 활동을 했다. 비슷한 동작을 반복하는 사이 아이는 ‘수박’이라는 글자를 이미지로 기억하게 된다. 어느 사이 수박 색깔이 아닌 검정색 ‘수박’이라는 글자를 소리내어 읽게 된다.


아이는 신이 나서 글자를 떼고 붙였을 뿐인데 아는 글자가 늘어나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얼마나 스티커 놀이가 재밌던지 하루에 하나의 꾸러미를 마치기로 했는데 끝나고도 더 하고 싶어 했다. 남은 카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엄마가 퇴근한 후에 하나씩만 꺼내어 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더 하고 싶은데 참고 기다렸다가 할 수 있는 놀이여서 그 과정이 더 즐겁게 인식되었을 것 같다. 스티커 한글 놀이는 한 달 정도에 끝이 났다.


모든 사물이 글자로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아이는 한동안 호기심을 가지고 그 동안 엄마와 읽었던 책의 제목을 자세히 보며 이미 아는 글자를 찾아내는 재미에 빠졌다. 아이는 좀 더 많은 단어를 알고 싶어 했다. 손놀이를 하면서 이미 배웠던 단어를 자꾸 복습할 수 있게 도구가 만들어져 있어서 꾸준히 반복하면서 배운 글자를 장기 기억에 남을 수 있게 해주었다. 조금 큰 아이가 배우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을 때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예전에 배우듯이 배워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글자를 알기 전에도 인지는 발달하고 있는 것이므로 글자를 알고 모르는 것으로 아이들의 지적인 능력이 높고 낮다고 나누지 않아도 될 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와 다르게 게임이나 놀이 형식으로 한글이나 영어, 수학, 과학을 밑바탕을 잡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그후로 더욱 풍성해졌다. 아이가 “아, 이거 재밌겠다!”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프로그램이 효과도 좋고, 아이가 이후 공부에 대한 좋은 기대를 가질 수 있어서 좋다. 글씨부터 써도 잘하는 아이가 있일 수는 있다. 공부에 하나의 왕도가 있지는 않지만 우리 아이가 부담스러워 하는 방법을 피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한글에 호기심을 갖게 하는 활동


한글 스티커 놀이를 하기 전에 한글 자음과 모음이 들어 있는 자석 세트를 구입했었다. 냉장고 근처에 한글 자석 글자통을 두고, 아이가 냉장고에 자석을 붙였다 떼는 놀이를 할 수 있었다. 냉장고에 우리 집 식구 이름을 모두 자석으로 붙여 주었다. 엄마, 아빠, 아이 모두 성이 '이'씨였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가장 쉽게 인지된 글자는 '이'라는 글자였다. 쉽고 익숙한 글자부터 배워나간다. 자석 글자가 아이에게 남긴 인상은 자석과 자석이 만나면 글자를 만들고 소리가 정해진다는 것이었다. 알든 모르든 손으로 꼼지락 거리는 손놀이가 마냥 즐거웠다. 아무 자석이나 연결해서 붙이고는 어른들에게 읽어보라고 하곤 까르르 웃곤 했다. 이미 알게 된 글자를 스스로 자석을 붙여서 만들어 보는 일도 아이에게는 성취감이 드는 활동이었다. 그렇게 한 글자씩 익숙해지다가 어느새 자신이 읽을 수 있는 단어가 눈에 들어오면 아이는 신이났다. 책 제목에서 간판에서 광고 전단지에서 아이는 ‘이’자를 찾고 ‘미’자를 찾고 좋아했다. 그럴 때마다 가족들은 박수를 치며 웃어주니 아이는 즐거웠다. ‘자음’과 ‘모음’, ‘기억’ ‘니은’ 식의 어려운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우리말의 과학적인 조합 원리를 아이는 저절로 이해하게 된다.


놀이를 하고 싶은 아이의 욕구가 컸기에 그 욕구를 따라 다니며 놀이가 이뤄졌기 때문에 단 한번도 하기 싫은 적이 없었다. 아이는 배우는 즐거움에 빠졌다. 억지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것을 부모가 도와주는 식의 자연스러운 즐거움이다. 부모가 읽어주던 책 제목을 스스로 읽어 내던 날, 아이는 책 속을 열고 글자를 스스로 읽고 싶어했다. 하지만 모든 글자를 서둘러 가르칠 필요도 없었다. 전과 똑같이 무릅에 앉아 그림책을 읽어주고, 글밥이 적은 책을 반복하여 읽어 주었다. ‘바’라는 글자 밑에 ‘ㄱ’을 붙이면 ‘박’이 된다는 것을 ‘수박’에서 알았고, ‘아’라는 글자 밑에 ‘ㄱ’이 붙으면 ‘악’이 되어 ‘악기’를 알게 되었다. 이렇게 스티커 놀이가 계속 되면서 받침이 있는 글자의 원리를 지루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터득하게 된다. 이런 학습도구가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작은 아이가 태어났다. 작은 아이는 언니가 늘 말동무 놀이동무로 있기 때문에 언어 자극이 더 풍부할 수밖에 없다. 가정마다 대체로 큰 아이보다 작은 아이가 언어 감각이 더 뛰어난 것은 이런 환경에 기인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엄마, 언니는 글자를 아는데 왜 ㅇㅇ는 몰라요? ㅇㅇ도 알고 싶은데...."


