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빼."
직장인이 되고 보니 책상이란 단순히 업무를 처리하는 공간이 아니라, 앉아있어야만 하는 의무의 상징이 되었다. 때로는 내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때로는 지루하게 이어지는 일상이 그 위에 내려앉는다.
학창 시절의 책상은 공부라는 이름으로 나를 억압하는 감옥 같았다. 매일 그 앞에 앉아 문제집을 펴는 일은 마치 족쇄에 발이 묶인 듯한 시간이었고,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인생의 목표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그 책상이 나와 가장 오랫동안 대화한 친구이기도 했다. 내 낙서, 내 한숨, 내 작은 희망이 가장 먼저 닿는 곳.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 하던 책상이 사실은 나를 가장 오래 지켜본 목격자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여전히 책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장소만 달라졌을 뿐이다.
지금의 책상은 회사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안에서 주어진 작은 칸막이 속의 공간이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상황은 정반대가 된다.
집에서는 오히려 나만의 책상을 간절히 꿈꾼다. 아기와 함께 지내는 생활 속에서 오롯이 나만의 자리를 갖는 일이 이렇게 절실한 적이 있었을까.
가끔은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글을 쓰려 하지만, 어느새 아기의 작은 손이 화면을 덮어버린다. 부엌 식탁에서 책을 펼치면, 곁에는 젖병과 장난감이 차지하고 앉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만의 책상'을 떠올린다. 컵 하나, 펜 하나, 책 한권만 올려둬도 방해받지 않는 공간.
작은 서랍을 열면 나만 아는 낡은 노트가 들어 있고, 그 앞에 앉아 잠시나마 나를 회복할 수 있는 자리.
그래서 '화캉스'라는 말이 웃프게 다가온다.
화장실에서조차 잠시 혼자가 되기 위해 머무는 이들의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다.
학교와 직장에서는 벗어나고 싶던 책상이, 집에서는 꼭 필요해진다. 삶은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듯 흘러간다.
결국 책상이란 벗어나고 싶은 자리이자, 동시에 간절히 바라는 자리다.
예전엔 도망치고 싶었던 자리였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서 돈을 벌고 가족을 지탱한다. 동시에 언젠가는 나만의 책상 앞에서 글을 쓰고 책을 펼치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다는 희망을 키운다.
그래서 오늘도 회사 책상 위에 작은 인형 하나를 올려둔다.
이건 단순히 회사가 준 의무의 자리가 아니라,
내가 의지를 담아 차지한 '나만의 자리'라는 표시이다.
내 의지가 담겨있단 증거로 조그마한 인형 하나를 올려 소심한 반항을 해본다.
내 개인 공간이니 머릿속으로 글을 구상하는 반항 한 스푼.
이 돈 열심히 모아 더 넓은 집에, 아기가 크면 나만의 서재를 만들겠다는 다짐 한 스푼.
가지고 싶은 공간이자 벗어나고 싶은 이 아이러니한 공간이여.
언젠간 가지고 싶은데서는 가지고, 벗어나고 싶은데서는 벗어나리라.
이렇듯 책상은 단순한 가구가 아니다.
벗어나고 싶은 곳에서는 머물러야 했고, 가지지 못한 곳에서는 간절히 원하게 된 모순의 상징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책상 앞에 앉는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