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고 싶은 것과 보고 싶은 것.
내가 일하는 부서는 외부 업체와의 미팅이 많지 않다. 업무에 직접 협의가 필요한 팬톤 같은 스탠다드 업체들이나 컬러 툴 업체 외에는 별로 만날 일이 많지 않다. 원단 업체에서 미팅 요청을 하지만, 사람이 아닌 패브릭 기준으로 모든 진행 사항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간곡히 거절 한다.
미팅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머천트 팀을 통해 요청이 들어왔다. 표면적 이유는 업체 대표님이 해외에서 직접 방문하셔서 방문하고 싶다 하셨지만, 실질적 이유는 컬러가 원하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이유로 계속 돌려보내는 패브릭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머나먼 타국에서 오셔서 거절 할 수가 없다.
힘든 걸음을 하시니 어찌되든 결론을 지어드려야 할 것 같아서, 담당 바이어도 끌어들였다.
최상위 결정권자가 노를 나눠 들고 한 배를 탔으니 어디든 안전하게 정착하길 바래본다.
10 컬러로 구성된 프린트 스타일의 컬러를 맞추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한 컬러가 기대 수준에 도달해도 다른 몇 컬러들이 삐뚤어져 다른 방향으로 가버린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모든 컬러가 기대 수준에 도달하기를 바라고, 원단 업체에서는 전달 한 옵션들 중 하나가 그대로 선택 되기를 바란다. 각 브랜드의 기조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마지막 순간에는 한 옵션을 선택한다.
업체 대표님이 다른 유명 브랜드에 공급하신 유사 프린트들을 보여 주셨다.
그들은 업체에서 베스트 컬러 조합으로 전달 한 옵션을 바로 선택해 진행했는데, 판매율이 매우 좋았다고 덧붙이셨다.
‘오~ 그렇군.’
인기 있는 스타일은 모두의 관심사이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미팅이 진행되었다.
업체 분들도 부드럽게 대화가 이끌어지니 성공적이라고 생각하신 듯 하다.
‘다들 만족 한 건가?’
그런데, 자리로 돌아오면서 머천트가 나에게 물었다.
“오늘 미팅의 결론이 뭐야?”
“그러니까. 오늘 미팅을 왜 한 거야?”
바이어의 코멘트가 이어졌다.
“미팅의 목적이 뭐야?”
매니저가 덧붙였다.
헐… 내가 잊고 있었다… 동료들은 누군가의 앞에서는 부정적인 코멘트를 잘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외부 업체와의 미팅이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배 위의 테이블에서 미소조차 잃지 않았다.
업체 대표님은 보여주고 싶은 것을 열심히 준비하셨다. 다만 필요로 하는 것과 달랐다. 타사의 샘플은 기획 단계에서는 꽤 흥미롭지만, 그 이상으로 잘 확장되지 않는다. 대표님이 샘플을 꺼내셨을 때 보고 싶었던 것은, 그들은 기준 컬러에서 어느정도 떨어진 컬러들을 선택 했는지, 그렇기에 대표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컬러 승인 범위를 어느 정도로 조율하기를 원하시는 지를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예시였다.
협의를 원하는 컬러 범위를 볼 것이라 기대했는데, 타사의 스토어에 걸린 컬러를 보여주니, 동료들의 머리 속에는 ‘이 미팅을 왜 하는 거지’ 라는 의문만 남았다.
그 패브릭은 그날도 돌려보내졌다.
인테리어 패브릭 과목을 수강 할 때 교수님이 크리에이티브 한 패브릭 기획을 해오라는 과제를 내 주셨다. 온갖 업체를 뒤지고 샘플을 찾아 이보다 더 독창적 일 수 없을 원단을 붙여 보드를 기획해 갔다. 아주 뿌듯한 마음으로.
난 A를 받지 못했다. 이유는 너무 크리에이티브 하기 때문에 고객들이 선택하지 않을 것이기에.
‘크리에이티브 하게 하라 하셨으면서…’
한동안 그 수업시간에 뾰로통 앉아있었다.
이제야 난 무엇을 배우게 하려 했는지 이해한다.
난 내가 원하는 것을 보여줬지만,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고서 혼자 만족했다.
살다 보면 뒤늦게 깨닫는 일들이 있다.
내일은 또 과거의 어느 날이 부끄러워질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뾰로통 했던 그 시간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