큰 아이가 한달 동안 놀던 한글 스티커 학습지를 또 구입했다. 둘째 아이도 거의 큰 아이와 비슷한 놀이를 반복하고 같은 과정으로 재미를 주었지만 언니가 또래 친구로 있기 때문에 부모의 수고가 더 줄어드는 측면도 있다. 둘이 다투지 않고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이끄는 노력은 결국 부모에게 편안한 육아의 길을 열어준다. 한글을 알려 달라던 첫째처럼 둘째도 엄마에게 글자를 알고 싶다고 하늘 날이 왔다. 작은 아이는 혼자서 책을 읽기도 하는 언니가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럼 엄마가 우리 ㅇㅇ한테 한글 알려줄까?"

"네에에에에에!"


작은 아이는 신이나서 춤을 추었다. 호기심이 생겼을 때 노출하면 훨씬 학습 효과도 좋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단순하다. 의성어, 반복적인 소리, 큰 제스처를 동원하면 아이들은 저절로 웃는다. 웃음이 일어나는 활동은 공부도 놀이로 생각된다. 스스로 배우고 싶은 때가 적기라고 강하게 믿고 있다. 반면 어른이라고 해도 배우기 싫은 것을 억지로 가르칠 수는 없다. 지속성도 없고 효과도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를 기다려고 그럴 기색이 없으면 어떻게 할까? 그런 마음이 생기도록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다. 엄마 아빠의 의도를 아이가 먼저 읽어버려서 동기를 더 빼앗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시간의 양보다는 질을 중시하자. 아이들과 같이 하는 시간은 부모의 무거운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고 아이들의 눈높이로 생각하고 움직이자. 같이 노래하고 춤추고 박수치고 장난치고 놀이하고 안아주는 그 유치한 활동 속에 아이들은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를 전적으로 믿어준다. 그리고 부모나 언니가 하고 있는 일을 자신도 하고 싶어한다.


몇 살에 무엇을 해야 한다는 공식에 현혹되지 말자. 갓 태어난 아이도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과 아닌 음식을 구별한다. 스스로 무얼 하고 싶은지는 본능으로 아이 마음에 숨어있다. 부모와 했던 놀이가 항상 재밌다는 기억으로 떠오른다면 이후 부모가 제시하는 어떤 활동에도 우선은 관심과 기대를 갖게 된다. 이후 독서 활동이나 시험 공부를 할 때에도 비교적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자연적인 욕구를 가지게 된다. 아이의 욕구를 거슬러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후 공부 과정에서도 긍정적인 부모와 아이는 팀웍을 발휘할 수 있다.


한글 공부를 쓰기부터 접근하는 일은 위험하다. 자음과 모음의 이름을 암기시키며 글자를 가르치려 한다면 어른인 나도 도망가고 싶어질 것 같다. 이렇게 형성된 공부에 대한 선입견은 이후로도 부모가 같이 학습하는 시간이면 부담감이 생길 것 같다. 부모와의 첫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경험은 점점 부모와 같이 노는 친근함을 줄게 만들고, 부모가 시키는 일에 반감이 싹트게 할 것이다. 그러니 몸이 피곤하고 같이 하는 시간이 짧더라도 초반에 망가져서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활동에 참여하여 부모를 믿으면 재미가 있다는 좋은 선입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좋은 전략일 수 있다. 부부가 힘을 합쳐서 한 사람이 쉴 때 다른 한 사람이 아이들의 재미를 주는 역할을 나눠보길 바란다.


아이 교육은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결정의 연속이다. 모두가 초보인 이 중대한 부모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복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가치관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답변이 맞는지에 대한 확신을 갖기 어렵다. 부부가 함께 아이 교육을 시작하기에 앞서 교육의 목표와 원칙을 상의해둔다면 타인의 말에 휘둘리는 위험을 막을 수 있다. 앞으로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결정할 거리를 수없이 던져 주는 우리 나라 입시에서 흔들리지 않고 주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부의 이른 토의와 다짐이 흔들리는 중심을 다잡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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