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한마디가, 아빠의 인생을 다시 꺼내게 했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태블릿으로 캠페인 제안서 초안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었어.
내일 있을 발표를 앞두고, 한 단어라도 더 정리해보려고 끙끙거리던 참이었지.
슬라이드엔 ‘세상을 위한 기술’이라는 제목이 떠 있었고,
나는 그 안에 어떤 문장을 넣어야 할지,
그 문장을 누가 읽게 될지를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어.
그때였어.
네가 조용히 다가와 내 옆에 툭 앉았지.
말없이 한참을 앉아 있다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물었어.
“아빠는 왜 그런 일 해?”
그 한마디.
짧은 질문이었지만,
그 말은 생각보다 깊숙한 곳을 건드렸어.
나는 태블릿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잠시 너를 바라봤어.
말을 꺼내기 전, 한숨을 쉬지도 않았고
너를 가르치듯 뭔가를 꺼내려 하지도 않았어.
그냥 웃었지.
그리고 되물었어.
“어떤 일 말이야?”
“그냥… 남들한테 뭐 설명하고, 설득하는 거.
가끔은 모르는 사람한테 이야기 걸고.
좀 피곤해 보이기도 해서…”
그래, 맞아.
이 일은 가끔 피곤해.
말을 몇 번씩 되새기고,
누군가의 표정을 살피고,
내가 하는 말이 마음에 닿을지 계속 고민하지.
하지만 너의 눈엔 그게 궁금했나 봐.
왜 아빠는 굳이 그런 일을 하는 건지.
왜 편한 길 대신, 그렇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길을 걷는 건지.
나는 다시 태블릿 화면을 바라봤어.
그리고 화면에 띄워진 슬라이드를 넘겼지.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이야.”
나는 조용히 말을 꺼냈어.
네가 툭 던진 질문 하나가
아빠의 지난 시간과 앞으로의 길을
한꺼번에 꺼내게 만들었거든.
'아들아, 질문해줘서 고마워'
잠시 말이 멈췄어.
네가 가만히 내 눈을 바라보며 듣고 있었거든.
“이제 아빠가 슬라이드 하나를 만들면서
무엇을 담고, 누구를 생각하는지를
들려줄게.”
내가 지금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야.
그건 단순히 직업이 아니었어.
살아가는 방식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였지.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그 사람의 삶에 조심스럽게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니까.
아빠가 선택한 길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일이었고,
그게 때로는 마음의 무게를 견디는 일이기도 했어.
어떤 날은 거절을 받아도 미소를 잃지 않아야 했고,
어떤 날은 내가 하는 일이 과연 의미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날도 있었지.
하지만 말이야,
그 모든 순간에도
아빠는 한 가지를 잊지 않으려 했어.
‘내가 이 일을 왜 시작했는지.’
그리고
‘누구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나는 기술을 좋아해.
새로운 도구들, 더 나은 시스템,
세상을 바꾸는 알고리즘.
그런 것들을 보면 눈이 반짝여.
하지만 기술이 전부는 아니야.
기술은 따뜻하지 않아.
그걸 쓰는 사람이 따뜻해야 해.
내가 하는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기술과 이야기, 데이터와 마음을 엮는 일이야.
그래서 때로는 발표자가 되고,
때로는 글을 쓰고,
때로는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지.
그건 모두
어떤 사람의 삶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일이야.
그리고 지금도 그 마음 하나로
아빠는 매일 슬라이드 하나를 만들고,
누군가의 마음을 설득할 단어를 찾고 있지.
오늘 너의 질문이
아빠에게 큰 선물 같았어.
왜냐하면 아빠도 가끔은 잊거든.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를.
고마워, 아들아.
아빠에게 다시 이 길을 설명할 기회를 줘서.
오늘 밤,
아빠가 만든 이 슬라이드 안에는
숫자도, 그래프도, 시스템도 있지만
사실은 더 중요한 게 들어 있어.
그건 바로
네가 묻는 “왜”에 대한 대답이야.
“왜 그런 일을 해요?”라는 물음에
아빠는 앞으로 매번 새로운 답을 찾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진심을 담아 대답할 수 있는 말은 이거야.
“사람이니까.”
사람을 생각하고,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으니까.
그게 아빠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고,
아직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야.
그리고 언젠가 너도
자신의 길을 선택하게 될 거야.
그때, 오늘 밤의 이 이야기와
너의 질문이
조금은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어.
그게 아빠가 바라는 전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