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아이는 읽지 않는다

부모가 만든 아이 쳇바퀴

by 말과맘


퇴사를 결심하다


큰 아이가 4학년, 작은 아이가 초1이 되고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아이들에게 부모가 신경쓸 일들이 점점 많아졌다. 하루에도 몇 가지씩 선택하거나 결정할 일들이 생겼다. 엄마 역할과 직장 사이에서 시간을 적절히 배분해야 하지만 자꾸 회사일이 우선순위를 차지했다. 큰 아이는 몹시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는 하지 못했다. 늘 만나는 친구들과 놀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이들은 각자 하루 스케줄이 달라서 친한 친구라 해도 만나서 놀기 어려웠다. 아이들끼리 만나서 놀려면 미리 엄마들이 개입해서 공통시간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 우리 때와는 다른 환경이다.


처음 만나는 아이들과도 서스름 없이 이야기를 하고 친해지는 작은 아이와는 달리 수줍음이 많은 큰아이에게는 친구들과의 놀이와 모임은 더욱 중요했다. 엄마들의 연락처도 알고 서로 교류가 있어야 아이들이 모여서 놀게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회사일을 온종일 하고 집에 돌아오면 학교 숙제며 기본적인 일을 처리하고 나면 금세 시간이 사라졌다. 게다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독서 습관 잡기는 하루도 소홀하게 다루지 않은 일이었다.


부모가 되면 싱글로 사는 것과는 달리 자신의 정체성에 아이들이 큰 부문을 차지한다. 회사의 일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일과 가정 사이에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이 교육을 생각하기 전에는 그 회사를 평생 다닐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의 소중함과 치열한 교육에서 뒤처지지 않게 독서와 학교 공부를 연결해주는 일은 신경을 쓰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마침 전공이 영어와 관련되다 보니 목동에서 영어 교육을 하면서 집에서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하게되었다.


맞벌이의 고충을 나는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집도 없는 상태였지만 나는 남편과 상의 끝에 아이를 성심성의껏 봐주시는 ‘이모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회사일을 마치고 아이를 데려와서 직접 다 챙기는 부모들의 고충을 듣노라면 맞벌이 부부의 육아와 교육은 훨씬 더 힘든 하루 하루의 연속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맞벌이를 무조건 그만두기도 힘들다. 다행히도 내가 전공한 영어는 아이들 교육에서 중요한 과목으로 인식되니 전공을 살려서 목동 집근처에 영어 교습소를 차릴 수 있었다. 퇴사와 동시에 조그마한 교습소를 집과 가까운 거리에 차렸다. 아직 나라의 경제 수준에 비해 장시간 근무 분위기가 강하고, 직장내에 탁아소를 설치하는 등의 일하는 여성을 위한 육아 시스템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사회적인 인식이 넓어져야 젊은 여성들의 출산의지가 커져서 줄어드는 출생인구를 다시 늘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아이는 기계가 아니다


교습소에서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과 내가 늘 관심을 두고 있는 심리학적 지식을 활용하여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퇴사를 좀 더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자녀 걱정이 끊이지 않는 많은 부모(엄마들이 주양육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성심껏 듣고 대화를 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방법을 찾아주는 일은 가르치는 일 못지않게 성취감을 주었다. 우리집 딸들 또래 친구들이 우리 교습소에 아이를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 부모들과 이 시대에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끝없이 토의했다.


아이들의 교육 환경은 우리들이 학생이던 30~40년 전보다 훨씬 가열차고 경쟁적이어서 아이들은 힘들어했다. 만나는 아이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일은 특히 나의 마음을 끌었다. 힘들어하는 아이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그 누구의 도움이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들의 고민도 심각했지만 엄마들에겐 고민을 토로할 수 있는 남편도 있고, 형제 자매도 있도 또, 주변 엄마들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아이들의 고민은 누구와 그 고민을 나눌 수 없고, 주로 부모와 대화를 잘 해내지 못하는 속에서 생기기 때문에 더 측은지심을 유발했다. 사람의 마음과 정서가 행복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나의 지속적인 관심사 덕 분에, 지난 20여년 두 아이를 키우며 교습소를 운영하면서 부모들의 수많은 고민상담을 듣고 상의했다. 이제는 어느 나이 또래면 아이들이 어떤 면에서 정서적으로 힘들어 하는지, 부모는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지 추측하며 상담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중에 기억나는 나영이의 고민도 흔한 아이들의 고민 중 하나였다.


