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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달래 Feb 28. 2024

남자 없는 결혼, 여자 없는 결혼

EP.9별거


남자 없는 시간들


시골로 내려간 정희는 쌍둥이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을 시켰고 남편과는 가끔 전화통화로 안부를 묻고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며 보낸다. 아이들도 아빠 없는 공간을 어색해하지 않았고 자상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보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서로 남자 없는, 여자 없는 결혼 생활이 이어졌고 이 남자 없어도 살겠다는 사랑 없는 무의미한 생활이 지속되었다. 남편은 한 달에 두어 번 와서 아이들을 보고 놀아주고 의무방어를 치렀고 그러다 보니 남편도 무슨 생각인지 직장을 지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집에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군소재지로 발령이 났다. 아이들을 전학을 시킬까도 고민했지만 환경을 또 바꾸기가 염려가 되어 저학년은 그렇게 보내기로 했다.


별거가 오래 지속되자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지게 되고 몸도 서로 낯설고 각자의 길로 가는 게 맞는 거라는 생각이 굳어진다.


'이 남자랑 헤어져도 보고 싶은 마음이 들까?

이 남자랑 좋았던 때가 있었나?'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답은  

'아 니 다'.



별거한 지 1년이 흘렀다.

남편은 별을 하나  달고 승진을 했다고 케이크와 와인을 고 아이들이 있는 친정집으로 왔다.

저녁을 먹은 후 조용히 하고 싶은 말이 있음을 전했다.


"당신 그동안 애썼어. 승진한 것도 축하하고 "

"당신이 내조를 잘해줘서 이렇게 된 거지."

"그런데 나는 이제 당신하고 더 살고 싶지가 않아."

그때까지만 해도 이혼이란 말을 입밖에 한 번도 내지 않던 정희다. 그 말을 하면 결국은 헤어진다는 것을 정희는 알았다.

눈이 둥그레지면서 정희를 빤히 바라보며 묻는다.

"왜? 갑자기? 남자가 생겼나?"

어이가 없다. 처음 한다는 한다는 말이  남자가 생겼냐니.. 자기가 그러고 다니니까 다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다.

정희는 그동안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다 꺼내놓았다.


"당신은 나를 데려다가 소중히 생각하지 않고 방관만 했어. 그 사랑은 시들어 버렸어. 이제는 소생을 할 수가 없어. 당신은 당신의 울타리 안에서 나는 나의 울타리 안에서 각자 자기 생활만 열심히 쳇바퀴 돌듯이 살았지. 결혼은 왜 하자고 한 거야? 이게 부부야?"


남편은 가만히 듣더니

"그렇게 힘들면서 왜 그동안 말을 안 했어?"

"내가 말을 안 했다고? 그간 당신하고 대화를 하려고 수없이 일찍 들어오라고 했지, 기억 안 나? 한 번도 당신은 진지한 대화에 응하지 않았잖아."

"나는 당신이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어. 이제는 정말 잘할게." 하며 안으려 했다.

이제 이 남자의 손길조차 거북스러웠다. 소름이 끼쳤다.

정희는 지난 무심한 세월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남자가 너무 낯설었다.

"아니 이제 그만하자. 지쳤어.. 아이들 키우며 진이 다 빠졌고 이제는 당신에게까지 맘 졸이며 살 힘이 없어. 그만하고 싶어. 당신이란 사람이 돌아오기만을 그동안 많이 기다렸다고.... 이젠 늦었어."




그날도 남편은 모임이 있다고  다 늦게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왔다.



광대짓은 여기까지!


이 둘의 결혼은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다.

정희에게 결혼은 앗차 하면 바닥으로 나동그라지는 외줄타기 곡예였다.떨어지지 않으려고 정신을 모았고 줄을 한 발 한 발 디디는 날들이었다. 관객이 있었다면 아슬아슬함을 느낄 정도였다.

정희는 그동안 혼자 서커스를 하였던 것이다.


그 이후로 3개월간 남편은 정희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생전 안 하던 선물공세까지 하며 연애 초반처럼 애를 썼다. 몇 번의 편지를 써서 집으로 보내왔다. 그렇게 하는 남편이 더 보기 싫었다. 지나간 8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아직 아이들이 걸려서 마음을 다스리고 편지를 읽어보니 자기 탓보다는 정희 탓이 더 크다. 싫은 내색을 안 하고 바가지를 안 긁어서 부부싸움도 없이 살아서 그 정도는 다 견디고 이해하는 줄 알았단다.

자기가 아버지를 7살 때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살아서 사랑을 할 줄도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몰라서 그랬다고 정희의 이해만을 요구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아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하소연을 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하고 말이라도 하지~  정희 잘못이 더 다고 남편은 도리어 정희를 나무라는 식이다.

다른 편지는 읽고 싶지도 않았다. 구겨서 쓰레기통에 봉투째 버렸다.  

"이제 와서 나한테 다 뒤집어 씌우려고 하네~!"

정희가 이러는지를 아직도 어린애 사탕 하나 더 달라고 떼 부리는 줄로 아는 모양이다.


'속이 곪아 터지는 줄도 모르고 아이들 키우며 몰골이 말이 아닌 줄도 모르고 밖에서는 딴짓을 하고 다녔겠지.'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게다.

우리의 인연은...


데면데면한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남편도 이제 정희 마음이 완전히 돌아서서 냉담해짐을 알게 된다. 

여자의 식어버린 마음은 다시 온도를 찾기가 어렵다.



처녀성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하자."

남편은 월요일 아침에 집으로 찾아왔다. 같이 법원에 갈 서류를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아이들은 내가 키울게. 어차피 당신은 아이들을 줘도 못 키울 거니까.. 기저귀 한번 안 갈아 본 사람이 어떻게 딸 둘을 키우겠어?"

헤어지는 마당에 웃으며 헤어지는 사람들 없다고 표정은 벌써 굳어있다.

한 번도 부부싸움을 소리 내서 싸워본 적 없고 남들이 봤을 땐 그저 단란한 부부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벌써 남남이다. 부부는 그래서 헤어지면 님이 아니라 남이다.


"당신은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 결혼한 뒤에 충실한 남편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잖아! 밖에서 병이나 옮아오고.."

"무슨 소리야? 나는 당신에게 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없어."

남편은 발끈 성을 냈다.

그 사건을 내가 순진해서 그냥 모르고 넘어간 줄 아는 것 같았다.

"내가 모를줄 알았어? 나 병원 갔다 왔었어, 그게 뭔지 알고 있었거든. 사실도 알게 됐지. 그래서 당신 하고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던 거야."

남편은 그래도 아니라고 우기고 싶었던 건지 자신은 떳떳하다고 말을 한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대수라고..

"그만 여기까지 하자. 무슨 말이 필요해? 헤어지는 마당에 !,,"


"당신 처녀도 아니었잖아?"


"뭐라고? 당신이 첫 남잔데.. "

정희는 억울함에 소리 없이 눈물만 나왔다.


이 인간이 정말...!

그 순간,

소리  나는 총이 있으면 쏘아 죽이고 싶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재 세 번째 남자는 다음 주에  마지막회가 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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