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거리가 있어야 쓰죠

-요즘 아이들에게 더 어려운 '쓰기' 숙제

by 진영


한 엄마가 아이를 보내면서 학교에서 독후감을 써오라고 하는데 아이가 독후감 쓸 줄을 모르는 것 같다며 방법을 가르쳐 주고 아이가 독후감 한 장을 쓰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다. 또 어떤 엄마는 아이가 일기를 너무 못쓴다면서 일기 쓰는 방법을 좀 지도해달라고 한 적도 있다. 학원 보내는 부모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부탁이고 요구사항이다.


- 독후감 (讀後感) 책이나 글 따위를 읽고 난 뒤의 느낌. 또는 그런 느낌을 적은 글.

- 일기 (日記)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


부모의 요구가 있으니 아이들에게 독후감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가르쳐주고, 일기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지도는 한다. 그런데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방법을 배웠다고 바로 술술 쓰면 대한민국에 글쓰기 못하는 초등학생이 있겠는가). 쓴다 하더라도 부탁한 엄마들 기대에는 택도 없는 수준으로 써낸다. 독서교실에 다니니 아이가 노트 한두 장 꽉 채우는 독서감상문이나 일기 정도는 술술 쓸 줄 알았는데 여전히 아이는 '재밌었다', '슬펐다'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감상문과 오늘 학교 끝나고 학원에 갔다 왔다는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일기를 쓴다.


독서감상문이든 일기든 모두 '글쓰기'인데, 글을 쓰려면 글감인 쓸거리가 있어야 쓰지 않을까? 쓸거리가 아직 채워지지 않은 아이에게 글의 형식을 가르쳐 주고 이렇게 쓰는 거야라고 한들 아이가 술술 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참 많다.




쓸거리란 결국 '경험'이다. 내가 직접 해봤든, 보았든, 들었든 나의 경험이 있어야 그 경험과 책 속 이야기의 경험과 연결점을 찾아서 뭔가를 쓸 수 있다. 그리고 나의 경험과 비슷한 이야기를 만나야 공감도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일기도 그렇다. 그날그날 새로운 이벤트가 좀 있어야 그걸 가지고 써볼 텐데.. 요즘 아이들에게는 나이 40 먹은 어른처럼 그날이 그날이 다 똑같다. 학교 끝나면 학원 가고 학원 끝나면 숙제하고.


물론 시대가 그렇고 환경이 그렇다. 언제부터인지 아이들은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마음껏 놀이를 하며 놀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엔 더더구나. 학교가 끝나는 종례시간에는 선생님과 ' 차조심, 길 조심, 사람 조심'을 다 함께 복창하고 교실을 나온다. 조심할 거 투성이인 세상에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모두 조심하면서 학원으로 곧장 가는 게 제일 안전하다. 그러한 아이들의 하루에 새로운 경험이 끼어들 자리가 있을 리 만무하다. 학원에서는 공식을 암기하고 외우고 테스트 보기 바쁘다. 집에 돌아오면 학교 숙제 학원 숙제를 하고 잠이 들기도 한다. 그런 아이에게 또 하나의 숙제인 일기에 '오늘 학교 끝나고 영어학원에 갔다. 수학학원에 갔다'라고 쓰는 건 일기가 아니라고 한다. 그 아이에게는 그게 그날의 일이었고, 딱히 무언가를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못한 게 맞는데 말이다.


우리 때도 독서감상문이나 일기 쓰기는 어려운 숙제였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더욱 어려운 '쓰기 숙제'인 듯하다. 우리 아이가 잘 쓰길 바란다면 엄마들에게 숙제를 좀 내주면 좋겠다. 아이에게 하루를 온전히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무언가를 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날로 허락해주기 숙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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