“쌤, 저는요 학원이랑 공부하는 거 다 합치면 18개예요."

"정말?"

"네. 제가 한 번세어볼까요? 국어 학원이랑 학습지, 수학 학원이랑 학습지, 영어 학원이랑 학습지, 원어민 회화, 영어 책읽기, 일본어랑 중국어 학습지, 글짓기, 역사, 한자, 피아노, 미술, 생활체육, 태권도, 스피치. 18개 맞죠?”


몇 번을 세어봤는지, 나영이의 손이 18을 가리키며 딱 멈췄다. 초등 3학년 나영이는 늘 시간이 없었다. 쉬는 시간 없이 엄마가 짜준 학원으로 종일 장소를 이동한다. 저녁에 귀가하면 숙제를 한다. 다람쥐 쳇바퀴도 하루 이틀이지. 나영이는 표정 없이 멍한 눈으로 앉아있을 때가 많았다.


"우리 엄만요 맨날 숙제 다 하면 놀 수 있다고 하는데 숙제를 다 할 수가 없어요. 오늘도 집에 가면 숙제 하다가 잘걸요. 저도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요...... "


나영이는 자기 얘기를 하다 울먹였다. 우리 교습소의 영어 지도는 원서 독서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수준에 맞는 원서를 취향에 맞게 즐겁게 읽는 법을 익히도록 돕고 싶었다. 처음 왔을 때 나영이는 자신도 책을 열심히 읽겠다고 나와 약속했다. 하지만 잘 집중하지 못했다. 친구와 놀 기회가 없는 나영이는 친구를 갖고 싶었다. 특히 같은 반 아이 수연이와 혼자 친하게 놀고 싶었다. 어느 날 나영이는 수연이의 친한 친구들을 화장실로 한명씩 불러냈다.


“ㅇㅇ야, 수연이가 그러는데 너 되게 재수 없대!"

"헐, 진짜? 왜?"

"네가 엄청 잘난 척 한다고 싫하고 그러더라. 근데 이거 너랑 나만 아는 비밀이야. 약속!”


이 일이 있은 후, 열명 남짓한 학급 여학생이 있는 교실의 분위기는 갑자기 뒤틀려 버렸다. 너무나 친했던 친구들이 하루 아침에 수연이에게 쌀쌀하게 돌아서버렸다. 수연이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선생님께 자신의 물건을 만지려고 한다고 이르고.... 수연이는 어리둥절했다. 하루 아침에 변해버린 친구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을 견디기 힘든 수연이는 엄마 앞에서 엉엉 울며 학교에 가는 게 무섭다고 말했다.


세 명 이상이 아는 내용은 이미 비밀이 아니라고 하지 않던가. 다행스러운 것은 며칠 만에 그 반 여자 아이들은 나영이가 모두 지어낸 말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친구들은 나영이의 거짓말 때문에 수연이를 오해하게 된 것을 알고 선생님께 그 사실을 말씀드렸다. 나영이는 수연이와 친했던 친구들이 수연이와 멀어진 틈을 타서 수연이와 단짝으로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이 금방 들통이 났다. 나영이의 비정상적인 계획이 들통난 이후 나영이는 더욱 외로운 아이가 되었다.



공부 시간만 늘린다고 잘하지 않는다


나영이의 하루 학습 시간은 세 명의 아이가 나누어 한다 해도 많은 양이었다. 강제적으로 많은 시간을 공부시키면 잘할 것이라 기대하는 부모는 드물지 않다. 그런 스파르타식 공부는 사춘기 이전인 초등학교 때는 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믿고 있는 부모의 아이들 표정은 밝지 않다.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이미 초점을 잃은 눈으로 생활을 이어간다. 나영이는 점점 공부에 흥미를 잃었고, 그후 아주 극심한 사춘기를 겪었다.

아이가 사춘기가 되었다는 말의 속 뜻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대해달라는 신호다. 아이를 위해 쏟아 부었던 나영이 엄마의 사랑과 노력은 효과를 내지 못했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 결정한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열정이 생긴다. 컨베이어 벨트를 돌리듯 아이들을 학원으로 순회시키는 부모에게 입장을 바꿔서 아이처럼 매일 공부를 하라면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본 적이 여러번 있었다. 대체로 할 수 없을 거 같다고 했다. 부모는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지만, 효과가 나지 않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서히 시작된 사춘기 신호는 점점 더 거칠게 이어져 아이들은 부모와 대화의 문을 닫아 버리고 만다. 아이를 바꾸려고 하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달라져야 하는 신호로 이해해야 한다. 많은 부모님들이 상담을 요청하면서 “우리 아이를 어떻게 고쳐야 하나요?”를 묻는다. 자세히 상황을 듣다보면 문제를 없앨 수 있는 더 큰 가능성은 부모에게 달려있다.


