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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달래 Aug 17. 2024

물폭탄 장맛비에 쓸어내린 가슴.

못난 엄마가 딸들에게

새벽에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데....

이 빗길을 뚫고 어떻게 올라가지? 가다가 차가 뒤집어지는 일이 있어도 나는 가야 했다.


막내딸이 엄마생일이라고 멀리서 비행기 타고 서울 언니네로 온다는 날이다.

그런데 장맛비가 며칠째 내리쏟아져 낮에는 갰다가 밤엔 쏟아지고를 반복하고 있다.

새벽엔 좀 개야 할 텐데..

악천후에 비행기는 활주로에 착륙을 할지 이래저래 걱정이 된다.

일기예보를 보니 호남지역에 물대포를 쏘고 있다고 앞으로도 1000밀리가 더 온다고 되어 있다.


서울 쪽은 어쩌려나


새벽 12시가 넘어 잠을 청하려는데 집 앞 가로수의 밑동이 서서히 안 보이고 골목길이 잠기길 시작했다.

길이 잠기면 마당에 주차한 차를 뺄 수가 없는데 걱정이다.


다행인 것은 집 앞이 바로 119 소방서가 있어서 밤새 불이 환히 켜있고 소방차들이 들락거리며 정비하는 것 같아 구조를 청하면 도와주려나. 만약 이 집 현관이 잠기기라도 하면 치매노인을 어떻게 모시고 대피를 해야 할지 머릿속에 그려본다.

내 힘으론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라 집 주소를 되뇌어보았다. 여차하면 새벽에라도 구조 버튼을 누를 작정이었다.



그런데 집 앞 골목에 물이 불어서  소방차가 들어오려나

오만 걱정이 되었다.

'물을 양수기로 뽑듯이 누가 훅 뽑아내주면 좋겠다.' 어디로 저 물들이 흘러 나갈지도 염려스럽다.


드디어 집 앞 길이 보이지 않는다.

 겼다.


몇 시간째 퍼붓는 하늘 물대포로 점점 마당초입부터 물이 차오른다.

나는 출발을 하여야 하는데......

이렇게 비가 오면 내차가 서있는 마당에까지 차고 넘쳐 그전에 저차를 어디에다 빼놔야 하는지 창가에 12번도 더 오르락내리락하며 마당까지 물이 차오르면 안 되는데 를.. 연발하며 똥 마른 개처럼 가만히 있질 못한다.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 내일 운전을 하지? 하다가 2시쯤 잠깐 눈을 붙였다.

'자야 한다 자야 한다 자야 한다...'


.................

...............




마구 쏟아 몰아치는 빗소리에

"하늘이 드디어 노하셨구나! "

번쩍 우르르 쾅쾅 소리에 둥이도 놀라서 콩콩 짖어대고 여간 잠을 이룰 수가 없다.

4시쯤 되니 마당으로까지 물이 차오른다. 갑자기 조바심이 난다. 누런 토사물이 섞인 황토물이 길을 막고 마당으로까지 올라오니 이렇게 몇 시간 더 부어제끼면 현관까지 올라오겠구나 싶었다. 차를 끌어다 언덕 위에다 올려놓아야 할지 잠깐 고민이 되었다. 돌연 갑자기 물이 불어서 차를 빼다가 물에 휩쓸려가는 상상을 하니 아찔하다

그전에 119에 구조 요청을 해야 하는 건지 개인적인 차량을 물에서 건져주는 일도 119에서 해주는 건지 상식이 부족하니 가슴만 콩닥거린다.

전에 도시에 살 때는 이렇게 장마가와도 비걱정은 안 했는데 다음날이면 배수가 잘 되어서 고인 물도 잘 보질 못했는데 시골은 아직도 이렇게 잠길 데가 많고 침수 댈 곳이 많구나를 이번에 알게 되었다.


해가 밝아야 차를 끌고 나갈 텐데.. 먼동이 떠오기를 계속 기다렸다. 가로등아래 비친 물길은 줄어들지 않는다. 산속에 고립된 마을이나 등산객들이 계곡에서 급박하게 조난을 당한 일들을 떠올리니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이런 날씨라면 안 떠나도 일이긴 하지만 딸아이를 공항으로 데리러 가지는 못하여도 악천후를 뚫고 멀리 날아온 아이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리사랑이라고 엄마의 마음은 그런 것 같다.

5시가 지나자 어슴푸레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시야가 조금씩 밝아져 운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골목길도 바닥이 보이기 시작한다.


차를 먼저 빼야겠다.


작은 엄니의 아침 상을 차려놓고 아침에 요양사가 오기 전까지 잘 계실 거라 믿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빗줄기는 좀 가늘어져서 길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차는 물살을 가르며 움직이기는 한다

"휴.... 제발 도로까지만 나가게 해 주세요."

