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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은 Oct 22. 2023

버티는 게 능사인가요

신 포도인지 단 포도인지는 먹어봐야 안다

직장생활에서 버티는 힘은 어디까지 발휘해야 할까? 맞지도 않는데 무조건 버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문제에 봉착했다면, 우선은 여우의 신포도 이야기를 대입해 보는 것이 좋다.  여우가 신포도를 따 먹으려고 하는데 포도가 너무 높이 매달려 있어 따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우는 바로 합리화를 해 버리고 만다. 


저 포도는 신포도 일 거야. 어차피 따 먹어도 시어서 먹지 못할 테니, 안 따는 거야.      


버티는 게 능사인지 아닌지 알고 싶을 때 흔히 여우처럼 합리화에 빠지기 쉽다.      


버티는 건 의미가 없어. 어차피 버텨보았자, 결과는 뻔하고 똑같을 거야.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거야.      


그래서 버티는 걸 포기한다. 그리고 포기하는 게 맞다고 자위한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무수히 직면했던 합리화의 순간들. 그러나 돌아보면, 그건 그 상황에 대한 통찰이 전무한 상태에 나 자신의 내면에 대한 내밀한 들여다봄 일도 없이 그저 막연하고 무지한 합리화였음을 생각한다.      


버티는 게 능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때는 좀 더 버텨보는 쪽을 선택하라고 말하고 싶다. 좀 더 선명한 판단의 순간을 맞이할 때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귀찮거나 피곤하거나 단지 그 순간의 어렵거나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자기 변명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흔히 박봉에 업무 강도가 높은 직장생활에서는 버티는 게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막 일을 시작한 내 직군의 경우가 그러한데 내가 처음 이 일에 멋모르고 입문했을 때 회사의 상무에게 이 직무를 잘하는 노하우를 물었다.      


무조건 잘 버티는 게 중요합니다

첫째도 둘째도 잘 버티는 게 중요합니다     


알고 보니 이직률이 무척 높은 직무였다. 근속하는 경우는 전체 직원수의 20%가 될까 말까 했다. 어느날 아침, 옆 팀 테이블 위에 작은 케이크에 촛불이 켜져 있길래 누구 생일이냐고 물었더니, 젊은 친구가 자그마치 2년을 버텨서 기념 축하 케이크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얼덜결에 축하 인사를 하고 말았지만,    그 만큼 6개월, 1년, 2년...... 하나하나의 시간이 고난이고 곤란이고 어려움인 시간의 징검다리를 하나하나 넘었다는 건 곧 버텼다는 것이고 그 버틴 것은 케이크에 촛불을 켤만큼 기념비적인 일이 된 것이다.      


결론은, 무조건 버티는 게 낫다 그렇지 않다고 흑백논리로는 절대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버텨보니 버티길 잘했다 생각할 수 있고, 버티는 게 능사라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버티지 말 걸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 생각한 대로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지만, 중요한 건, 그 선택을 하는 순간에 자신에게 스스로 합리화하는 여우로 둔갑했는지 아닌지의 여부가 될 것이다.      


내면의 자신에게 물었을 때 어느 쪽이 능사 인지 좀더 선명해질 때까지 버티고, 안개가 걷히고 처음보다 분명해지는 순간이 올 때 까지는 버텨본 후에 결정해도 그리 늦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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