하지만 부모는 할만큼 했는데 아이가 문제라고 말하는 경우는 그것이 설령 사실이라도 하더라도 문제의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이 되지 못했다. 반대로 상담을 신청하면서 “제가 어떻게 해야 아이 행동이 변할까요?”라는 식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분들은 충고를 열심히 경청하고 종이에 적어가면서 실천하려고 했다. 그런 분들은 부모의 말과 태도가 변경되어야 아이들의 행동이 달라질텐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 지를 물어 오시기 때문에 충고도 쉽고 상황도 좋아지는 기분 좋은 상담이 된다. 하지만 부모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아이가 문제니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부모의 경우 상황이 나아기는 일은 드물다. 내 아이가 사춘기 성향을 보이며 짜증을 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적으로 변할 때는 바로 부모가 생각과 말과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다. 부모가 어떻게 변해야 할 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교육지침서를 읽어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심리 상담도 아이들이 받는 것 보다는 부모가 받는 것이 상황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어린 아이들은 아직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같은 배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도 공부 동기가 다를 수도 있다.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없는 상태이고, 왜 공부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학원에 내몰려 하루 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의 마음은 힘들다. 부모 행동은 사랑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과는 미움을 낳는다. 부모가 먼저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와 대화를 나눠서 상황을 반전시키지 않으면 상당히 오랜 기간을 미워하며 지내기 쉽다. 또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 서로 서먹 서먹하거나 서로 찾지 않는 사이가 되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아이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상처로 떠올린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이 왜 예부터 전해지는지 수많은 사춘기 아이들의 성장기를 보면서 비로서 이해할 수 있었다.



대치동 어느 초등 6학년생의 하루


그 무렵 유명한 인터넷 맘카페에서 눈에 띄는 글을 보았다. 교육 일번지인 대치동에서 일하는 학원 강사의 글이었다. 당시 지도하는 한 초등 6학년 아이의 공부 시간을 계산해 봤다고 적혀 있었다. 아이의 학교수업, 사교육, 숙제 시간을 모두 더한 다하여 일주일 공부시간을 구하고 그것을 7로 나누어 하루당 공부 시간을 구했다고 했다. 아이가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치는 데 필요한 최소 시간은 놀랍게도 하루 56시간이었다. 매일 잠자는 시간은 8시간으로, 노는 시간은 아이 마다 다르므로 계산의 편의상 0으로 했다. ‘설마!’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탄식과 우려의 댓글이 쏟아졌다. 목동의 나영이와 대치동의 6학년 아이는 우리 시대부모들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형태를 대변하고 있었다. 정도가 조금씩 다를 뿐이다.


어느 날 유튜브 썸네일에 이끌려 한 영상을 보았다. 우리 나라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외국인 강사가 올린 영상이었다. 우리 아이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관찰한 소감을 밝힌 영상이었다. 아이들이 늦은 밤이나, 새벽까지 이동하며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이것이 “집단적인 아동학대”가 아닐까 생각한다는 고백이었다. 그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아이의 부모에게 왜 아이를 학대하고 있냐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교육은 사교육과 공교육이 동시에 참여하는 구조를 이루며, 아이들의 활동을 점수화하여 우열을 가리는 것이 기본 줄기이기 때문이다. 더 잘하게 하고 싶은 부모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경쟁체제 하에서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잘하기를 모두 바라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것은 놀이다.

“최근에 언제가 기분이 가장 좋았어?”

“며칠 전에 학원 가는 길에 친구를 만났거든요. 따로 만나서 놀 시간은 없으니까 학원 도착할 때까지 천천히 같이 걸어가면서 놀았어요. 그때 기분 좋았어요."

이야기를 듣고 짠한 마음이 들었다. 시골에서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노을이 질 때까지 놀던 생각이 난다. 우리가 어릴 때와 달리 요즘 아이들은 방학을 싫어한다. 차라리 학교 가는 게 더 낫다고 그런다. 방학이면 학교 수업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야 해서 더 힘들다고들 한다.