다행히 물이 마당을 덮쳐 현관까지 차올라오지는 않았다.


소돔과 고모라성을 탈출하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상상이 되었다.

' 돌아보지 말라  떠나라 하셨지!'

시동을 걸고 작은 등이 켜진 집을 등지고 물바다의 그곳을 탈출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도로는 곳곳에 경찰들이 서있어서 물바다의 참상을 보이긴 하였는데 그곳을 5분 정도 벗어나니 비가 안 왔다.

도로가 말라있었다.

"이건 뭐지?"

밤새 물이 집을 덮칠까 봐 전전긍긍했는데 대한민국이 그렇게 넓은 땅이었나? 도로에 1미터가 넘는  물웅덩이가 서너 군데 있어서 그곳을 지나갈 때는 가장자리 쪽으로 살살 적당히 속도를 냈고 다들 비상 깜밖이를 켠 상태에서 설설 기어 도로를 통과하고 있었다.

 한 15분 지났을까 비가 언제 왔지? 싶을 정도로 땅은 말라있었다.

밤새 내린 비는 내가 있던 땅에만 퍼부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졸음쉼터에서 잠깐 휴식을 하고

서울에 도착하여 먼저 도착한 딸아이와 두어 달 만에 상봉을 했다.


이 비를 뚫고 밤새 한숨도 못 자고 운전했다 하니

딸아이는

그럼 비 좀 그치고 오지 뭐 하러 위험하게 왔어요?"하고 걱정 섞인 목소리로 구시렁댄다.

그 말이 어찌나 서운한지 나는 저를 보려고 이 비를 뚫고 왔는데 엄마맘도 몰라주고 퉁박을 주니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서울이 잘 있나 궁금해지더라고?"

라며 얼버무리며 진심을 말하지 못했다.

너희들이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하면 둘 다 외국에 나가 있을 앞으로는 엄마가 혼자 어떻게 지낼 건지

걱정을 할까 봐 나는 의연하게 대답을 해야만 했다.


막내는 며칠 있다가 가서 1년 후나 올 지 모르고 큰아이는 올말이나 내년 초에 캐나다로 나간다.

그동안은 이 엄마가 걱정이 되어서 함께 지냈는데 집문제도 해결되고 엄마가 시골살이에 나름 적응을 한 것을 보고 엄마 걱정하지 않고  해외이주를 결정한 것이다.

  

다음날, 생일을 맞아 식사 후

북한산계곡으로 비바람을 헤치며  떠났다.


계곡에 물이 불어 물소리가  천둥같았다.




" 너희들 인생을 살아라, 엄마는 이제 하고 싶은 거 다했다.

너희들 키우며 행복했고 이제는 너희들이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니 그것으로 행복하다."


물소리가 커서 내 말이 전해졌는지

내 말이 비장해보였는지

"어제까지 맑았는데  엄마 따라 비가 올라왔네. 비를 몰고 다니는 여인이시네요 "


"엄마 우리 걱정은 하지마요 다 컸다구용!!"

아이와 막내가 한마디씩 너스레를 떨며 엄마의 기분을 맞춰준다.


 아이들에게 엄마도 노후를 재미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아이들에게 의지하고 함께 살자고하며 부담을  것 같다.

그게 다는 아니었는데.. 너희들이 독립할 때까지 이중으로 집세 내지 않고 아껴 모아서 독립을 하게 하는 게 나의 생각이었는데...

다 큰 딸들 엄마 곁에서 맛있는 것도 해주고 시집가면 아니면 외국 나가면 먹고 싶어도 못 먹는 음식들 가끔 해주고 그러고 살고 싶었다.

못난 엄마가 너희들 외국으로 나가는데 큰 자금은 못 보태주지만 엄마의 그동안의 사랑을 기반 삼아 어디에 가서도 엄마의 딸로 자랑스럽게 일터에서 자기 역량을 다하기를 바란다.


자유로를 타고 오는데 비가 더 거세어져서 아이들 태우고 긴장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새벽에 시골서 올라올 때의 그 비를 내가 몰고 왔구나...'

내 생일 무렵은 언제나 이런 비가 내렸다고 하신 엄마 생각을 하며 두 에 힘을 주어 핸들을 부여잡았다.

이제는 못난 엄마가 아닌 편안한 엄마로 노후를 잘 살게.
 걱정하지 마라. 딸들아~

엄마가 사는 이유가 그동안은 너희가 다였다.
이제 너희의 삶을 살아라.



장맛비 탈출해서 계곡물 찾아 나섬은 ...
물을 좋아하는 달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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