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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린 Jul 20. 2022

너는 ENTJ니까

얼마 전 월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직원들과 모닝인사겸 잡담을 나누느라 서있었다. 우연히 유리문 밖으로 출근을 하는 대표의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기분 탓인가? 사무실로 직진하는 대표의 발걸음이 잔뜩 성이 난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에 대표는 사무실을 이리저리돌아다니며, 지난 주 금요일에 누군가가 멀티탭 콘센트의 전원을 끄지 않고 퇴근했다는 둥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개별 스위치가 달린 멀티탭 사용을 반대한다. 전원 차단 스위치가 한 개냐 여러 개이냐가 장기간 사용 시의 화재의 위험과 관련이 있다. 바로 직렬 전류와 병렬 전류의 차이 때문인데, 대표의 잔소리 때문에 관련 논문까지 찾아보면서 공부했다. 적당한 때가 되면, 콘센트 전원 차단에 집착하는 습관을 좀 자제해 달라고 이야기할 참이다.


나는 자라면서 부모님이나 형제자매로부터 잔소리라는 걸 별로 들어본 적이 없어서, 오히려 누군가가 쓸데없이 잔소리를 해대면 정말로 귀가 따갑다.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대부분 잘 해내기 때문이다. 내가 반드시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 오직 다이어트와 운동일 뿐.


솔직히 직장인 대부분이 월요병에 취약하다는 걸 인지한다면, 특히 월요일 아침부터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여과 없이 분출하는 건 사무실의 분위기에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걸 당연히 알텐데 말이다. 당연히 우리들은 대표가 조성하는 불안한 분위기를 무시하며 조용히 업무하는 척할 뿐이었다.


나중에 우리끼리 모였을 때, 자연스레 대표의 MBTI가 화제가 되었다. 며칠 전에 내가 회사 단톡방으로 '다 같이 모여 있는 MBTI들'이라는 이미지를 공유했었다. 공교롭게도 이미지 중에 혼자만 잔뜩 성을 내며 정수리 위로 불을 내뿜고 있는 ENTJ의 모습이 그날 아침의 대표의 모습과 판박이였다. 우리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요즘 들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서로 MBTI유형을 물어보는 일들이 종종 있다.


예전에는 MBTI 테스트를 아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로 진로 적성검사나 사내 교육 등을 목적으로 받는 편이었으니 사람들의 MBTI를 향한 관심 온도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었다. 점점 사람들의 개별적인 특성과 개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바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MBTI를 활용한 재기 발랄한 온라인 마케팅 아이디어들이 인기를 얻으며, 위상이 높아졌다. 더구나 온라인 테스트를 해볼 수 있는 '16 Personalities(https://www.16personalities.com/)'라는 사이트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을 몇 가지 특정 유형으로 구분하는 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MBTI는 개인적인 특성을 파악하여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을 건지에 대한 가이드로 삼기에 꽤 유용하다.


그리고, 사실 재미있다.

다 같이 모여 있는 MBTI?


처음에 내가 MBTI의 유행을 경험하면서는 초개인화 서비스를 알리는 효과적인 마케팅으로서 얼마나 재미있게 결과를 풀어내는 지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도 서로의 MBTI유형을 알고 난 뒤에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가끔씩 보이는 특징적인 행동이 그 사람의 MBTI 유형에 너무 딱 들어맞을 때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MBTI는 아무래도 과학인 걸까?


일터에서 서로의 MBTI 성향을 알아서 좋은 점으론 누군가의 과한 행동에 눈이 거슬릴 때에도, 그냥 저 사람은 XXXX니까 그렇지 하고, 웃음으로 넘겨버릴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상황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을 수 있도록 중립적인 가이드라인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MBTI 유형이 다 다른 게 신기하고 재미있다. 우리의 일터에 이렇게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일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고, 감정이라는 변수가 존재한다. 단지, 객관적인 지표만을 들어서 상대방에 대한 피드백의 이유로 제시하기에는 어려운 상황도 있다. 이렇게 복잡다단한 일터에 이처럼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갈등이 자연스레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갈등을 덮을 수 있는 사람의 체온을 느끼게 하는 온기가 정말로 필요하다. 나는 하루에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도 훨씬 많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회사가 그저 모여서 일만 하는 불편하고 딱딱한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의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나의 MBTI유형에 대해 많이 헷갈려한다. 나의 타고난 유형이 변했다기 보다는 자의든 타의든 회사 내의 인간 관계를 고려해서 커뮤니케이션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조직을 거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만, 사회생활에 있어서 겪는 시행착오는 정말로 끝이 없는 듯하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단순한 해결책은 없었다. 어느 조직에서 잘 지냈다고 해서, 다른 조직에서도 잘 지낼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의 회사생활의 질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이 바로 옆의 동료라고 믿고 있다. 사실, 인간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회사에서의 생활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내가 일단 회사 생황을 편하게 해야하니, 주변 동료들과의 관계를 상호간에 우호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마음을 다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우리의 일터가 더욱더 사람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 우리의 일터에서는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편안한 환경이 마련되어서 적어도 하루의 8시간 정도는 일단 머물기에 좋은 곳이 되었으면 한다. 회사가 무정, 무감의 공간이 아닌 인간미 넘치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조직원이 노력해야 한다.


매일 일하며 36.5도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일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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