편의점이나 이동하는 차안에서 밥을 먹는 아이들 풍경은 낯설지 않다. 언제부턴가 놀이터에 아이들이 사라졌다. 길거리에서 학원 가방을 메고 터덜터덜 걷는 아이들의 표정에 웃음도 사라졌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모습도 희귀한 풍경이다. 이쯤되면 우리 나라 청소년들이 가장 높은 자살율로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임을 보여주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비교 중심 교육제도에 있다고 힘줘 말할 수 있다. 복잡한 교육의 감옥에서 자신의 욕구와 잠재력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점수 기준에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제도가 주는 압박 속에서 고뇌하는 부모도 방향 잡기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아이들도 부모도 얼굴에 어두운 표정을 담고 살아간다. 최상위권 아이들이나 그 부모라고 특별히 더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것도 아니니, 승자 없는 오랜 싸움을 하며 아이들을 살고 있다.



공교육 교사가 배제되는 우리나라 교육


한 번 빨려 들어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사교육이라는 토네이도를 피하려면 멀리 도망쳐야 한다. 공교육과 사교육이 줄다리기를 벌이는 교육의 현장은 토네이도에 가깝다. 주변을 얼쩡대다가는 몸과 마음이 모두 만신창이가 된다. 아이도 부모도. 그렇다고 해도, 대안도 없이 도망치는 칠 수도 없는 것이 아이 교육이다. 목동에 살면서 실력 좋은 학원들의 기세에 빨려들지 않고 멀리 도망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모의 원칙이 필요했다. 부모의 길이 처음이라 어려웠고, 우리 아이들이 뒤처지기를 바라지 않기에 방향도 잡아야 했으나 그때마다 기준을 잡아도 자꾸만 흔들렸다.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교육 정보가 너무나 많은데 그 속에서 나의 철학에 맞는 선택이 무엇인지 찾는 일은 매일 어려웠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인생에 도움이 되는 거창한 독서의 의미는 포기했다. 현실성 없는 외침 같았다. 그나마 학교 생활에서 점수에서 뒤지지 않고 잘하는 모습을 보여야 독서도 힘이 없지 않은거구나 믿을 용기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독서가 다른 공부법만큼 아니 그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믿음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다. 그것이 현실이 되려면 독서와 대학 입시 사이의 매칭 정보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아이가 독서를 꾸준히 했더니 어느 과목이 탄탄했다는 식의 구체적인 확신이 필요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입시제도는 더 이상 복잡하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용어와 변경으로 범벅이 되어있다. 그말은 아무리 유식한 엘리트가 교육제도를 보아도 단박에 이해하고 자신의 전략을 짜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교육 용어의 변천사를 꿰고 있지 않은 사람과 대화를 하다보면 금세 지치고 대화가 진전이 되지 않는다. 교육의 꼬이고 꼬인 암호화를 벗겨내는 일은 무척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다. 아이들이 바쁘게 공부를 하면서 그 복잡한 입시제도까지 알면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한다는 것은 불가능은 아닐 수 있지만 가능하기 어려웠다.


아이를 독서 위주로 공부하도록 정보를 찾으며 스스로 확신을 이어갔다. 결국 정보를 찾기 위해서도 나는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아이들 건강하기만 하면 그만이고 공부는 못해도 된다는 과감한 생각을 품지 못했다. 여전히 우리 아이들도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욕심이 있는 이상 나는 독서로 입시를 뚫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은 입시에도 통하는 말이었다. 교육에서 ‘피’ 즉 상대방이란 우리 아이와 경쟁하는 다른 아이들이기도 하겠지만, 입시라는 복잡한 미로에서 내 아이의 성향과 꿈에 맞는 학과를 일찍이 정하고, 아이의 성적에 맞는 전형을 찾아 내고, 어느 고등학교를 들어가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며, 들어야 할 과목과 활동과 동아리와 생활기록부에 적을 독서 목록을 찾는 일 등등 수많은 결정이 상대방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대학을 입학하는 그날까지 정보를 찾는 엄마가 되었다.


나의 인생 관심사는 인간의 심리와 아이와 교육과 독서였다. 이 모든 관심사가 아이들이 행복하게 공부도 잘하는 것에 꽤 연결이 되어 있어서 나답게 사는 일과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는 일이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아 다행이었다. 내 마음이 원하는 주제들이어서 교육하는 시간 내내 나의 길을 모두 잃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요 양육자인 엄마 혹은 아빠가 교육이나 심리와는 상관없는 곳에서 일을 하는 경우라면 자녀의 교육을 위한 정보를 찾아내는 일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을 하지 않는 전업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달려들어도 심리라는 어려운 관문에 부딪히면 인풋만큼 아웃풋이 착착 나오는 일이 아니기도 했다. 그래서 옛말에 ‘자식 농사 내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어머니, 저희도 이젠 힘이 없어요. 입시는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매년 바뀌죠. 변경을 통보할 뿐 학교가 대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시행해요. 그냥 위에서 하라는 하면 하는 수밖에 없어요. 교사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느니 하는 그런 건 아예 기대조차 안 해요. 그래도 저희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냥 월급쟁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집 아들도 지금 고3인데 어떤 학원을 보내야 할지 애 엄마랑 저도 부모로서 고민스럽긴 마찬가집니다. 입시 제도 변천사를 교사들도 시원하게 알 수 없고 대응력도 떨어지니 이젠 아이들이 교사랑 상담하려고도 하지 않아요. 그냥 학생들이 밖에서 돈 주고 컨설팅 받아오면, 그 결정을 존중하고 기록하고 그러죠. 학원 안 다니는 애들 타일러서 학원 다니게 하고 그러는 게 요즘 교사가 하는 일이죠.”


허심탄회하다 못해 측은한 교사의 자기 고백은 교사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교육의 주인공인 학생, 학부모, 교사를 교육정책결정 과정에서 배제한 상태에서 매년 교육 제도는 변경된다. 공부를 잘하는 승자일 것 같은 아이들도 행복하지 않은 승자 없는 경기는 치열하기만 하다. 2023년도에도 여지없이 입시제도는 변경을 단행했다. 명분도 없고 이유도 애매한 변화를 위한 변화는 사교육의 증가를 초래했다. 이쯤되니 혹시 교육 정책을 변경하는 주최가 사교육계 인사는 아닐까 혼자 상상 회로를 돌려보기도 했다. 입시 제도를 매년 끊임 없이 변경해 준 덕분에 학원은 늘 분주하고 성장하며, 학부모와 교사는 또 어떻게 할 지 몰라 점점 아우성을 친다. 말로는 4차 산업을 외친지 오래됐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2차 산업 역군을 대량 생산하는 것 같은 교육이 떠올라 헛웃음이 났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걸 모두 가 알지만 아무도 부르짖지 못하는 우리 교육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교육의 오남용을 고발할 수 있는 대나무 밭은 언제 쯤이나 만들어질까.


독서라는 공부법을 선택하여 공부에서 밀리지 않고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다면 나름대로 우리 나라 교육에서 가장 큰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이 독서만은 절대 아니지만 독서를 일찍부터 꾸준히 하여 독서가 지식을 이끄는 정도가 된다면 그리 바쁘지 않게 쉬면서 원하는 성과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와 부모로서는 행운이다. 다행스럽게도 큰 아이가 서울대 공대에, 작은 아이가 카이스트에 들어갈 때까지 독서는 모든 과목의 선행과 같은 역할을 했다. 선행이 골고루 된 상태에서 각 과목을 공부하는 데는 학원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 필요하다고 해도 일부이기 때문에 사교육을 최소한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게 공부 계획을 수행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절약한 시간을 자신의 놀이와 취미 시간에 할애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독서를 해서 사교육을 한 것 보다 점수가 잘나왔다는 자랑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더욱 효율적인 공부법임에는 틀림없다. 사교육의 마케팅이 너무나 적극적이고, 학원들이 너무나 효율적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그보다 독서가 항상 효율적이라고 말할 수는 절대로 없다. 단기 프로그램에서는 어쩌면 학원이 독서를 이길 확률이 더 크기도 하기 때문이다.


독서를 중심에 두고 스스로 학습이나 인강이나 사교육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은지 단언하듯이 말할 생각은 없다. 한 뱃속에서 나온 두 딸의 선택도 달랐기 때문이다. 상황과 성향이 다르면 독서를 중심에 두더라도 다르게 결정해야 했다. 독서가 골고루 꾸준히 잘 된 아이라면 부족한 과목을 인강이나 자습으로 보충할 시간이 충분하다. 큰 아이가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대체로 수학과 국어 영어 탐구 등 학원을 가야했는데, 얼마 후에 생물 경시대회가 있었다. 큰 아이는 경시대회를 차분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쉬는 시간마다 매일 생물을 꼼꼼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은 하루는 수학 숙제를 하루는 영어 숙제를 주말에는 국어나 과학 등 숙제를 하면서 생물 경시대회를 병행해야 했다. 당연히 생물만 공부한 큰 딸에게 유리한 장이 펼쳐졌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경시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도 친구들은 너무 바빠서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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